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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1 | [세대횡단 문화읽기]
『그는 때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여성의 전화 10주년 기념 공모수기
여성문학연구모임 (2004-02-05 11:23:07)
'신한국 창조'라는 명제 속에 새로운 인간상, 발전하는 한국을 만들어 보자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우리는 요즈음 '원시적' 대형사고를 하늘과 땅, 바다에서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들을 보며, 우리는 인간이 말하는 발전과, 선진국이라는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이러한 사고들은 외형적인 눈부신 경게성장속에 가리워져 은폐되어 있던 '문명'과 '발전'의 치부가 서서히 들어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성상위', '남녀평등', '인간해방' 등의 화려한 미사여구속에서 악취를 풍기며 여전히 꼭꼭 숨겨져 '문명 속의 원시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있다. 그들은 바로 '아내'와 '며느리'들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한국 여성의 전화 10주년 기념 공모수기 『그는 때리지 않았다고 한다』는 타임머신을 타고 고도문명시대와 아직도 '북어와 여자는 3일에 한번씩 패야 맛이 난다'고 믿는 '남존여비敎'를 신봉하는 원시시대를 넘나드는 이들 아내와 며느리들의 매맞는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1989년 한국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편들 중 57.5%가 배우자를 때린 일이 있다고 하며, 한국 여성의 전화 91년 구타상담 총 1,167건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일주일에 2-3회 이상 맞는 경우가 47.1%, 한달에 2-3회 이상이 41.2%, 일년에 몇 차례 비주기적으로 맞는 경우가 14.7%로 아내 구타가 상습적이고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92년 한국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아내를 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남성의 경우 무려 67.6%, 여성의 경우 46.0%에 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남성들의 의식뿐만 아니라 여성들 자신도 진정한 삶의 주체로 서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수기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통계자료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정내에서 여성은 폭력의 위험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여성들은 분노와 굴욕감속에 책을 덮으며 이야기 한다. 아직도 이렇게 살아가는 여자들이 있느냐고, 그러나 이것은 실제상황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삶에 눈을 감고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우리(여성)의 삶의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로, 수기를 쓴 11명의 주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자신들도 처음에는 꿈과 희망에 부풀어 결혼을 하였다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남편의 습관적인 구타와 주위의 무관심, 시댁 식구들의 냉대 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다만 대를 이어주는 씨받이며, 가사노동을 위한 돈안드는 가정부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어떻게 매맞고 사느냐고, 나는 매맞으면 이혼하겠노라고, 그러나 이들 매맞는 아내들도 과거에는 구타와 이혼을 곧바로 연결시킬수 있었던 귀한 딸이었다. 그런 그들이 매를 맞으면서도 참아낼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인 부정의식이요, 아이들에 대한 모성애요, 경제적 자립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오랫동안 길들여져 이제는 체화된 타자의식으로 인해 주체로서 자아를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더러운 오물을 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지않으려 한다. 그것을 치우려하지 않고,단지 패해가며 눈길을 돌려버린다. 여성구타의 현장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맞는다는 사실이 더러운 오물인 것처럼 또는 수치로 여기며, 드러내어 치우기보다는 감추고 눈감으며 현실과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러운 오물을 덮어두면 냄새가 나고 결국에는 썩어버리듯이, 폭력을을 방치하면 그것은 더욱 빈번한 폭력을 낳고 결국에는 자신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이 수기의 심사평에서 소설가 이경자는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인정하지 말자. 남편이라는 남자는 사회생활 속에서 자기보다 더 힘가진 남자로부터 심리적, 경제적, 신분적 폭력을 당하고, 가정에 화서 아내를 폭행하고 그 아내가 아이를, 아이가 집안의 가축이나 자기 자신을 폭행하는 폭력의 사슬 구조를, 우리 여성이 끊어 보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 여성은 자신의 삶이 남편에 의해 보호된다는 믿음에서 깨어나자. 아내와 남편은 보호받고 보호하는 관계가 아니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사람과 사람은 절대로 소유될 수 없다. 의지와 판단력을 가진 자유로운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자기존엄성을 이끌어낼 때, 우리는 선연히, 남편의 우월주의와 그것이 밑받침하고 있는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또 한편, 내가 매를 맞거나 이웃에 매맞는 아내가 있을 때, 우리 여성 스스로가 그런 아내를 경멸하거나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진정으로 수치스럽고 경멸해야할 대상은 가해자인 폭력남편이므로, 그리하여 마침내 폭력남편을 만들어내는 남성중심적 위계질서의 폭력성과 대결해야 하므로...... 1930년대 여류소설가들의 작품들, 특히 강경애의 『소금』이나 백신애의 『식인』같은 단편들을 보면 1930년대라는 척박한 시대상황 속에서 여성의 삶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 시기는 서구문명의 유입으로 인한 우리 근대문명의 발전기이기는 하나, 여성해방운동사의 측면에서 보면 원시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의 삶과 『그는 때리지 않았다고 한다』에 수록된 여성의 삶은 놀랄만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국 사회적으로나 경제적, 정치적으로 우리의 삶은 놀랄만한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으나, 가정은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속에서 고립된 하나의 섬으로, 여전히 힘에 의해 결정되는 위계질서라는 원시적인 속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한다. 아니 변해야만 한다. 여성들은 이제 스스로 순종과 인내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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