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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7 | [저널초점]
회문산의 길과 환경영향평가
윤덕향/발행인 (2004-02-03 16:09:05)
얼마전 텔레비죤에 어떤 분이 나와서 기차 1등석은 돈이 많다고 해서 타는 것이 아니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방송국. 그 프로그램의 이름도. 그 말씀을 하신 사회지도층쯤 되어보이는 그분의 이름도 죄스럽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체로 1등석은 사업가가 조용한 가운데 사업구상을 하고 대학교수가 강의준비를 하는 등 조용한 가운데 생산적인 구상을 하는 곳이므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1등석을 이용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논리가 정연하고 그 말씀의 흐름이 하도 유창하여 도무지 그분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지당하고 타당한 말씀 같았다. 그러면서도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각종 공연장에 가면, 특히 조용한 가운데 가는 선율 하나도 흘림이 없어야 될 것 같은 음악 공연장에 가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어린 아이를. 때로는 유아정도의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은 조기교육이라는 면에서 이해가 됨직하다. 다만 아이가 칭얼거리거나 울어서. 공연 장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있음에도 그 아이의 보호자만은 전혀 무관심하다. 정녕 예술에 심취한 탓인가 아니면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니 이해하라는 대담함인지 그도 아니면 아예 내 돈대고 들어왔으니 시끄럽다고 느끼면 나가면 될 일이지 시비걸 일이 아니라는 뻔뻔함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이처럼 판단이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린이를 음악회에 데려갈 수도 없고 안 데려갈 수도 없다. 비교적 좋은 환경이라면 아이가 덜 칭얼거릴 것 같아서 큰 맘먹고 기차 1등석을 타는 것도 비난을 받으니 자가용이 없으면 걸어다녀야될까보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답답하기만 하다. 차라리 어느 대기업에서 판단을 위한 준거 틀을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했으면 좋겠다. 회문산에 길이 났단다. 장군봉 밑에까지 길이 났단다. 휴양림으로 개발하기 위하여 영림서에서 길을 냈단다. 회문산이 어디에 있는 산인지 모르는 분들도 길이 났고 휴양림으로 이용된다니 차를 몰고 한번쯤 찾아가봄직 하지 않은가? 그리고 전해지는 말로는 콘도도 세워진다니 그 더욱 좋을 법하다. 회문산이 우리 지역 현대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영림서라는 곳이 산림을 경영. 관리하는 곳이라니 휴양림을 조성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나뭇가지를 꺾은 것만으로도 가난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를 잡아 족치던 산간수들의 뒤를 이어 산림을 보호하고 산림자원을 개발하자는 곳에서 낸 도로 때문에 나무나 자연 생태계가 파괴될 일은 추호도 없으렷다. 정녕 멋진 일이고 축하할 일이다. 자연 생태계를 온존히 보존하면서 동시에 개발도 할 수 있다니 이야말로 꿩먹고 알 먹고 그리고 솥단지까지 들어 먹을 일이다. 회문산에 길을 낸 영림서에서는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히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문화재를 사전에 조사한 예는 없다. 왜 그같은 조사를 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할 말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같은 조사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법 조항이 있거나 개발이라는 목적이 좋으니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사소한 일쯤 생략해도 좋다는 변명이 준비되었을 것이다. 개발이라면 이런저런 논리가 통할 수 있는 곳이 우리 지역이다. 지리산에 길이 나고 주말이면 노고단 아래 온 길바닥이 도심부럽지 않게 차로 뒤덮히는 것을 보면 회문산도 오래잖아 그같은 성황을 누릴 법하다. 그럼에도 생태계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니 거의 환상적이다. 그런 한편 불안이 전혀 없지는 않다. 다가산 줄기를 잘라먹고 들어선 아파트나 모악산 산아래자락을 가리면서 웅장하게 들어선 아파트 건물이 개발이라며. 회문산에 길을 내고, 운장산, 장안산을 개발하고, 덕유산에는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고 이러다가 우리 도내에 무슨 산이 제대로 남아있을 것인가? 파헤쳐져 치부를 드러낸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에게 건강한 산소를 계속 만들어 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상대적으로 개발이 뒤진 지역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지역의 자연생태와 문화생태. 그리고 문화재는 상대적으로 외면되고 있다. 길을 내면서, 아파트를 지으면서, 농공단지를 만들면서, 경지정리를 하면서 생태와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같은 도내에 있으면서 문화재에 대한 사전 조사를 실시한 예는 거의 없다. 어쩌면 한 건도 없을는지 모른다. 최근 한국토지개발공사나 수자원개발공사, 도로공사 등에서 사업주체로 도내에서 시행하는 사업에는 문화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공영개발단에서 하는 사업이든, 새만금사업이든, 하다못해 작은 아파트를 짓는 일이든 간에 문화재조사가 의뢰된 적도 없고 의뢰되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공사중 재수없이 문화재가 드러나면 그리고 그것을 미처 없애기 전에 또는 문화재인지 몰라서 정말 불운하게도 관계전문가에게 발각될 경우는 있어도 사전에 조사를 의뢰한 적은 없다. 이러고도 우리 지역에 그럴 듯한 문화재가 없다고 푸념하면서 문화를 사랑하고 문화재를 개발하고 향토문화를 육성하겠다니 기가 막힐 정도가 아니라 귀가 막혀서 죽을 일이고 자던 소가 벌떡 일어나 코막고 웃다가 죽을 일이다. 개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재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비난하거나 회문산에 길 낸 것이 잘못이라고 결론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왕 뒤진 개발이니 다른 지역이 저질렀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으면서 지역나름의 개발을 절차에 맞게 하자는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참된 개발이 무엇인지 따져보자는 말이다. 적어도 공동체 성원들이 그같은 개발이 가지는 의미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공감대를 바탕으로 개발을 하자는 말이다. 회문산에 휴양림을 위해서 길을 내는 것이 좋은지 턱없이 부족한 임도를 내는 것이 보다 시급하고 좋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개발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이리저리 파헤치고 대수롭지 않은 생태나 문화 환경은 파괴해도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인가 먼 훗날 우리 지역에 수입해 올 산을 어느 저개발국에 지금쯤 사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더불어 없애버린 문화재를 채우기 위하여 소더비 경매장을 기웃거릴 때가 아닐까? 그리고 신토불이를 외칠 것이 아니라 판단의 준거틀을 수입하는 김에 아예 미국이나 일본의 문화를 통째로 수입해오는 것이 선진국에의 첩경이 아닐까? 이것마저도 정말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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