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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7 | [특집]
대학문화의 오늘, 그리고 전망 지금, 자신으로 부터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이종진/전북대학교 농생물학과 교수 (2004-02-03 16:12:09)
오늘도 연구실 창문 밖으로 우리 학교 제2도서관 앞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여느 때와 같이 길고 가지런히 늘어선 자전거 행렬, 밀려 들어갔다 밀려나오는 학생들의 발걸음, 제3도서관 신축공사장의 건설의 메아리등 도서관을 중심으로한 숨가쁜 생의 모습들이 펼쳐지고 있는 곳에서부터 젊음이 흐르고 삶의 생동감이 넘친다. 아직 새벽이 열리기도 전에 학문의 목마름을 청청한 아침이슬 한방울로 적시며 그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키고자 하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쏟아지고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 속에서 하나라도 더 내 것으로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격렬해진 생존경쟁에서 이기고, 앞장서 나아가려는 학생들의 영롱한 눈동자를 볼 때 마다 믿음직스럽기 그지 없다. 꽉 들어찬 열람실의 면면들. 뜨겁게 달아 오르는 학문에 대한 열정들. 모두가 우리들의 기쁨이요 자랑이다.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려워진 취업의 좁은문을 통과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생각에 미칠 때 또한 안쓰럽기 짝이없다. 다만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현실이 주는 무거운 압박감으로부터 오늘의 젊은이들은 매일매일을 가위눌림의 정신적 고통속에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복잡하게 얽혀진 먹이망 (food web)과 피라미드 사회 속에서 최고의 단계로 올라가려는 욕구와 그것을 부추키고, 그곳으로 몰고 가려는 오늘의 사회환경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너는 나와 우리 가정의 희망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꼭 좋은 곳에 취직을 해야한다.”라고 주문 외우듯 말하곤 한다. 그래서 더욱 취직을 위한 공부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말 오늘의 대학생들에게 자아실현을 위한 최대 목표가 취업에 있고, 그래서 그것을 위한 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싶다. 그러나 우리는 간단한 진리인 “산너머에 또 산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 산을 넘은 후 다음에 닥치는 더 높은 산은 어떻게 넘을 것인가? 편협한 지식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대학생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자 한다. 즉 “1-10-100단계”를 실천해 보라는 것이다. 1은 가장 존경하는 교수며 스승 한분이요. 10은 진정한 친구 열명이며. 100은 100권은 독서량이다. 대학생활 4년동안 진정 존경하는 스승을 최소한 한분을 모실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수 많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하더라도 그 중 가장 진솔한 친구 열명을 사귀라는 말이다. 끝으로 대학생활 중 적어도 10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보다 더 귀하고 큰 재산은 없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실천한 이는 어려움 속에서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좋은 무기를 가진 학생이 될 것이다. 다음에 우리 앞에 닥치는 산은 더 높기 때문에 혼자의 힘으로 넘기에는 너무 벅차다. 그래서 지인이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하다. 많은 학생들이 이를 실천하려 한다면, 도서관의 풍속도도 취업이나 시험준비만을 위한 장소에서 정보와 지성을 얻는 장소로 바꿔질 것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에 우리는 두가지 사건에 접하게 된다. 하나는 김영삼대통령하의 문민정부에 의한 6.10 민주항쟁의 역사적계승론과 새로이 출범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시위 및 김춘도순경 사망사건이 그것이다. 노태우대통령 통치하의 제6공화국이 막을 내리고 김영삼 문민정부 탄생으로 이어지는 최근 몇 년간 학교앞과 거리에서 최루탄 냄새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시위문화와 학생운동의 재정립이 형성되어 가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 뿐이 아닐 것이다. 과거 제도권과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속에서 운동권의 위치는 그 방향성과 목적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외면 당하기 일수였다. 그것은 국민과의 유기적인 호흡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 아이었나 생각된다. 4.19 이후 오늘에 이어져온 학생운동의 면면들 중 한때는 좌경이요 용공이라고 몰아 세워지기도 하고, 한때는 한국 민주화의 초석으로 정립되어지기도 한다. 특정한 날(6월10일)을 한국 민주주의의 전통성을 이어준 계승적 사건으로 기념하기도 한다. 따라서 4.19와 6.10으로 이어지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은 일반대중과의 호흡이 잘 맞아 떨어진 일이였고, 김춘도순경 사망사건과 같은 폭력시위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물론 다시는 김춘도순경사망사건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김춘도순경 사망에 대오의 뜻을 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아름다운 모습에서 학생운동의 변화의 일면을 느낀다. 결국 학생운동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적응과 국민적합의에 그 기초를 두고 이어져야 할 것이며, 어떤 경우든 평화적 시위문화가 견지되어야 될 것이다. 급속히 발전하는 정보화시대, 국제화시대, 그리고 경제화시대에서 작금의 우리 국민들의 의식은 점점 이기주의화 되어가는 느낌이다. 나 개인의 행복과 풍요만을 생각하게 되고, 주위의 어떤 일에도, 그것이 정의이건 불의이건간에, 개의치 않는 풍토로 이어지는 듯한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흔히들 오늘 우리사회에는 정신적인 지도자가 없다고들 한다. 사라져가는 도덕성과 정신문화를 다시금 우리 모두에게 불어 넣을 수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들은 기성세대이면서 동시에 학생세대 일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식개혁을 위한 학생세대의 미래지향적 방향제시와 그 실천이 학생운동으로 이어져 진정한 한국민주주의의 꽃이 피어 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 학생운동의 기본적인 방향과 역할은 곧 국민계몽운동 이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낟.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정부주도의 개혁과 민간주도인 정의사회실천협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국민의식개혁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일도 한가지 방법이 아닐른지... 세대차라고 이해하고 넘겨버려야만 할른지? 요즘 나에게 비친 대학생들의 생활모습은 상당부분에서 거리감이 있음을 느낀다. 지난 5월말 우리과 3학년 학생들을 인솔하여 설악산으로 졸업여행을 다녀왔다. 어려운 가운데도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졸업여행이라 별다른 효과를 기대한다기 보다는 학생들과 함께하고, 대화하며, 서로를 좀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속초에 지인이 있어 싼값으로 콘도미니움에서 숙식을 하였으며, 즐거운 대화 시간도 가졌다. 그런데 학생들은 모처럼의 기회이니 자주 나이트클럽에 가서 놀자는 의견이고, 나와 동료교수는 모처럼의 기회이니 이것저것 많은 것을 보고 배우자는 의견이었다. 학생들은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라도 절약하여 그 돈으로 마시고 놀았으면 하였고, 교수들은 늦게 까지 마시고 노는 것 보다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의 여행길을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또 학생들은 자신들이 교수들을 잘 모시고 있으니, 교수도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한턱 내야하지 않겠느냐는 눈치였다. 물론 전주에 도착하여 저녁을 함께 하였다. 어떤 것이 현명하고, 예의이며, 도덕인지, 서로의 견해차가 생기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아마도 세대차라는 것인가 보다. 또한, 언젠가 교내우체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표를 사려고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학생이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먼저 창구에 다가가 우표를 요구하기에, 주의를 주고 내 뒤에 와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학생이 “왜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느냐, 뒤에 서면 되지 않느냐‘하는 식으로 말하면서 자신이 더 기분 나쁜 듯이 말을 하기에 조용히 야단을 치고 타이른 적이 있다. 지금도 나는 그 학생이 고의로 질서를 안 지킨 것은 아리고 생각한다. 그저 습관적인 무의식에서 나타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작금에 우리들은 자신의 행동이 비도덕적임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캠퍼스 문화는 어떠한가? 강의실이나 교내 이곳저곳에 널려진 쓰레기. 아무곳에나 세워져 있는 자동차. 행사가 끝난 후의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는 잔디밭의 잔디들. 이들 모두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 들이다. 교문앞 골목마다 늘어선 소비. 향락업소들. 한쪽 손가락도 다 체워지지 않을 정도의 서점수에 비하면 또 얼마만큼인가? 정말 건전한 놀이 문화와 그 무대가 아쉽다. 대학가의 도덕성을 평가한다면 나는 감히 부정적인 측면에 서게 된다. 우리 젊은이들이 바로 지금 자신으로부터의 의식개혁이 필요한 때라 생각한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서 있으며, 또 어떠한가? 자신의 주위를 살피고 자신으로부터 모범을 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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