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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0 | [한상봉의 시골살이]
그 여자
김유석/시인 (2004-02-05 10:55:38)
낟알 튀는 소리가 싸락싸락 하다. 앗길 것 다 앗기고 줄 것 다 주었으나 그래도 남은 것들이 있어 허들 진 이 들판, 짓궂은 자연의 심술 속에서도 악착같이 또 한 생애의 울음을 끝낸 땅의 피톨들이 웅웅 거리며 기어다니는 거대한 갑각류 옆구리로 쏟아져 나온다. 한 움쿰 받아보아 쭉정이는 부쳐지고 또록 또록 한 알곡만이 톡 톡 튀며 빈 마대를 채우고 또 채운다. 버려 두면 그냥 잡초에 지나지 않았을 것들이 이토록 알뜰히 여문 것은 이른 봄 부터 여지껏 다린 사람의 정성과 땀에 다름아니건만 그 무엇에겐가 감사하고픈 마음들이 여기저기 누런 들판을 거두어 간다. 누에 밥먹듯, 한 필자를 베어내고 논두렁을 넘어서자 묵묵하던 기계가 짧은 시월 볕 재촉하듯 그만 가탈을 부리기 시작한다. 벌써 삼년 을 묵은 터라 잔손 탈 때도 되었건만 아무래도 국산은 미덥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남편의 애국심(?)을 의심해볼 겨를도 없이 부안댁은 연장통을 들고 논둑길을 내달린다. 잡풀에 채여 덜그덕 거리는 남편의 헌 운동화 짝, 가쁜 숨을 채 가누지도 못하고 서두는 남편을 도와 나사를 푼다 벨트를 벗긴다. 잔뜩 긴장된 채 성급한 남편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무심한 기계가 되기를 한참, 기름투성이가 된 손엔 느낌도 없이 상처가 나고 까무잡잡하지만 아직은 곱다할 얼굴엔 짚 까풀이며 먼지들이 싸구려 분가루처럼 푸석푸석 묻어난다. 그리고 까끄럽다. 한창 작업을 할 때엔 감각이 무디다가도 새참 때나 고장이 날 때면 온 몸에 돋는 꺼끄러기,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녀를 힘겹게 하고 짜증스럽게 만드는 일은 남편의 야박한 핀잔이다. 서당개 삼 년 이면 풍월을 한다지만 한철 부리고 헛간 구석에 줄곧 묵여 두는 콤바인은 아무리 눈동냥을 해도 해 바뀌면 말짱 까먹기 마련이어서 무안하게도 종종 남편의 마음이나 손가락 끝을 헛 짚게 된다. 어떤 때에는 자상하게 일러주다가도 작정한 일거리에 쫓길라치면 사정없이 몰아세우는 남편의 성깔을 고스란히 받아내기란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니어서 때론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남몰래 눈물을 찍어내기도 한다. 허지만 그런 감정들을 삶이란 이름으로, 혹은 벌써 십여 년 세월을 절인 부부간의 정으로 삭혀내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기에 다시 기계는 돌아간다. 그녀가 오늘처럼 막심 쓰는 일꾼이 되기까지의 내력을 읽자면 현재 우리 농촌이 처한 실상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서른네 해의 비망록을 요약하면 대강 이렇다. 그녀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읍에서 태어났다. 몇 걸음만 옮기면 지평선이 가물거리는 들녘에 엎드려서 갖가지 농작물이며 농민들의 일하는 모습을 흔히 보며 자랐지만 공무원 집안인 탓에 직접 농사일을 거들어본 기억이라곤 학창시절 일손 돕기 작업에 동원된 것이 고장이었다. 여학교를 마친후 대처로 나가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는 우연히 농촌 촌각과 맞선을 보게되고 그 만남으로 평범한 소시민적 삶을 꿈꾸어 온 그녀의 일생은 반전된다. 애초 그녀부부는 도시에 신접살림을 붙 치고 장사를 하였다. 벌이가 제법 짭짤하던 가게를 닫고 귀향길에 나서야 되었던 까닭은 갑작스런 시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고, 결혼 이년만의 일이었다. 장자로서 가부장적 책임을 다하려는 남편의 뜻을 다소곳이 따르던 그녀의 가슴엔 솔직히 흙에 대한 남다른 애착도 깨어있는 의식 같은 것도 쥐뿔 없었다. 오직 열심히 살아보리란 생각이 좀 막연했을 뿐이었다. 시댁은 대 농가 였다.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 여느 집 에는 없는 농기계들이 죄다 구비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사랑채엔 여지 껏 머슴이 들어 살고 있었다. 논일은 두 남정네가 추려나 갔고 몇 뙈기 밭은 부지런한 시어머니가 도맡다시피 하여 설은 농촌생활일망정 별달리 힘겨울게 없었다. 농촌살림이란게 원래 빠듯한 일과의 연속이지만 젖먹이를 떼기 전까지 적어도 그랬다. 다만 또아리를 받지 않은 머리 탓에 광주리를 엎지른 일, 치마차림으로 들밭에 나갔다가 된통 고생했던 기억이 씁쓰레한 웃음으로 가끔 떠오를 뿐이다. 새댁에서 명수엄마로, 다시 부안댁으로 호칭이 바뀌면서부터 그녀는 집안일보다 논밭에서 하루해를 깁는 나날이 늘어갔다. 그 무렵에 이미 벌이가 한결 낫다는 읍내 노가다꾼으로 머습이 직업을 바뀐 뒤였고 시어머니는 갈수록 연로해져 홀로 악착대는 남편 뒷서들이는 자연 그녀의 몫이 되었다. 해가 다르게 젊은 일꾼들은 고향을 등져 놉을 얻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품앗이를 하려해도 일타지 않은 그녀를 앗으려하는 집은 좀체로 없었으므로 대개는 식구끼리 호락질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남편이나 시어머니와 함께 거드는 일은 덜 겨웠다. 혼자 매는 밭두렁과 모때우기는 얼마나 팍팍하고 고달팠던가. 아무에게도 얘긴 안 했지만 물꼬를 보다가 미끄러져 도랑을 뒹굴던 일이며 등유대신 경유를 잘못 부어 기계를 고장내던 일들은 그녀에게 보람보다 짙은 회의를 안겨주곤 하였던 것이다. 어느덧 몸빼차림에 깜장 통 구무신이 어울릴 때쯤 그녀는 웬만큼 일거리를 잴 줄도 알았고 이따금 품앗이에 불려나가기도 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논까지 물에 잠기게 한다거나 병해충을 구별 못하던 일들은 까마득해지고 비록 바퀴자국을 삐뚜루 쓰긴 해도 트랙터까지 몰 줄 아는 상머슴이 다 된 것이다. 그러나 몸이 익은 만큼 여유가 생기는게 아니라 오히려 일감이 늘어갔다. 농사를 더 많이 짓게 된 것도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서둘게 되는 것은 온갖 농기계를 갖추고 있는 탓에, 젊기 때문에 남의 농장 업을 대행해 주어야 만하는 까닭이다. 자기네 일만으로도 내외에겐 벅차므로 고개를 젓지만 선금을 꼬옥 쥐고와서 통사정을 해대는 지긋한 농투사니들을 끝내 거절할 수 없어 이웃마을까지 작업을 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논갈이에서부터 모내기, 추수에 이르기까지 의무(?)처럼 남의 집 일을 해주느라 남편이 논을 비울 때면 그녀가 대신 둘러봐야 하고, 콤바인의 경우는 내외가 함께 나가 진종일 남의 논배미를 기어다녀야 했기에 늘상 눈코뜰 새가 없게된 것이다. 하여 그만 한 나이에 그녀의 손가락은 마디마디 공이가 박혔고 얼굴은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봐도 화장이 받지 않는 흙때깔 든 댁네가 되 어 버렸다. 그렇게 여자의 아름다움을 흙과 바꾸어버린 부안댁. 이제는 서투나마 흙을 다룰줄도 알고 못지 않게 흙을 사랑하는 그 여자. 땅거미가 진다. 고장으로 다소 작업이 늦어졌지만 논머리에 널린 볏가마들을 세어보는 마음이 노을 같다. 평년에 비해 많은 소출은 아니나 이때만큼은 참 넉넉하고 보람차다. 그러한 잠시, 미운정으로 건내는 남편의 잔에 입술을 적신 후 볏가마들을 트랙터에 실어야 한다. 종일 삐걱거리던 어깨, 그 어디에 남아있었던 힘일까 불끈 한 가마를 들어올리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히 어스름에 섞이는데 하루 일과는 아직 다 끝나 지 않았다. 싣고 온 벼를 건조기에 집어넣고 늦은 저녁을 몇 술 떠 넣고, 대충 빨래감 들을 주물르다 보면 밤 열한시. 오후부터 술의 힘을 빌던 남편은 벌써 곯아떨어져서 간혹 과열되어 불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 저 건조기 소리를 밤새 가늠해야 하는 일이 다시 그녀의 몫이다. 내일은 또 정읍댁 네 벼를 베러가야 하는데, 비몽사몽간에 건조기는 돌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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