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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0 | [정철성의 책꽂이]
아름다움을 찾아서 곽재구 기행 산문집『내가 사랑한 사람·내가 사랑한 세상』
주동후/ 소설가·광주 문화방송 편성부국장 (2004-02-05 10:55:07)
참으로 아름답다. 지금은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 좀 이르기는 하되 더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반백(半白)의 머리를 하고 '오래 눌러산 고장' 광주를 지키며 시심(詩心)의 본질인 사랑을 구가하는 우리의 곽재구시인, 그가 대학 일학년 때, 섬진강변엘 갔더란다. 문학을 지망하는 고교동창생 셋이서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국토순례 명목으로. 「저물녘 이면 강변에 천막을 치고 밥을 지어먹었다. 석유값이 아까웠으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석유버너를 피우지 않았다. 나무 불을 피워 냄비밥을 지었다. 까맣게 그을린 냄비 속에 피어난 하얀 쌀밥 꽃. 우리들은 삶의 가장 미세한 원소가 '아름다움'이라는 데 쉽게 동의했다. 된장을 푼 찌개속 에는 동강을 친 감자 몇 알과 강변 산밭에서 따온 풋고추 몇 개가 들어있었다. 어떤 풋고추들은 우리들의 가슴을 퍽 오래 얼얼하게 했다.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다움을 건사하는 일인가. 램프불 따위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이불자락인 섬진강의 모래를 등에 지고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은 그대로 램프의 꽃밭이었다.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다움을 건사한 일인가. 이 기막힌 정경과 그 정경의 묘사, 곽재구는 그렇게 하여 시작한 아름다움에의 기행을 후일 시인이 되고 삶이 부담스러운 가장이 되면서, 아니 그 이후 오늘까지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청준·한승원의 장흥 바닷가를 찾아가는 일도 서정주의 길마재를 오르는 일도 호텔에서 빌린 손전등 하나를 가지고 서역의 막고굴(莫高窟)을 찾아가는 일도 모두 이제껏 일관해온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함이요 사랑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한양출판의 『한양산문정신1』로 꾸며낸 예쁜 장정의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은 그가 이제껏 찾아가서 만나고 겪은, 그래서 그가 맛본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확인이요 위함이다. 열 다섯편의 기행 하나하나가 빛나는 저 서정의 문장과 '다가서려함'의 지순한 노력 가운데서 꽃피우고 있는 별이요 하늘이요 풋풋한 들꽃의 바람이다. 그는 고백하고 있다. 처음부터 나는 이들의 삶과 예술을 철저히 파고들 생각이 없었다. 능력과 지혜의 짧음도 원인이지만 가능한 빈자리를 많이 남겨두어 독자들 스스로 여행하고, 꿈꾸고 생각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라고. 기행을, 빈자리 남겨 둠의 여행의 묘미를, 또 글쓰기의 맛을 알고, 많은 독자들에 다가서는 우리의 곽재구. 이 초가을 나는 이 책을 읽어서 행복하고 나만의 행복이 너무 안쓰러워 못 견디겠다. 그래서 당신들에게도 나누고자한다. 한번 읽어보고 느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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