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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7 | [문화시평]
단순한 경선무대로부터 벗어나는 일 제9회 전북연극제
정 초 왕/전북대 독문과 교수․전주시립극단 상임 연출 (2004-02-03 15:58:52)
연극평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공연비평이 연극 발전에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음을 충분히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그 역기능을 종종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기 다른 여러 공연들을 뭉뚱그려서 평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면 난감함의 정도가 더 심해진다. 누구에게나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같은 음식을 놓고서도 미식가들의 의견이 엇갈릴 수 있을텐데, 하물며 여러 집의 품목이 다른 음식들을 비교 평가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필자가 어떤 식으로든 연극 작업과 관계를 하고 있다 보니, 같은 연극인들의 작업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하기가 몹시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핑계들을 내세워 필자는 제9회 전북연극제 및 제11회 전국연극제의 예선 대회를 평가하는 이 글의 초점을 자연스레 이번 행사의 전체적인 성과를 예년과 비교해서 살펴보는데에 맞추어 보려고 한다. 6월 8일에서 11일까지 치뤄지고 12일 오전에 심사결과 발표와 시상식을 가진 이번 연극제에는 전주의 3개 극단과 우리의 1개 극단이 참가하여 우선 양적으로 예년에 비해 풍성한 성과를 거두었다. 창작극 2편과 소설 각색품 2편으로 이루어진 출품작들의 외적으로 다양한 면모도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겠다. 첫날 공연된 디딤예술단의 「숨은 물」(정복근 작, 안상철 연출)은 역사적 인물들 간의 대립구도를 통해 ‘역사의식’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원작자의 최근작을 토대로 했다. 가면극 요소의 도입, 깔끔한 무대장치 등을 비롯한 긍정적인 점들이 많았으나, 전체적으로는 호소력이 부족했다는 평이어서, 무거운 메시지에 재미를 담아 적절히 전달한다는 일이 용이치 않음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연출자의 경륜과 꽤 긴 연습기간에도 불구하고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이러한 ‘설익음’이 경험이 부족한 배우들의 역량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원작 자체의 구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아쉬운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이제 겨우 창단 1년 남짓 만에 배우는 자세로 출품했다고 하는 디딤예술단의 패기와 열정이 부단한 발전으로 열매 맺게 되기를 바란다. 둘째날 공연된 극단 황토의 「탁류」(채만식 원작, 이호중 연출)는 작년 가을 공연된 적이 있던 작품이다. 이번 무대는 큰 틀은 작년의 것을 유지하면서도, 몇몇 배역들을 교체하고 고정세트를 도입하면서 더 잘 다듬어진 연기력을 선보임으로써 변화된 모습과 함꼐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나친 효과 음악이 도리어 관극의 집중도를 떨어지게 한다든지, 너무 빠른 장면전환의 시도가 실수를 유발시켰다든지 하는 사소한 결점들을 빼면, 공연 자체로는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 다만 심사평에서도 제기되었듯이, 흘러간 시절의 자연주의적 색채를 기조로 한 이런 류의 작품이 연출의 특별한 재해석이 없이 무대에 재현되는데에 그칠 때, 보다 강력한 경쟁자 앞에서는 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셋째날 공연된 창작극회의 「꼭두, 꼭두!」(곽병창 작, 연출)는 사할린 귀환동포의 문제를 소재로 해서 우리 민족의 고난사를 다룬 작품으로, 연출자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했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시의성 있는 강렬한 주제 표출과 더불어 공연양식상의 틀거리로 삼은 인형(꼭두)극과 무대극의 접목도 주목할만한 시도였다. 자신의 작품의 주제와 재용을 꿰고 있는 연출자의 역량과 타극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극단의 잇점이 어우러져 괄목할 성과를 거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전국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짧은 연습기간 때문에 불가피하게 드러난 문제들(예를 들어 군더더기를 없애고 집중력을 키우면서 연기를 심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마지막 날 공연된 극단 토지의 「난초의 죽음」(최솔 연출)은 문순태의 원작소설을 각색해서 올린 작품이다. 공연 자체의 성과만 가지고 볼 때 예전의 것(「삼포가는 길」)에 훨씬 못미친 느낌이다. 단편의 길이를 적절하다고 생각된(?) 공연의 길이에 맞춰 늘이다 보니 생긴 문제점일지 모르겠으나, 지루한 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각색이 그 자체로는 의의를 가질 수 밖에 없음을 우리 극작계의 현실에 비추어 되새기면서 더한 발전을 기대해본다. 전반적으로 이번 연극제에 출품된 다수의 작품들에서는 공연양식의 문제도 문제이지만, 연출관점이라는 뼈대, 즉 원작 해석력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연극이 해석의 장에 그치지 않는 표현의 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해석을 토대로 한 표현인 것이다. 부족한 점들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연극제는 그 질적인 수준에서도 예년을 상회했다고 보며, 따라서 이 지역 연극의 발전에 보람찬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출품작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지방연극이 서울연극의 기막힌 모작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이번에는 비켜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연극제에서 실상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던 것은 관객들이 보여준 관심과 성원이었다. 관객들의 열기는 연극제의 전 기간동안 예술회관의 객석을 가득 메우고도 남아서 부득이 조금 게을렀던 일부 관객들은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목도하고서도 우리 지역 연극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증대라는 결론을 곧바로 끌어내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을 들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무료공연이었고, 각 극단에 배정된 1회씩이 공연으로는 그간 확보한 고정관객들 조차도 소화시키기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공연들이, 빈도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지루함을 끈질기게 견뎌내는 초인적(?) 관극 태도를 시종일관 고수한 관객들(실상 이들곁에 자리해서는 생리적으로 나오는 하품과 기침도 몹시 눈치가 보였다). 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식상하게 만들어 극장 밖으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죄짓는 일인지를 이 지역의 연극인들에게 절감하도록 만들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이 공연의 질적인 수준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연극제는 창작극회가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휩쓸고 전국연극제의 출전권을 얻으면서 그 막을 내렸다. 지역 연극의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전국연극제 출전권을 따기 위한 연극시합에 ‘울며겨자먹기’로 출전해 마음 졸이다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는 여타 다수의 극단들을 보면 정말 말문이 막힐 뿐이다. 연극제가 단순한 경선무대로 전락하지 않고, 각 극단들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선의의 경쟁과 교류, 그리고 화합의 장으로 굳건히 자리잡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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