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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1 | [문화저널]
밖에서 찾지 말라
김두경/서예가. 편집위원 (2004-02-05 11:24:02)
산너머 산이요 물건너 더 큰물이라더니 요즈음 우리네 사는 형편을 두고 이른 말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랜 진통 끝에 태어난 문민 정부가 기운도 차리기전에 쌓인 장애물들로 힘겨운데 예상치 못했던 사고마저 때를 맞추니 엎친데 덮친격이요 옹이에 마디꼴입니다. 열차 전복 사고와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겨우 추스르고 나니 이번에는 대형 여객선 침몰사고라니요.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리고 슬픔도 제워버려 빈 어깨의 흐느낌도 잦아들고 찬바람만 황량한 가슴을 쓸고 갑니다. 척박한 땅일수록 한줄기 바람에도 먼지가 일 듯 척박해지고 쓸쓸해진 가슴에 찬바람은 더욱 차겁습니다. 누구에게 하소연 하며 누구를 원망해보며 누구를 붙들고 통곡해본들 이 슬픔 어쩔 수 있겠습니까. 무심한 가을 하늘은 오늘도 감중련한체 찬바람만 소슬합니다. 더구나 이 모든 사고들이 조금만 정상적인 마음으로 운행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사람의 안일과 방심의 결과라니 가슴 저림은 생각할수록 더해갑니다. 듣자하니 이 엄청난 사고를 두고 선체의 구조적 결함이 어떻고 삼각파도가 저쩌며, 정원초과, 화물적제 초과, 기상 조건을 무시한 무리한 출항 등 수없는 원인을 지적하고 분석했습니다. 또 떠도는 이야기까지 덧붙이자면 기상악화로 도저히 출항할 수 없다는 것을 동승했던 고위관리와 경찰들이 힘(?)을 써서 무리한 출항을 시키며 힘자랑 했다는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일지요. 어떻든 지적도 좋고 분석도 좋습니다. 그 모든 것이 치료와 재발 방지를 위한 처방일테니까요. 하지만 그 어떤 분석이나 처방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모든 사고들이 그렇게 일어날 수 있도록 방심한 우리들 마음이 진정한 문제의 원인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왜 그런 문제의 마음을 내는 것일까요. 혹자는 우리 민족의 민족성이 얼렁뚱땅하는 기질이 있어 그렇다고 말씀하시고 어떤이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앞에 닥친 모진 시련을 살아내던 습관, 즉 임시 방편적 습관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런 말씀에 수긍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저의 좁은 소견을 덧붙이자면 정의로운 가치관이 바로서지 않고 물질 만능의 가치관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돈만 있으면 귀하신 몸인줄 착각하게 하고 또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있고 권력있으면 귀해지는 것은 윳신이지 돈 있고 권세 있다 해서 정신까지 귀해지는 건 아닐진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물질 쪽 밖에 생각을 못합니다. 서글픈 일이지요. 이러한 까닭에 물질적으로 눈 앞에 보이는 곳만 귀해지려다보니 돈과 권세를 탐욕하게 되고 횡포하게 되어 모든 구린내 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그 등살에 착하고 성실한 못난 우리네 벗님들도 덤으로 꺼꾸러져 원통하기도 하고요. 올해의 굵직한 사건 사고 뿐 아니라 사람사는 구석구석 썩어가는 곳을 보면 반드시 탐욕하는 이기심이 찌들어 있지 이타심으로 썩어가는 곳은 없을 줄 압니다. 옛 말씀에 "밖에서 찾지 말라"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철저하게 자신을 파헤쳐 이기심을 버리고 정의로운 가치관을 세우면 이타구아(利他救我)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원래 어떤 종교에서 진리를 찾으며 "밖에서 찾지 말라"는 뜻이지만 인간사 빛과 그늘에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말씀으로 여겨져 말씀 올립니다. 미치도록 푸르러 더욱 슬프고 감중련한체 말이 없으신 하늘에 햇살이 유난히 따사로와 더욱 가슴아픈 이 가을에 깊이 깊이 새겨봄직한 옛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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