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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7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인과적 리얼리티 부족에의 아쉬움 『웨스턴 애비뉴』
장 세 진/ 방송평론가 (2004-02-03 16:07:49)
제작당시부터 각종 매스컴을 통해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웨스턴 애비뉴』가 대부분의 우리 영화가 그렇듯 흥행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여파 등으로 15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사(이화 예술 필름)는 부도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영화사의 부도 그 자체가 안타까운 일만은 아니다. 관심을 끌만한 영화의 흥행실패 - 관객들의 차가운 시선이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우선 『웨스턴 애비뉴』는 월드스타 강수연과 『아메리카 아메리카』『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은마는 오지 않는다』등을 통해 이른바 아메리카니즘에 꾸준히 집착해온 감독 장길수의 작품이라는 점이 큰 관심거리였다. 더불어 LA 흑인폭동 사건이 일어난 후 TV드라마들에 뒤질세라 미국 올로케이션으로 제작한 영화라는 점도 관심거리였다. 다만. TV나 신문을 통해 알 수밖에 없었던 무릇 관객들이 느끼는 미국 - 막강한 힘과 거대한 음모가 노상 또아리를 틀고 있는 미국이 -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 날지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굳이 말하면 최근 새로운 기법의 영화가 속속 제작되고 있는데, 일종의 액자 소설식이라 할 영화 속의 영화, 강수연의 보디 페이팅. LA코리아 타운을 관통하는 도로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웨스턴 애비뉴』는 이를 테면 많은 기대감을 갖게 했던 영화인 셈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흥행실패가 그와 무관하지 않겠거니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을 『웨스턴 애비뉴』를 만들어 냈을까? 『웨스턴 애비뉴』는 그런 질문을 설득력있게 하기에 충분한 영화다. 가끔 생각해보지만 그것은 여러 가지 한계와 제약이 많은 TV드라마보다 영화가 못하다는 편견을 갖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미국이민 1세대의 좌절과 극복, 2세대의 방황과 사랑을 통한 그 나라에서의 자리잡기를 그린 드라마「억새바람」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 『웨스턴 애비뉴』는 그 그늘에 가리워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면 이제 중심 이야기를 간추려보자.8살 때 미국에 건너간 지수(강수연)는 메리앤이 되다.열심히 일한 부모의 성공으로 정상적 생활을 하게 되지만 지수는 의대를 때려치우고 배우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메리얀은 영화공부하는 백인과 동거하며 배우가 되기도 하지만 악세사리로 취급받는 동양인이 싫어 그와 헤어지고 방황과 타락의 쓴 맛을 본 후에 LA집에 찾아 든다. 아버지의 슈퍼일을 거들며 언제 그랬냐 싶게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가지만 흑인폭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을 느낀 흑인 노만과 둘째 오빠 바비(정보석)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웨스턴 애비뉴』가 뭔가 찡한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은 우선 이야기 틀이 너무 평면적 구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수가 부모를 따라 8살에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는 그 이유가 전혀 묘사되지 않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으로 건너 갔기 때문에 사건이 성립된 것이라 그것은 필수 억지라고 할수 있다. 지수의 가출동기가 너무 약하게 묘사돼 그녀의 방황과 타락이 끈끈하게 공감되지 않는 것도 『웨스턴 애비뉴』의 약점이라 할수 있다. 배우가 되려는 희망을 반대하는 부모의 말림만으로 과감하게 가출을 시도했다면 지수 시점에서의 해설이라도 더 보강해하여 인과적 리얼리티를 부여했어야 했다. 그점은 의대생인 지수가 왜 배우가 되려고 했는지 충분히 있을 법한 고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었던 데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수 있다. 물론 자신의 진로가 가던대로 가지 않을 수 도 있는게 흔한 노릇이긴 하지만 배우에 해나 꿈의 실현단계가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와 걸맞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 타락 끝내 집으로 돌아와 새 삶을 꾸려가는 것 역시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바로 흑인폭동 시점으로 이어지는게 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지수의 가출과 타락이 가족들에 의해 보다 비극적으로 구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흑인폭동사건은 고작 곁가지로 그치고 만다. 결국 미국 이민자들의 좌절과 고통에 대한 깊은 천착없이 접근한 셈이다. 미국에 대한 ㅊ정체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LA흑인폭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백인 사회의 구조적 모순, 그리고 그 와중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되고만 한인들의 과거와 현재의 비극을 환기시켜 뭔가 보여주길 기대했지만 그게 아닌 것이다. “미국의 풍물만을 담아내는 소극적인 로케이션 작품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국, 한국의 아이덴티티(동질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고 싶었다”는 장감독의 말은 그냥 희망사항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전혀 그 의도를 드러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수는 백인과의 동거 및 헤어짐에서 한국인 이민 2세로서의 인종차별에 반기를 들었고 흑인 노만 과의 사랑 및 사별을 통해 그런 점을 확인시켜줌과 동시 미국 땅이 결코 정붙이고 살수 있는 곳이 아님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또한 노만 아버지 루이스의 총상에 분격한 아버지(쟈니윤)의 발사로 아들 바비(정보석)를 죽게 함으로써 비극이 고조의 분위기를 잠시나마 느끼게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턴 애비뉴』가 실패한 것은 앞에서 누누이 말한 인과적 리얼리티 부족으로 끈끈한 박진감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역만리 미국으로 건너가 온갖 수모와 결국 죽음까지 맞게 되는 이민자들의 직접적 동기가 그려지지 않은 점은 장차 관련 영화가 풀어야할 과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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