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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7 | [특집]
대학문화의 오늘, 그리고 전망 학생운동은 충분히 발휘되어야 한다
이종명/전북연합 조직국장 (2004-02-03 16:13:22)
불켜진 도서관, 변화한 시대의 희망의 불빛인가. 캠퍼스를 온통 연보라 빛깔로 물들이고 코를 자극하는 벚꽃향기가 자욱한 4월이었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내가 이전에 다니던 대학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이라도 제대로 찾아가지 못했던 나의 대학동기생인 정수라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미 캠퍼스는 어둠이 내리앉았지만 학원은 별로 변한 것이 없었고, 낯익은 그 도서관은 예전처럼 어둠속에 불빛을 쏟아놓고 있었다. 새벽에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내인생의 유일한 자가용인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하던 새내기 시절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대학을 나오지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끔씩 사회물정에 젖어있는 나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새삼 놀라기도 하면서 요즘의 대학문화는 어떻게 변하였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겉으로 느껴지는 외형의 변화만이 아니라 대학생들의 생활방식과 사고, 무엇을 고민하며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말이다. 아마도 이렇게 대학생들의 삶의 모습과 문화에 눈이 돌려지는 것은 그들의 어깨에 민족의 장래가 걸려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서관은 그것만이 가지는 독특한 냄새를 지니고 있었다. 공부하는 풍경도 가지가지이다. 대부분 영어와 전공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것만은 내가 다니던 9년전과 비슷하였다. 난 정수라는 친구로부터 요즘의 대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얻을 수 있었다. 먼저 대학생들의 공부내용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영어와 전공이면 충분했다. 허나 지금은 그것만으로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영어와 전공외에 컴퓨터 실무능력과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또 다른 자격증을 준비해 두어야만 요즘같은 취업전쟁시대에 사는 대학생의 기본교양인 것 같았다. 어느 사회에서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갭이 존재하듯 우리사회의 대학 역시 본래의 사명에 걸맞지 않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요점은 자유로운 비판과 진리탐구라는 대학본연의 기능도 높은 교육열에 못미치는 낮은 교육투자와 지나치게 현실 안주적인 권위주의 교육정책으로 우리사회의 한복판에 서서 치열한 고민, 창조적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도서관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말은 이러한 각도에서 보았을 때 진리의 상아탑이 자기몫을 다하려는 제 모습의 한부분일 것이다. 끊임없는 학문적 열정과 진실에 접근하는 지성인의 모습은 기성세대에 시사하는바 크며 우리사회의 장래를 열어나가는 한줄기 빛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학생들의 이러한 면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배경과 과연 어떤것이 주된 관심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없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90년대의 대학생들에게 영어회화와 컴퓨터실무지식, 운전면허는 마치 교양필수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또 대학생들의 세계관을 살펴볼 수 있는 독서경향도 80년대의 사회과학 인문과학 원론서들을 탈피해 쉽게 읽고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역사소설류와 각종 정보관계서적이 많이 읽히는 추세라 한다. 80년대에 한완상씨가 쓴 「민중과지식인」이 당시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는 점을 상기 해보면, 욕구의 다면화와 홍수처럼 밀려든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서경향이 점점 바뀌는 것은 엄청난 대중문화의 범람속에 살면서 다종다양한 정보와 지식들에 대한 요구가 다변화 되었으며, 하나의 사물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려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학점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 80년대 선배들에게는 취업이라는 관문앞에 절대적인 과제였으나 90년대 신세대에 학점은 직장을 구하는데 크게 불리하지 않을 정도로 관리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 오히려 그 시간을 여가로 활용하거나 직장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여대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직장을 구하기가 2배 3배 더 어려운 조건에서 2학년만 되어도 벌써 공무원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물론 필자가 현재의 대학생들의 생활중 일면만 과대하여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수백만의 대학생들이 혈기왕성한 청춘을 이러한 생활속에서 보낸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고급인력의 낭비이며, 나라의 지도급에 있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전공학문의 정열적인 탐구를 통한 자아실현과 사회와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큰배움(大學)이라는 간판은 약간은 빛바랜것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전공에 대해서 현 대학생들이 학문에의 호기심과 열정이 식어간다는 것은 한사람의 잘못된 시각에서 나온것도 있지만, 그러한 경향이 좀더 보편적으로 나타날 때 이미 그것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구조적인 문제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혹여나 그것이 개인의 자아실현과 사회발전에 기여라는 두 마리 토끼중 어느하나도 잡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떄가 늦기전에 무엇이 어디로부터 잘못되었는지 원인을 찾아내고 학문탐구의 참된의미를 다시금 새겨봐야 할 것이다. 전공학문이 취업의 도구가 아닌 학문탐구를 통해 명실상부하게 과학의 발전과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교수님들은 부단한 연구와 창조자의 정신으로 정진하고, 학생에겐 진취적인 배움의 열정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하겠다. 대학가, 더 이상의 천국은 없는가? 강의실에서 배우는 전공과목의 내용의 변화보다 대학가 주변의 외형과 소비를 부추기는 상술의 침투는 훨씬 속도가 빠른가보다. 대학가앞이 전주 제1의 소비거리로 등장한 것은 대학문화의 소비. 개인문화를 더욱 조장할 수 있는 여건이 오히려 강화된 것을 의미해 우려를 부러오고 있다. 돈만내면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고와 간편하고 순간적인 쾌락을 선호하는 경향의 증가는 우리사회의 부정적측면인 황금만능주의와 향락풍조를 그대로 닮아가는 모습에 다름아닌 것이다. 모름지기 대학문화는 좀 서툴더라도 우리것을 소중히 지켜내고 바르지 못한 사회의 문화풍토를 보다 건전하고 민족적인 것으로 선도해나가는 중대한 역할까지도 떠맡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을 생각하면 으례 미팅, 축제(대동제)를 연상한다. 고등학교까지의 꽉짜여진 입시 공부로 정신적여유가 없어서인지, 신입생만 되면 미팅에다 축제엔 지나칠 정도의 주(酒)판 대동제가 벌어지는 악순환을 거듭 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팅보다 소개팅을 많이 하고 술한잔 기울이면 노래방으로 직행하는 것이 보편적인 순서라고 한다. 신종 스포츠로 등장한 것이 바로 볼링으로 학교앞 볼링장은 대낮에도 초만원이라 한다. 노래방 뿐만이 아니라 비디오방과 빨래방 등의 등장은 대학생들의 소비패턴과 생활속에 구체적인 변화를 몰고온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대화를 통하여 따뜻한 정과 동료애를 나누며 교감을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말없는 물체를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이어폰을 끼고 걸어다니며 혼자만이 느끼고 즐기는 문화가 급속히 증가했다. 여기에는 인간들속에서만 흐르는 감정과 정서의 교류가 있을수 없으며, 동료나 이성간의 관계조차도 삭막함을 느끼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인스턴트 문화는 현대인의 생활에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확산배경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이른바 90년대이후 등장한 신세대, 뉴키즈세대가 주류인 이들이 높아지는 문화적욕구를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감각의 소비방식을 끊임없이 찾아나선 것과 관련이 있다. 책과 비디오 중 택일하라면 비디오를 택하는, 다시말해 80년대 세대가 한잔의 술과 나눌 수 있는 얘기만 있으면 되었다면, 신세대에겐 술과 춤과 노래를 동시에 즐긴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또하나는 대중심리를 쫓아다니며 엄청나게 폭발한 대중영상 매체를 통하여 소비, 감각문화로 파고드는 상술이 오히려 대중문화의 흐름과 그 유통을 장악하는데서 발생한 것같다. 우리 사회처럼 이윤만 보장된다면 언제 어디를 막론하고 보다 더 감각적이고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상술은 쫓아갈 것이며, 이것은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 이전에 이미 그것을 소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대중문화에 의해 앞도 당하고 있는 대학문화를 다시 살리는 것은 건전한 학원 풍토를 조성하고 교육환경을 개선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황금만능주의와 극도의 개인주의로 통하는 서구적 사고방식과 생활이 일반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건전하고 비판적인 지성인의 집단인 대학생들에게 좀더많은 기대와 책무가 주어지고 있다. 대학문화는 대중문화에 항상 신선한 충격을 주며 민족문화보급에 선도자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사실 대학생들이 학원에서 즐길수 있는 놀이는 아직도 부족한 형편이다. 그자체가 개발. 보급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전통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대적감각에 어울리는 놀이를 학생들속에서 생활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의 대학가 행사에 집단적인 놀이와 춤이 곧잘 등장하여 땀이 흠뻑배도록 춤추는 모습은 예전에 볼수 없었던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민족문제에 관심을, 국민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는 학생 운동을. 학생운동이 우리역사에 미친 영향은 결코 홀시 될 수 없다. 조선시대 왜군의 침략땐 조선의 유생들은 붓을 놓고 국권을 수호하고 나라를 지키는데 한사람같이 일어섰다. 일제치하에선 잃어버린 나라를 찾자고 부모와 고향을 등지고 독립운동의 길에 나선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3.1독립만세시위, 광주학생의거, 4.19혁명, 80년광주민중항쟁, 87년 6월항쟁 등이 모두 지금의 학생운동의 전통이었음은 다아는 사실이다. 항상 민족수난의 역사에 함꼐 놓여져 있는 학생운동은 세계역사를 찾아보아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한국현대사에서 학생들의 사회참여는 당시의 집권세력에 의해 늘 물리적 혹은 이념적인 왜곡을 감수하며 전개해야만 했다. ‘학생본연의 임무는 공부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라’ ‘이북의 대남정책에 동조하는 폭력세력’이라는 꼬리표가 학생들의 현실참여운동에 따라다녔다. 우리는 지난시절의 경험을 통하여 이러한 왜곡이 대부분 분단민족의 현실을 악용한 수구세력의 기득권수호논리라는 것을 꺠달았다. 운동권이라는 용어도 알고보면 현실참여를 기득권침해도 바라보는 집권세력의 포장된 관제논리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논리는 학생운동을 내부로부터 괴리감을 조성하고자 하는 의도가 흐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는데, 이러한 집요한 언론공세로 그들의 목적은 일정한 성공을 거둔것도 사실이다. 나는 학생운동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주장을 관철하는 방법 또한 언제나 올바른 것이었다고 억지로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단 학생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학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국한시켜 볼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적인 시야에서 이해하고 진단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국의 학생운동은 60,70년대 그 누구하나 입바른소리 내지 못하던 암울한 시절에 때묻지 않은 순수한 양심으로 답답한 국민의 가슴을 대변한 경험과, 일신상의 안일에 집착하지 않고 온갖 방해와 탄압을 이겨오면서 성장하였다. 또 그 과정에서 내부로부터 이슈와 방법에서도 시대의 변모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원의 자치활동의 자율과 다양한 학문탐구의 자유를 얻기위한 학원민주화운동에서부터 교육당국의 부정한 교육정책과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억누르는 폭압적인 정권을 교체하고자 하는 반독재민주화운동, 그리고 온겨레의 꿈인 민족의 재통일운동 및 외세의 내정개입을 민족의 입장에서 반대하고 우리민족의 자유와 자주권을 지켜내자는 반외세자주화운동 등이 주장들의 큰 흐름이었다. 사회주의권 붕괴이후 세계적인 정세의 변화 앞에서 한국의 학생운동도 이념적동요와 실천 활동에서 그 입지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실패로부터 교훈을 찾고 잘못된 것을 과감히 고쳐나가는 학생들 특유의 기질을 잠시동안의 동요와 혼란을 수습하고 현실에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출범부터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전대협의 후신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발족의 이것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 한총련의 지향과 목적을 알 수 있는 노선을 보면 생활. 학문. 운동의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기존의 정치투쟁일변도의 운동에서 학생들의 복지와 인권의 신장에도 눈을 돌리고 보다 실용적인 학문탐구의 자유를 획득하며 함께하는 현실참여를 실현해 나가겠다는 노선으로 생각된다. 학생회를 학생들 자신의 명실상부한 3위일체의 자치조직으로 가꾸어가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한총련이 출범직후 약간 과격한 시위와 시위과정에서 일어난 한 순경이 숨진사건은 학생 운동이 앞으로의 운동방식에 많은 교훈과 반성할 점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민정부시대에 학생운동은 변화한 시대속에서 학생회의 전국조직인한총련을 출범하는 등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을 이미 시작하고 있는 것같다. 예전엔 관심의 영역에서 약간 문밖에 있던 취업문제에 적극관심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으며, 보다 진보적학문을 배우기 위해 강의평가제 도입, 커리큘럼개편을 교수님과 함께 추진하고 있다. 또 깨끗한 대학을 위한 학교청소를 정례화 하는등 서서히 그 변화를 느끼게 하는 조그만 예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회에서 학생운동을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학생운동이 학생과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받으며 더욱더 새로워 지리라 믿는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혹자는 이제는 학생운동이나 소위재야운동이 할 일이 있느냐고 묻곤한다. 그러나 사회 각부분의 개혁작업이 집권세력내 수구세력에 의해 좌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제도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학생운동의 견제와 비판자적기능은 충분히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동서간의 화해시대가 도래한 이후 민족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탈냉전과 각국의 실리주의 외교정책 증대라는 국제환경의 변화는 신민족주의의 도래를 예고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학생운동은 학원의 민주화와 더불어 분단극복을 통한 민족화합과 평화정착이라는 민족문제해결에 애착을 가져야 함을 감히 말하고 싶다. 시대의 선각자로서 대학생은 변화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진취적으로 학문에 임하여 과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협소한 개인의 틀에서 현실에 대한 폭넓은 인식과 안목을 배양하는 것으로 그 지평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오늘의 대학문화는 우리 문화를 현시대 감각에 맞는 창조적으로 계승발전 시킬 것을 요구하는 바, 건전하고 공동체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문화의 보급을 통하여 만연한 소미, 개인문화를 극복하는 선도자적 역할이 소중한 때이다. 끝으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써 민주화의 제도의 정착과 분단극복이라는 과중한 과제는 학생들만이 짊어질 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나서지 않는다면 강의실에 안주하기를 바라는 바램들은 한낯 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오히려 약간은 미숙한점이 있더라도 학생운동이 올바른 자리매김과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와 성원, 충고를 아끼지 않는 기성세대의 아량과 포용력이 더욱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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