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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1 | [문화와사람]
「그들은 꿈꾸고 있었다」 -해당사항 없음-
김화숙 / 원광대 교수, 현대무용단 사포 예술감독 (2004-02-05 11:25:56)
무엇엔가 한곳에 정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나머지 모든 것엔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지갑에 무게가 느껴질만큼 동전이 쌓일때면 난 으레히 작품속에 빠져있을 때 였다. 작품의 구체적인 주제가 정해지고 그리고 그 작품에 서서히 몰입되어가면 난 상대편과의 대화중에서도 그리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간에 습관적으로 나혼자 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버린다. "엄마 지금 또 딴 생각하지?" 내 딸 솔이가 어렸을 때 곧잘 내게 던진 질문(항의?)이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딸아이도 무용을 전공으로 택해 나의 이런 습관을 이해해 주고 적극적인 지지자의 입장에 서서 경고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딴 생각속에 잠겨있는 내 자신을 너무도 자주 느끼기 때문에 현대인의 필수과목인 운전면허 시험을 난 아직도 불 엄두를 못내고 있다. 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적어도 1년 동안은 솔직하게 그 작품과 열애를 한다고해야 할까. 이 시기에는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보든지 간에 모든 것은 춤으로 환원된다. 평소에는 너그럽고 제자들과 격의없이 지내는 나지만 일단무대에 작품을 올렸을땐 난 누구보다도 냉정해진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일회성의 예술인 무영의 특성 때문닝까. 난 누가 뭐래도 무대에 관한 한 '독재자'다. 제자들의 일상적인 잘못은 열 번도 용서가 되지만 춤에 관한 한 용서가 불가능하다. 춤을 대하는 태도, 연습의 불성실함, 특히 막바지의 무대연습 시간에는 더욱 더. 평소의 연습과 달리 무대 총리허설은 의상과 조명이 첨가되고 그리고 당일에야 효과를 알수 있는 무대장치가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니까 그동안 상상속에서만 그려왔던 작품의 상황들이 구체화되는 순간이라 말할 수 있다. 어찌 신경이 곤두서지 않겠는가! "예술감독이란 그렇게 높은 자리요? 말 한마디에 무대가 꼼짝없이 움직이고, 그런디 어디 무서워서 말이나 해보것소?" 내가 무대연습 시키는 현장을 지켜보시던 어떤 분께서 나중에 내게 던진 한마디다. 93년엔 2년동안 묵혀왔던 작픔 [그들은 꿈꾸고 있었다}(대본/한혜리, 안무/신용숙, 음악/쇼스타코비치, 미술/이순종, 조면/정진덕, 무대감독/강경렬)를 무대에 올렸다. 그러니까 난 작품전체를 콘트롤하는 예술감독 자격으로 함께 작업에 참여했다. 연극에서의 연출이나 영화에서의 감독의 위치랄까. 그동안 무용계에서는 무용에 과연 연출이 필요한가? 라는 얘기가 종종 있어 왔다. 안무가(choreographer)란 무용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며 창작자이다. 즉 주제가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구체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작품전체를 구성하고 그 작품전체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사람이다. 안무가는 이렇듯 작품 구성과 무대전체를 컨트롤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경우 안무가가 무용수를 겸하고 있기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난점을 갖게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 3의 눈 즉 연출자가 작품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있다. 작품 자체를 위해서는 이 작품은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다. 어느 봄날 서울근교 장흥에 있는 토탈 미술관에서 우연히 이순종씨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이순종씨는 자신의 개인전에서 배를 전시하고 있었고 그배를 보자마자 함께갔던 대본작가와 난 {그들은 꿈꾸고 있었다}의 무대를 동시에 떠올렸다. 이러한 우연한 만남은 결국 이순종씨를 이 작품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게 했다. 이제 작품을 위해 남아있는 가장 큰 숙제는 음악, 작곡을 의뢰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큰 일종의 모험이다. 어느날 우린 또 우연히 쇼스타코비치의 곡과 만나게 된다. 이 음악은 오롤지 이 작품을 위해 작곡해 놓은 것처럼 장의 구분까지 꼭 맞는다. 이렇게 완벽한 음악과 미술과의 만남은 92년 봄에 이미 끝나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연 2년, 제14회(92)와 제15회(93) 서울무용제에서 낙선하게 된다. 낙선 이유에 대해서는 서울무용제 자체가 워낙 선정기준이 애매모호하여 지금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들이 꿈을 꾸어야겠는데 왜 이렇게 꿈꾸기가 어려운지...... 워낙 대작이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공연이라서 영세한 지방무용단체 자체의 힘으로는 무대에 올리기 아예 틀린 것 같고, 그러나 다행히 작년부터 시작된 전국무용제가 이 작품을 무대화시키는 계기를 마현해주었다. 가끔씩 혼자서 작업하는 예술가늬 삶이 부러울 때가 있다. 무용은 왜 그렇게 복잡한지.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가. 실제 작품을 안무하는 일이외에도 의상, 음악, 미술 등에 세심한 주의를 거쳐 공연당일에는 무대 장치, 조명리허설, 그리고 음향, 심지어는 무대 막을 여닫는 무대 관계자까지 이 모든 분야가 한 순간 한 마음이 움직일 때 비로소 한 작품은 탄생된다. 관객은 이러한 무대뒤에 감춰진 복잡성은 보이지 않은채 오로지 무대자체만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93년 9월 25일. 드디어 {그들은 꿈꾸고 있었다}는 대전 우송예술회관에서 막을 올리게 된다. 무대감독 강경렬씨와 조면에 정진덕씨. 최선을 다해 무대에 전념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현대무용단사포 단원들도 최선을 다했고, 모든 스텝은 공연결과에 대해 대체로 만족스러운 반응. 그러나 심사결과 -해당사항없음- 상이 열 몇 개나 되던데 정말 그 어떤 부분에도 해당 사항이 없었던 것일까? 그들이 꿈을 잘못 꾼것이지, 내가 꿈을 잘못 꾼것인지...... 작품에 대한 공정한 평가는 관객에게 맡기고 2년동안 애착을 가졌던 이 작품이 무대에 올려진 것에 감사하자. 작품은 관객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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