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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6 | [서평]
치열한 삶의 궤적, 일상어로 표현 천상병 시집「새」
김태삼/전주 신흥 중학교 교사(2004-02-03 15:42:52)
치열한 삶의 궤적, 일상어로 표현 천상병 시집「새」 (김태삼/전주 신흥 중학교 교사) 호화 장정의 시집 「새」가 최근 발간되었다. 시인 천상병이 행방불명이 되고 나중에는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자 그를 아끼는 문인들이 주머니를 털어 펴낸 시집을 20여년만에 번각한 시집이다. 대학시절 나는 그 시집이 무척 갖고 싶었다. 그러나 한정본이었기 때문에 빌려 볼 수 밖에 없었다. 대신 후에 「주막에서」라는 이름의 시집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가 상기도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새」의 번각본을 내고는 정말 죽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歸天)중에서 번각본 시집 「새」를 펼치자 옛날 기억이 새롭다. 새 책 냄새만 빼고 똑같다. 그리고 민영씨의 발문이 덧붙여졌다. 시집에서 발문이 시보다 더 좋아서는 안 되겠기에 발문이 마음에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다. 그저 시집은 시집일 뿐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삶의 궤적을 일상어로 그려낸 그 솜씨를 즐기면 된다. 그의 삶이 그의 시세계를 이루었으리라는 편견을 버리자. 그는 삶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해서도 치열성을 보인다. 시가 없었다면 그의 삶은 시구절처럼 전형적인 ‘그런대로 살았음’으로 마감했으리라. 『小陸調』 에서는 부모는 고향 산소에 형누이는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어 가지 못한다고 한다. 거기까지는 일상적이다. 저승에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저승에도 갈 수 없는가 하고 물은 뒤 끝맺음이 인상적이다. 그는 인생을 슬프다거나 괴롭다고 말하지 않고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하고 감탄한다.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윤동주론」은 윤동주가 고향으로 간 거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윤동주가 있는 곳이 이 땅에서처럼 사람 사는 모습이 같으리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해장집도 있고 또 이억 광년도 넘으리라는 천문학 용어를 등장시킨 후 일상으로 되돌아와서 그 별까지 걸어서 혹은 버스를 타고 혹은 택시를 잡는지 몰라도 안녕히 가라 인사한다. 「나의 가난은」은 나를 정체시킨다. 그는 커피 한 잔과 갑 속의 두둑한 담배와 해장 후에도 남은 버스 값 때문에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고 내일 아침도 해야 하는 걱정 때문에 다소 서럽다. 그러나 햇빛에도 예금통장이 없다는 이유에서 그의 직업인 가난을 떳떳하게 밝힌다. 그리고는 묘비명에 구절로 맺는다.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씽 씽 바람 불어라...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이 흘렀다는 그는 이십년 동안 무엇을 기다렸을까? 우리의 모습을 그에게서 투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의 식욕이란 얼마나 보잘것 없는가? 조만간 우리는 또 배가 고프리라. 시집 이름이 새이고 또 그가 새처럼 살았기 때문인지 새라는 제목의 시가 곳곳에 보인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오면 자신은 한 마리 새 일것이라 한다. 그는 저급하게 환생 운운하지 않는다, 그러한 절차가 어찌 필요하겠는가. 그는 살아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다고 우는 새 한 마리일 뿐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함께 노래의 대상이 된다. 즉 삶을 개관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무리지어 비루하게 살고있는 동안 그 자신 단신임을 철저히 자각하는데서 가능하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單身 지구의 끝에서도 끝인 單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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