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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9 | [특집]
전북지역 문화단체의 여름나기 그윽한 솔숲의 낮과 밤 제8회 황문현 여름문화마당을 다녀와서
최소영/고창 흥덕중학교 교사 (2004-02-03 16:52:41)
태풍이 지나갔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 세력이 약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사고의 여파인지, 행사 전날에는 태풍의 무서운 위력을 한 목소리로 선전하는 방송들로 온 나라 안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하늘은 맑게 갰다. 이제까지의 노동을 뒤로하고, 우리 황토현 여름문화마당은 2박3일의 일정을 가지고 정읍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이 시윈하다. 진주를 출발한 버스는 어느 덧 원평을 지난다. 나는 멀리 옆눈으로 스쳐가는 만석보를 힐끗 바라본다. 만석보... 지나친 불세에 항거하던 농민들의 땀과 분노가 서려있는 곳. 지금은 오직 그자리에 유지비만이 썰렁하게 남아있어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듯하다. 멀리서 보니 어느 답사팀이 만석보 유지비 주위를 둘러싸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아마 동학과 고부농민들과 전녹두에 대한 이야기 이리라. 그리고 피비 린내 나는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서막과도 같은 만석보의 '물세ꡑ이야기일 것이다. 만석보를 뒤로하고 찾아 든 길에는 만석보를 부수고 세웠다는 '파보비ꡑ가 길 한 켠에 고즈넉히 앉아있다. 동행하던 선배의 '파보비ꡑ역시 또 하나의 선정비가 아니겠냐는 말에 나는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다 본다. 어느 덧. 차는 만목장터를 지나 덕천사거리에 이르렀다. 목적지인 정읍군 덕천면 황토현 전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은 때였다. 이곳이 약100년 전 동학군과 관군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곳이란다. 하지만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말끔하게 단장된 전적지와 모대통령이 세웠다는 녹두장군 기념비는 100년 전 그날의 현 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내 맘을 씁쓸하게 할 뿐이었다. 대강의 조별 분리와 간단한 점심식사후, 황토현 여름문화마당의 열림강의가 시작됐다. 전남대 송기숙 교수의 ꡑ동학농민전쟁의 주도세력ꡑ이란 강의가 그것이다. 약 100분에 걸쳐 계속된 강의에서 송교수는 동학농민전쟁은 반봉건, 반제국주의 투쟁이었으며 가난한 농사꾼들이 동학접주들을 앞세우고 일으킨 전쟁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그들의 봉기는 관의 늑탈과 폭압에 대한 항거이며 그 이전에 절실한 생할 상의 요구이기도 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서 연극인이자 서편제 영화의 주연이었던 김명곤씨와 함께 온 이성재 선생님과의 동학노래 부르기 시간은 송교수의 강의에 들뜬 우리들의 머리를 식혀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전래가사에 곡을 지어 만든 동학노래「검가」「옹야헤야」「녹두야」 등을 배우는 동안 농민봉기 그날의 함성과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해 가슴이 뭉클해옴을 느꼈다. 또한 서양음악에 익숙한 내 성대가 우리의 맺고 플고 떨고 늘이는 그 가락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했다. 저녁 7시. 간단한식사, 마른 밥에 김치 한조각, 미역국, 그래도 입가에는 웃음이 맴돌았다. 저녁 8시, 솔숲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달빛을 받으며 임재해 안동대교수가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재미있는 입담을 섞어 술술 풀어가는 '농민문화 전통과 생명운동ꡑ-밤이 깊어가는 줄을 몰랐다. “음악을 통해 역사를 본다ꡓ-한여름 제민당(濟民堂)의 녹두장군 초상화 앞에서 펼쳐진 ‘심인택 교수와 함께 하는 우리음악 감상회ꡑ를 보고 듣고 난 느낌이다. 아쟁, 대금, 거문고와 이름 모를 우리 악기가 만들어 내는 기묘한 화음, 거문고 독주. 가야금 독주 그리고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슬픔을 형상화한 산조음악에 이르기까지 구구절절 들려오는 가락은 서양음악에 찌든 우리의 귀를 말끔히 씻기고 우리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한밤을 가르며 우렁차게 울려 퍼지던 KBS 전주 소년 합창단의 조금은 잠긴 듯한 목소리도 더욱 애정 어린 눈길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정이 다 된 시간에 맞이한 열림고사, 희뿌연히 드리운 달, 달아래 시원한 바람이 노니는 솔숲, 「무당」의 소설가 정강우씨의 구수한 열음굿, 코를 치켜든 돼지머리, 그 옆에 놓인 탁한 막걸리 한 사발, 전북대 국악과 김연(?)씨의「사철가」「쑥대머리」 소리 한마당... ‘죽여준다ꡑ는 속된 표현보다 더 잘 어울릴 말은 없을 것 같았다. 이제 피곤한 몸을 눕히고 하루를 접는다. 새벽 내내 텐트 바깥에서는 아리랑가락이 들려오기도 했다. | 둘째날 여전히 우리는 그 그윽한 솔숲에 있다. 간단히 아침을 처리한 후, 우리는 ‘이사람이 사는 방법ꡑ이란 주체로 김영춘 시인, 서홍관 시인. 김용택 시인과 마주쳤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살리라ꡓ라고 ..특히, 김용택 시인의 촌사람임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구수한 입담과 순박한 웃음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또한 모든 생물에 정성을 다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그가 2O년 넘게 걸어다닌 ’길‘에 대한 사랑이며, 조막손이 아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고, 이는 바로 지고지순한 생명에의 접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점심식사 후, 인병선 여사와 함께 한 짚문화 슬라이드 강연 생산문화이고 기층문화인 짚문화의 이해를 통해 느낀 우리것에 대한 소박한 아름다움과 우리 조상들의 슬기에 절토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다. 또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기에 내가 찾아나서게 되었노라는 그녀의 소박한 말, 경제부흥과 근대화속에서 우리의 가장 소중한 알맹이를 모두 잃어버린 현실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했다. 저녁식사 후, 솔숲의 마지막 강연인 「전봉준의 생애」와 「전봉준창작판소리공연」에 이어 1O시 3O분, 겐지갱과 어울린 대동놀이 한마당, 너울대며 타오르는 모닥불 아래, 너울너울 춤을 추던 사람들. 신명... 그것은 신명 그자체이며 놀이 그자체의 마당이었다 8월1일 셋째날,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하늘이 새벽부터 흐려지더니 무지막지한 장대비를 쏟아붓는다. 무식하게 쏟아지는 비가 황토현 전적지 안에 내려 꽂힌다. 마치 수천수만 동학농민군의 순결하고 성스러운 속살을 비수로 후벼파듯이 그렇게. . 야영지를 철수하며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오던 길, 나는 기념관에서 보았던 녹두의 높이 메달린 처연한 머리, 죽창을 움켜쥐던 농민군들의 굵은 뼈마디 마디에서 오늘에 살아 숨쉬는 100년 전 그날의 역사를 읽는다. 쏟아지는 비. 피울음을 머금고 녹두를 부르는 농민군들의 노래. 다시 쏟아지는 비. 나는 가뭇없이 슬픔과 분기에 찬 환청에 사로잡힌다. 녹두야-녹두야一전 녹두야- 그 많은 군사 어디두고 쑥대밭에 낮잠자냐 전라도라 하늘이 울어 황토현에 비내리면 그미가 비가 아니라 억만군사 눈물일세 그비가 비가 아니라 억만군사 눈물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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