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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사회 고발과 독특한 영상미 『아담이 눈뜰 때』
장세진/방송평론가 (2004-02-03 16:15:53)
『영자의 전성시대』(1975), 『서울 무지개』(1989), 『미친사랑의 노래』(1990), 『사의 참미』(1991) 등으로 우리 영화사 한 페이지를 장식해도 좋을 김호선 김독의 14번쨰 영화 『아담이 눈뜰때』가 서울과 동시 전주에서 개봉되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은 것은 물론다. 감독 입문 20년째 (데뷔작은 1974년의 『화녀』)인 김호선의 영화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울 무지개』와 『미친사랑의 노래』이다. 두 영화 모두 기본적으로는 사랑을 깔고 있으면서도 사회고발과 독특한 영상미를 각각 보임으로써 색깔이 뚜렷한 작품이었다. 이를테면 단순한 멜러물 수준을 극복해낸 영화였던 것이다. 『아담이 눈뜰때』는, 그러니까 김호선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벼운 흥분마저 일게 한 작품인 셈이다. 말할나위없이 한 감독의 작품세계는 꾸준하게 새로워지거나 발전해 나가리라 믿기 때문이다. 『아담이 눈뜰때』는 이른바 신세대 작가로 불리우는 장정일의 동명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것이다. 원작소설을 읽어보지못해 유감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으로 갑론을박했던 『아담이 눈뜰때』역시 김호선 특유의 앵글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즉 바닥에 사랑을 깔면서도 결코 싸구려가 아닌 느낌을 주는 것이다. 대학시험에 떨어져 재수생이 된 아담(최재성)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19살, 형은 미국에 가 있지만 어머니가 청소부인 아담은 타자기와 뭉크화집, 그리고 카셋라디오에 연결하여 음악을 들을 수 잇는 턴테이블을 갖고 싶어한다. 그것들은 그의 섹스로 얻게 된다. 일종 매춘의 대가(代價)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섹스는 감독의 말대로 외부와 접촉하는 유일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기계문명과 산업사회가 인간의 본질적 고독을 더욱 부추기고 스스로 고립무원에 빠진 현대인이 즐겨 탈출할 수 있는 문은 오로지 섹스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그런 논리가 포스트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영화로 표현되는 과정에 있다. 어느 신문에 기대면 “장정일의 원작소설을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으로 분류되게 만드는 가치의 탈중심성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는 영화에 옮겨지는 동안 모두 새어버리고, 연쇄적으로 바뀌는 파트너와의 섹스현장과 주인공들의 젊음이 연소하는 디스코테크 풍경들만이 자극적인 화면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아담의 의식과 행동반경의 모순된 구조에 있다. 아담은 고교때 사귄 은선(이윤경)에 매달리다가 대학생이 된 그녀가 변하자 여고3년생 현재(이재경)를 만난다. 외형적 구조상 여자에게 버림받은 아담이 마치 복수라도 하듯 현재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아담은 은선에 대한 순수의지(사랑)때문 슬럼프를 겪다가 모든 고통과 압박감(여기에 대한 현실적 묘사는 극히 미약하다)의 도피처로 섹스를 이용하는 현재와의 ‘이층집’에 탐익하게 된다. 여화가(유혜리), 동성 연애자(박인환)와의 섹스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요컨대 아담의 성적유희는 다만 과정에 불과할 뿐 특별한 (예컨대 사회의 부조리함같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여화가로부터 받은 돈을 거절하고, 동성연애자를 죽이고 결국은선에게로 귀의하려는 아담의 행동거지에서 그런 점은 뚜렷히 읽힌다. 아담의 그런 의식과 행적은 인과적 짜임에 의한 논리의 리얼리티를 안겨주긴 하지만, 그러나 감독이 의도한 영화가 되게 하기엔 미흡해보였다. 차라리 현재와의 끝없는 섹스와 두사람이 겪는 가정, 사회 등 주변정항에 치중했더라면 뭔가 격이 다른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조금 어리석은 생각인 듯하지만 거기서 필자는 한편의 영화만들기가 소설보다 어려운 일임을 깨닫곤 한다. 소설은 혼자 씨름하는 작업이고, 영화는 여러 명이 ‘격투’하는 것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김호선의 색깔이 나름대로 드러나면서도 기존의 실험성 영화들-『경마장 가는 길』, 『그대안의 블루』들을 만나본 기분이 안인, 그저 약간 이해하기 힘든 영화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하는 말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여행중 들판에서 상의를 벗어던진 채 날뛰는 아담과 현재의 광기, 호모한테 겪은대로 해보라며 절규하는 현재의 섹스응용동작, 은선이 연극무대에서 느낀 절망감, 아담의 살인행각 등은 고통을 섹스로 환치시키고자 하는 의도적 화면일지라도 쉽게 이해된든 것들은 아니었다. 사는 존재가치에 대한 섹스의 절실함만으로 (그것은 여고3년생인 현재와의 경우가 특히 심하다) 이루어지는 이층집이 과연 신세대가 겪는 고통의 참모습일까? 한편『아담이 눈뜰때』는 여러 가지로 화제를 모은바 있다. 영화광고로선 점보트론을 어츰 이용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난 91년 3월부터 시작된 달리는 차 3대를 이용한 광고에 드는 비용은 월 7천 5백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의 선전효과로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한데서 새삼 아픔이 자리한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로 강인하고 거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아담역 최재성의 ‘화려한’변신도 화제거리였다. 기억하는 관객이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수 년 전 히트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신인 최재성이 보여준 하이틴스타로서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베드신-그것도 알몸 베드신을 여러 차례 해내고 있는 영화가 『아담이 눈뜰때』인 것이다. 그러나 김호선 감독의 또다른 영화 『미친사랑의 노래』에서 보여준 김구미자와 박진성의 베드신같이 ‘고품격’으로 와닿지 않는 연기였다. 그것은 최재성의 연기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시나리오 자체에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최재성 상대역의 두 신인 이윤성과 이재경의 ‘때묻지않은’ 몸매 역시 이렇다할 스타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영화계에 기대를 걸어봄직한 화제라 할 만하다. 우리영화에서 금기시했던 호모가 등장한 점이나 그 배역에 대해 기초를 다져놓은 박인환의 연기 또한 화제거리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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