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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6 | [특집]
확실히 괜찮은 우리영화
장세진/방송평론가 (2004-02-03 15:38:33)
4월 10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제31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이 있었다. 호암아트홀의 직배외화 상영으로 재정지원을 거부하는 등 소동이 있었지만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영화인협회와 삼성그룹 공동주최의 제31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은 「서편제」가 차지했다. 그 외에도 감독상, 신인남우상, 신인여우상, 촬영상, 녹음상 등 모두 6개 부문을 「서편제」가 수상했다. 어느 일간지에도 기고한 바 있지만, 「서편제」는 미개봉작이나 다름 없었다. 시상식 당일에야 서울을 비롯한 지방극장에서 개봉되었으니 대부분의 일반관객들 입장에선 영문도 모른 채 「서편제」 수상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하루 속히 개선되어야 할 대종상 영화제 운영의 문제점임을 말할 나위가 없다. 여러 가지 요인이 우리영화의 침체에 한몫하고 있지만 관객을 무시하는 그런 태도야말로 악성관행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시상식 사회자이기도 했던 이덕화 역시 일반에 개봉되지 않은 「살어리랏다」(윤삼육 감독)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심사위원 몇 사람만이 보고 수상을 결정하는 그런 관객 푸대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우리영화는 정예 관객만을 거느리게 될 것이다. 기왕 4월에 시상식이 있으니 지나간 1년 (1월부터 12월 또는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동안 극장에서 개보된 영화를 대상으로 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영화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 팬들이 최소한 공감할 수 있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지 않는 그런 작품이 선정되고 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편제」는 그 많은 지적에도 이견이 거의 없을 만큼 확실히 괜찮은 우리영화이다. 작년 내내 우리영화의 위상을 높여 주었던 주역-정지영․박종원 감독은 “잊혀져가는 판소리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 “임감독의 탁월한 연출 솜씨와 절제된 예술혼이 어우러진 방화 70년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각각 말한 바 있거니와 각종 매스컴의 찬사 역시 만만치 않다. 스포츠 조선은 「스크린 산책」을 통해 “남도 판소리에 실린 ‘민초의 애환’”이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관람기를 싣고 있다. 결론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우리영화사에서 남을 ‘수작’”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앙일보는 “여자들은 눈물을 흘렸고 남자들도 슬그머니 눈시울을 훔쳤다. 그리고 박수를 쳤다”는 시사회장의 관람 분위기를 통해 찬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주재기자인 어느 외국인(일본인)은 “한국에서는 희귀할만큼 성숙된 민족주의를 보여주고 있는 「서편제」가 엄청난 영화”라고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그것들은 대체적으로 공감되는 이야기이거니와 무엇보다도 눈여겨 봐줘야 할 것은 소재 영역의 확장이다. 즉 「서편제」는 잊혀져가지만 알짜배기 우리것인 판소리를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비록 문외한의 눈일망정 뭔가 짜안하고 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의욕적으로 괜찮은 영화들을 만들어 내는 많은 감독들의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같잖은’ 영화들이 판치는게 부인할 수 없는 이땅의 실정이어서 영화사적 의미가 자리매김된느 긍정적 평가를 가능케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요컨데 영화를 에술로 승화시키려는 치열한 작가의식 나아가 혼같은 것을 만나는 설레임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 틀은 지극히 간단하다. 소리꾼 유봉(김명곤)이 핏줄이 다른 오누이 송화(오정해)와 동호(김규철)를 기르며 판소리와 북을 가르치는 것이 기본 얼개이다. 원래 떠돌이인데다가 ‘판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니어서 그들의 숨 이어가기는 자연 고달플 수 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유봉의 절창(絶唱)을 만들어내기 위한 몸부림은 처연한 아름다움의 빛깔을 낸다. 유봉은 동호가 대처로 가버리자 소리를 끊은 송화에게 다시 정진케하려고 그만 장님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요, 한(恨)이 아닐 수 없다. 다름아니라 한이 쌓여야 좋은 소리가 나온다는 믿을 때문이다. 한국적 한은 판소리의 퇴조 내지 소외받는 과도기적 시대에서도 투명하지만 서러운 빛으로 다가온다. 떠돌이 약장수에 빌붙어 생계를 이어야하는 현실도 그렇거니와 서양음악에 밀려 자연으로 떠돌아야 하는 유봉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느낌은 온다. 이를테면 득음(得音)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예술혼이 민족의 보편적 한에 용해되어 은은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울림은 강요된 것이 아니다. 소재와 배경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기법은 서구식 앵글이어서 완성도에 더욱 신뢰가 생기는 대목이기도 하다. 슬프고 한스러운데도 다만 보여주기(Showing)만 할 뿐인 리얼리즘이 그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그렇듯 처절한 감동을 줄 수도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조금 부풀려 말한다면 임권택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그런 작가 의식의 드러냄(그는 촬영에 들어가기전 “남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떠도는 사람들의 한이 어떻게 판소리에 녹아 들어 해한과 구원의 차원으로 승화되는가에 연출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한 바 있다.)은 사계절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담아낸 영상미와 함께 「서편제」의 위상을 한껏 높이는 관건이 된다. 특히 길가던 중 산과 들이 어우러진 배경 속에서 「진도 아리랑」에 맞춘 유봉․송화․동호의 삼위일체적 흥겨움이나 소리를 통해 남매임을 마음으로 확인하고 각자 길을 떠나는 끝장면은 비록 ‘자체연소’의 아쉬움을 남기긴 하더라도 해한(解恨)위식의 절정으로 보인다. 그게 바로 우리 민족의 보편적 체념의 미학이요, 정서였던 것이다. 연극배우 김명곤의 애절하고 정한이 끓는 서편제 소리 및 세상과 야합치 않는 예인(藝人)으로서의 연기가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신인 오정해, 김규철의 소리꾼 및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소리꾼다운 연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웃음기 잃은 유봉, 핏기 없는 송화, 불만으로 부르튼 동호를 연기하는 세사람 외에도 낙산거사역의 안병경이 밑바쳐준 유봉과 동소 사이에 벌어진 시간의 끈 연기고 영화를 살리는데 한몫 했다. 그렇다고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화면 전개가 스피드한 현대물이 아닐지라도 서두 전개가 너무 지리하여 강렬한 인상을 풍기기엔 좀 미습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 아무리 떠돌이기로 유봉의 성장 및 공부과정, 집안 내력과 사랑행각, 그리고 판소리꾼 계보 등 주변 정황이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졌더라면 한국적 한이 서린 가락이지만 자꾸 잊혀져가는 서편제에 대한 일반대중(문외한)의 이해가 훨씬 매끄럽게 이루어졌을 것 같아 하는말이다. 어쨌거나 「서편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 우리 영화사에 오래 남을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 증거가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전주에서도 4월 10일 개봉, 이례적으로 2주간이나 상영했었지만 서울의 경우 이미 한 달이 넘는 등 관객들이 보는 영화로 계속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속단 할 수야 없지만 좋은 영화는 많은 관객들이 보다는 사실을 「서편제」는 새삼 확인 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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