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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9 | [문화저널]
김환기의 환경이야기 풍천장어와 갯지렁이
김환기(2004-02-03 16:55:37)
뱀장어는 우리 하천에 분포하는 대표적인 민물고기 중 하나다. 영양가가 높아 예로부터 보신용으로 각광을 받던 어족인데, 이제는 남획으로 자연 하천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뱀장어는 육수(陸水)에서 생장기간을 거쳐 바다에 가 알을 낳음으로써 일생을 마치는 물고기이다. 호수, 하천 등의 육수에서 보통 5~1O년 동안의 생장기간을 거치면 어미가 되는데, 이때 뱀장어는 멀리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종착지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필리핀 근해의 바다까지 진출한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바다로 여행을 떠나 얄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하여 탄생한 어린 실뱀장어들은 어미의 고향을 찾아 다시 긴 여행을 시작한다. 바다에서 역으로 육수로 여행을 하는 것이니 이렇게 바다와 육수를 오가며 일생을 마치는 것이 뱀장어의 특성이다. 전북 고창선운사 입구의 인천강은 예로부터 뱀장어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잡히는 뱀장어를 ‘풍천장어ꡑ라고 부르는데, 다른 곳에서 잡히는 뱀장어와 달리 맛이 독특하고 영양가가 가장 높다. 원래 풍천장어란 인근의 줄포만에서 주로 잡히던 ‘붕청장어ꡑ가 변형된 말이다. 풍천장어는 육수에서 성장기간이 끝나고 산란하기 위하여 바다로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이 영양가가 최고로 높다. 이는 열목어, 연어 등과 함께 물고기들의 공통된 특성이기도 하다. 아마 긴 여행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충분히 공급받기 위한 생리현상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뱀장어는 바다로 들어가기 전 바다물에 대한 적응 운동을 하는데 감조구간(感漸區間)을 이용한다. 민물에서 살던 물고기가 갑자기 짠 바닷물로 들어가면 삼투압 현상으로 인하여 체내 조직에 이상이 생겨 곧 죽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의 인천강은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는 감조구간이 유난히 길었다. 자료에 의하면 지금 고창 읍내에 있는 석정온천까지 바닷물이 들어 와 그곳에서 민물과 만나 이루어진 감조구간이 장관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러한 긴 감조구간은 뱀장어가 바닷물에 적응훈련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동안 인천강 주변의 사람들이 질 좋은 뱀장어를 많이 잡았던 것은, 감조구간이 긴 지형덕택이었다. 그래서 선운사 입구에는 폐병 등 각종 지병에 시달리는 사람 들이 휴양을 하며 이를 먹기 위해 찾아들으며, 지금도 그곳에는 장어를 굽거나 고아서 파는 풍천장어집이 몇군데 남아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아무리 사냥감이 귀하고 배가 고프더라도 새끼를 배고 있거나 부화 중인 어미만은 포획하지 않는 미풍양속을 지녀 왔다. 그것은 모정에 대한 가없음의 이유도 있지만 그것들이 새끼를 낳고 부화하면 나중에는 더 많이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들 그러한 생명사랑, 인도주의직 정신이나 미래에 대한 배려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우선 당장 먹고보자는 식이다. 인천강을 가보면 거의 예외없이 바닷물이 틀어오는 모든 감조구간에 수십 겁으로 그물이 쳐져 있다. 날샌 뱀장어라도 그 수십 겹의 그물을 뚫고 바다 속으로 진출하기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용케 그물들을 뚫고 바다로 나가 산란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부화된 치어가 어미의 고향인 하천을 찾아오기도 또한 어렵다.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는 또 수십 겹의 모기장 같은 촘촘한 그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장 같은 그물에 잡힌 머리카락 크기의 그 실뱀장어들은 그들이 그리워 하는 어미의 고향이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 등지의 양식장으로, 달갑지 않은 길고 지루한 강제여행을 하여야 한다. 오랫동안 이러한 행위가 되풀이 되면서 인천강은, 아니 우리나라의 하천은 그 흔하던 뱀장어가 멸종되는 사태를 맞고 있다. 내일을 생각 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단견(短見)으로 인하여 야기된 당연한 결과이다. 지금은 인천강의 수십 겹의 그물에도 불구하고 뱀장어는 잘 잡히지 않는다. 인천강 주변의 그 유명하던 풍천장어집들은 자연산이 아닌 양식된 뱀장어를 팔고 있는 실정이다. 뱀장어가 잘 잡히지 않는 이유를 인천강 주변 사람들은 하천 상류의 물의 오염으로 돌려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하천 상류 물이 자꾸만 오염되어 뱀장어가 서식할 수 없기 때문에 풍천장어가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상류 하천의 오염이 뱀장어의 서식처를 좋지 못하게 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뱀장어가 우리의 하천에서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무분별한 남획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뱀장어는 수질오염에 비교적 강한 어종 중의 하나다. 연어나 은어처럼 물이 약간만 오염되어도 살 수 없는 그러한 어종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만해도 인천강에 은어가 흔했었다.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볼 수조차 없다. 은어의 멸종은 인천강의 오염과 관련이 깊지만 뱀장어는 그렇지 않다. 많지는 않지만 아직 인천강에서 상당량의 뱀장어가 잡히고 있다. 뱀장어가 하천의 오염에 잘 견디고 있다는 증거이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남획한 결과 큰 피해를 본 사례가 또 있다. 서해안의 갯지렁이 수집이 바로 그것이다. 갯지렁이는 플랑크톤과 함께 거의 모든 어종의 먹이가 되는 대단히 중요한 수산자원이다. 홀러간 옛이야기에 불과하지만 한때 서해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이 곧잘 풍어로 만선의 깃발을 드높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서해의 간석지 아무 곳이나 호미로 긁으면 갯지령이 가 무던히도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해안 어디를 가도 예전처렴 갯지렁이가 흔치 않다. 그래서 현재 동해안은 오징어로 풍년이 되어 오징어 파동이 일어날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서해안의 어부들은 빈배를 타고 귀항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일본으로부터 낚시 미끼용으로 갯지렁이에 대한 수입이 쇄도한 까닭에 서해안은 한동안 갯지렁이 채집으로 성시를 이룬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본업인 어업을 팽개치고 그물대신 호미를 들고 간석지로 몰려 갯지렁이 채집에 열을 올렸다. 갯지렁이 채집으로 얼 마 간의 엔화를 벌어들였지만 곧 바로 서해안은 조기를 비롯한 그 많던 어족이 사라진 쭉정이 바다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많은 수의 어민들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서해를 떠났다. 고기가 없기 때문에 쏟아부은 노력에 비해 수익이 적다. 선주들은 바다에 고기가 없어서도, 그리고 고기를 잡아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서도 배를 띄울 수 없게 되었다. 많은 배가 폐기되었거나, 서해안 곳곳의 항구에 발이 묶여있는 실정이다 갯지렁이로 약간의 엔화 소득을 올리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손해-피해-가 뒤따랐다. 지금도 호미를 들고 갯지령이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장래의 큰 피해-손해-를 아랑곳하지 않는 현대인의 무지(?)가 빚어낸 비극이 서해안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난리가 나고 심한 기근이 들어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도 종자만은 식량으로 쓰지 않는 인내와 지혜를 보여주었다. 지금 당장 굶어 죽어도 내 후손들이 나중에 종자가 없어 파종을 못해 굶어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종할 땅은 있는데, 심을 씨앗이 없어 손발을 놀리고 더우기 땅을 휴경(休親)한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고욕(苦 婚)이라고 우리 선조들은 생각했다. 현대인들은 씨앗이건 종자건 가리지 않는다. 나증에야 이떻게 되든 우선 당장 돈만 된다면 둥지 속의 알마저 꺼내다 팔려고 든다. 어떤 사람들은 갯지렁이로 얼마만큼의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웬 호들갑이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태계는 하부구조가 조금만 붕괴되어도 상부구조에서는 치명적이다. 우리나라의 산과 하천에 서식하던 많은 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무자비한 포획으로 그 종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호랑이 곰 늑대 여우 등등 생태계외 상부구조를 점유하고 있는 동물들이 없어진 데에는 그 하부구조의 생태계가 눈에 드러나지 않게 서서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해변에 있는 갯지렁이를 그대로 놓아두고,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갯지렁이를 수입해다 쓴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사 간 갯지렁이를 낚시미끼로 쓰고, 남는 일부들 그들의 해안 간석지에 방생한다. 그들 꾀 바다에 고기가 보다 많이 몰리게 하기 위해서다. 갯지렁이를 방생한 행위의 결과가 당장 눈에 띠게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 오지는 않지만 몇 해가 지나면 갯지렁이를 심어둔 그 바다에는 틀림없이 다양하고 풍부한 어족들이 몰려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주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생태계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서해안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곧잘 서해의 어장이 빈어로 허덕이는 이유를 인천강 주변의 사람들처럼 수질오염으로 돌려 이야기 하곤 한다. 그 말이 물론 전적으로 그릇된 말은 아니다. 인천강과 마찬가지로 서해안에 고기가 없어지는 이유로 수질의 오염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가 아니다. 하부구조에서 부터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생태계의 파괴가 더 큰 이유이다. 우리는 지금 작은 것을 취하기 위하여 큰 것을 버리거나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었다. 서해안의 빈어 현상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여 보다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하천의 대다수 뱀장어들을 비롯하여 인천강의 그 유명하던 풍천장어들은 다시 오기 힘든 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서해안의 물고기들은 갯지렁이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고 있다. 물고기나 뱀장어의 여행길을 되돌리려면 수십년. 또는 수백년이 걸릴지 모른다. 아니 이 보다 더 아득한 세월을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물고기/뱀장어들의 여행길을 되돌려 놓는 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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