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8 | [시]
더 깊은 섬 속의 사슴
박라연
(2004-02-03 16:24:42)
더 깊은 섬 속의 사슴
박라연
희망의 섬에 당도하며
또다시 무한천공 그 끄르머리에 닿을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더 깊은 섬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다
발목에는 주홍색 띠를 두르고 서 있다
수십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목숨마다
더이상 제 뿔을 쳐서 피를 뽑아 살아갈수는 없어
그렇게 헤매이며 살아갈수는 없어
여기에 왔으리랴
혼자서 흘린 눈물 고였다면
섬 하나는 거느릴 수 있을 것이랴
이제 여기는 고요하다
四季의 백팔번뇌
흰눈 속에 파뭍히어 제아무리 고요해도
더 깊은 섬 속의 사슴 그 외로운 귀에는
들리리라 누구나 한번쯤 사슴피가 되기도 하고
누구나 한번쯤 그 피를 먹기도 한다는 것
악다구니 세상과 멀어질수록 더 잘 들리리라
누구나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는 것
누구나 죽음과 한 몸이 되고 싶다는 것
둘 다 함부로 제 것이 될 수 없었던 기억을 지닌
더 깊은 섬 속의 사슴 그 두툼한 귀에는
행복할수록 더욱더 잘 들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