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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0 | [문화저널]
외면해선 안 될 여성해방, 인간해방 90년대 영화를 통해 본 여성
여성 문학연구 모임 (2004-02-05 11:03:57)
한국영화사를 개괄해 볼 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영화는 여성이라는 주제에 강하게 매혹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관객에 여성이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의미심장한 하나의 징후로 보여지며 한국영화에서의 여성상의변화는 유래 없는 가부장적 전통 속에 살아온 이 땅의 여성들의 삶의 궤적을 사려볼 수 있는 훌륭한 자료가 된다. 가까이 70년대의 『별들의 고향』이나, 『미워도 다시한번』류의 영화에서는 희생적이고 순종적인 여주인공들의 순애보적인 사랑, 그리고 80년대의 『매춘』류의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영화에서 여성은 성(性)의 상품화를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고발하는 피해자로, 또는 수동적인 성의 주체로 자리매겨져 있다. 90년 대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여성은 능동적인 성의 주체로 등장한다. 『결혼 이야기』를 선두로『그대안의블루』, 『그 여자, 그남자』등이 바로 그것이다. 신세대의 특성을 감각성, 즉흥성으로 규정짓고, 그들의 기호에 맞게 제작되어 '신세대 영화'라고 불리워지는 이들 일련의 영화에 대해 평자들은 UIP직배라는 암초에 걸린 한국영화계에 활로를 개척한 참신한 기획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나친 상업주의를 비난하며 한국영화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 비난을 받든 칭찬을 받든 간에 이 흐름은 유래없이 많은 영화팬들과 영화평론가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형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우리 영화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표피적인 평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영화를 문화라는 넓은 영역의 한 측면으로 보고, 우리 문화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고 잇는 가, 또는 바람직하게 기여하고 있는 가라는 비판적인 시각에서의 평가작업이 더욱 절실할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들 영화들을 통해 한국 영화사에 일관된 성의식의 진전 또는 여성문화의 발전에 대한 아주 주관적인 분석을 시도해 보려 한다. 이들 일련의 영화들은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는 화이트칼라 신세대들의 생활양식과 성(性)관을 참신한 연출력과 미학적인 기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혼이야기』는 방송국 성우와 PD라는 직업의 남녀를,『그대안의블루』는 디스플레이어라는 직업을, 그리고 『그 여자, 그 남자』 역시 방송국 PD와 간호사인 남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자유로운 성, 평등한 성을 주장하고 있다. 『결혼 이야기』의 주인공 지혜와 태규는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주위 친구들의 정성어린 충고(?)를 무시하고 결혼한다. 극 전반에 보이는 적극적이고 적나라한 애정표현, 그리고 감각적인 실내공간, 투철한 직업의식 등은 신세대적 사고방식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신출내기 부부는 '은밀한 성'과 '즐기는 성' 사이의 갈등을 겪는다. 남성은 여성에게 은밀한 성애를 강요하면서 자신은 개방되고 즐기는 성을 요구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동등한 성관계, 서로가 즐길 수 있는 성관계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동등한 성관계는『그 여자, 그 남자에서 획득되고 있다. 간호사인 은이와 PD인 창이는 같은 오피스텔의 옆집에 살면서 서로 다른 파트너와 자유로운 성관계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파트너들의 결혼요구로 인해 관계는 깨어지고, 이제 창이와 은이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성(性) 뿐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고, 또한 홀로서기를 상징하듯이 한이불을 덮고 같이 잠을 자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도 파국을 맞게 된다. 창이의 잠재된 남성중심의식이 은이를 억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다. 관계가 안정이 되면서 창이 자신은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은 채 은이에게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감정에 은이가 맞추어주기를 바란다. 즉 창이는 기존 남성이 져야하는 남성의 의무 즉 경제적 부담(여기에는 결혼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모든 의무를 의미한다. 즉 아내에 대한 부양의 의무와 순결의 요구, 그리고 양육의 부담 등이 포함되어 있다.)은 회피한 채 남성중심사회가 성취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남성의 이기를 보여주고 잇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의 기득권 고수의 노력은 『결혼 이야기』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지혜와 태규의 성관계에서 보여주는 갈등도 바로 여성의 침묵과 희생을 미덕으로 하는 남성중심적 전통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세대의 중요한 의식상의 모순에 의해 발생하게 된 두 영화의 파국은 결국 구태의연한 화해로 끝이 난다.『결혼 이야기』의 두 주인공은 서로에 대한 추억과 감상, 외로움에 젖어서 정체가 분명치 않은 어떤 반성(?)으로 화해하게 되고, 『그 여자, 그 남자』는 파국 이후 약 1년의 시간이 경과한 이후에 결합이 이루어지는데, 초기의 자유분방한 인물들이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내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나게 함으로써 극 전반에 내세우던 자유로운 성관계를 통한 신시대적 남녀관계의 구축이라는 구도를 사랑이라는 구태의연한 주제로 되돌리고 있다. 물론 사랑 자체의 숭고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 기간 여성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끊임없이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남성중심주의의 한 전략으로서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아무리 '일하는 여성' 또는 '자유로운 여성'운운 하여도 '여자란 별 수 없다.'는 멸시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결혼 이야기』와 『그여자, 그 남자』에서 보이는 이러한 한계는 『그대안의 블루』에서는 어느 정도 극복된 듯이 보인다. 강요된 결혼을 뿌리치고 가출한 유미는 호석이라는 전위적인 디스플레이어를 만나 24시간 고용되어 전문직 여성으로서 자리잡아 간다. 그러던 중 유미는 첫사랑의 상대를 순애보적으로 기다리다가 결국 결혼을 하지만 가정이냐 일이냐의 갈림길에서 일을 선택하고 자유로운 직업여성으로서 살아갈 것을 선언한다. 그러나 이 영화도 중대한 의미상의 결함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유미가 호석에 의해 재교육되어져 왔다는 구도가 가지는 모순이다. 유미와 호석은 같은 공간에서 거주하지만 성에 의한 관계는 아니다. 호석은 사랑을 부정하고 여성이 일과 결혼을 양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한다. 결국 여성이 전문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혼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성을 누리면서 직업에만 성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남성에게도 적용되는 논리인데,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호석 자신의 직업적 패배, 그리고 인간적인 소외, 그리고 동반자로서의 유미를 갈망하는 결말은 이미 논리적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유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고, 일과 결혼의 양립을 믿었던 유미가 결국 이혼하고 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논리의 결함을 인정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그대안의 블루』도 역시 많은 것을 이야기 하지 못하고 만다. 이러한 약간의 시사점과 많은 논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화들은 여성을 능동적인 성의 주체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정한 여성의 지위향상과 여성의 해방 더 나아가 인간 해방을 위한 성의 해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이제 진정한 주체로 서려한다. 그러한 현실을 한국 영화계도 더 이상 외면하여서는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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