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3.12 | [문화시평]
회화성과 비판성 겨냥한 사회극 전주시립극단 정기공연「古木」
김길수/연극평론가, 국립순천대학교 교수 (2004-02-05 11:49:46)
예술은 삶의 유희이면서도 사회에 대한 비평 그자체이다. 문제는 유희와 비평이 딸로 놀고 있다는 점이다. 소모성 오락극을 보는 시간이 있고 문제의 식을 일깨워 주는 무거운 사회극 따로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 만큼 이중적이고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 역시 더욱 가속될 수 밖에 없다. 이점은 내명과 외면의 불일치를 의미하며 비판을 겨냥한 유희체계가 그나만큼 정착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연극이라는 예술 양식을 통해서도 말이다! 노자는 언어가 제힘을 발휘할 때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고 이야기한바 있다. 그렇다면 언어가 이제 현실에서 뿐만 아니라 연극속에서도 제 힘을 발휘할 수는 없을까? 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월북작가 함세덕의 작품들 중 기층민들의 처절한 현실을 밀도 있게 반영한 작품「고목」(정초왕 연츌)은 현실을 외면한 낭만주의자라는 작가 함세덕에 대한 일부 편견을 통렬하게 희석시켜 놓은 사회 비판극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희극 부재의 연극계에 탄탄한 희극성을 구축하여 놓았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에서 허우적거리는 일그러진 우리의 의식 세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성찰케해'T다느느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작품의 무대는 해방 이후 미군 군정 시기 다시 말해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기 위한 대통령선거 유세가 펼쳐지는 시기를 그 배경 삼아 박거복(이부열 분)이라는 봉건지주의 몰가치한 삶을 희화적으로 펼쳐보잉고 있다. 힘있는 자에게 아부 굴종하여 권력과 세도를 누리고자 하는 비정상적인 형태가 주인고 박거복에 머무르지 않고 그의 주변 인물인 친일파 곽교자, 친일어용군수로 전이되어 나타난다. 이들은 애국당이라는 어용조직을 만들어 어떻게 하면 과걱의 친일행각을 은폐시키고 새롭게 대두되는 권력층과 결탁할 것인가에 대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에 반대되는 세력으로 하동정이라는 젊은 청년이 주도하는 청년단을 들수 있는데 이들은 수해 피해로 고통을 겪느느 기층민들을 돕는 작업에 앞정선다. 이 두 세력은 무대에서 직접 부딪치지 않지만 학교를 다니는 거복의 딸 수국과 그의가족들의 내명에 상단히 갈등 요인으로 나타나 있다. 이 세력들과 주인공 거복이 만나는 유일한 매개물이란 다름아닌 마당뜰 오른편에 위치한 古木이다. 古木 다시 말해 선조 대대로 물려 내려온 노거수를 그는 일본인들에게 헌납하여 신분상승을 꾀하려 보았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그의 의도는 허사로 돌아가며 이제 이 고목을 대통령 유세차 들린 오각하에게 헌납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출세의 계기로 삼으려 했던 애국단 재정부장 자리를 갑자기 뺏기게 되자 자신의 소외에 대한 앙갑음을 작정하며 '고목을 청년단에 기부하겠다'는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곽교장 앞에서 해댄다 그러나 재물과 권력에 눈이 먼 그가 이를 순순히 이행할리 만무하다. 평소 그는 수재민을 돕기 위해기부를 해달라는 청년단 하동정의 부탁을 여지없이 묵살하여 왔던 터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여 하지만 온 가족의 반대와 만류로 인해, 그리고 고목을 사들여 연명하고자 하는 처남 영팔의 처절한 상황을 외명할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끙끙 마음 아파하면 이를 허락한다. 마침내 벌목인 초국이 고목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고 도끼 소리가 무대와 객석을 관통하며 건강하게 울려퍼질 때막이 내린다. 권력과 물질에 눈이 먼 문제 투성이의 상황이 '거복'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희화적으로 펼쳐지고 이 같은 희화성은 또 다른 상황 내지 도 다른 인물 군상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양하게 반복 변조된다. 다시 말해 풍자는 부조리성 만을 대상으로 하지 앟고 인간적 부족함까지 겨냥함으로써 관객은 비판적 인식의 상태에 머무르면서도 동시에 우월적 쾌감과 폭소의 유희를 체험하게 된다. 희극부제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 극은 탄탄한 리얼리즘 극작술을 견지하면서도 풍자 희극의 묘미를 유감없이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대단한 의미와 반향을 얻어내고 있다. 청년단과 애국단의 보이지 않느 대립과 갈등이 극의 배경에 자연습럽게 스며있기에 관객은 저절로 극의 흐름에 빨려들 수 밖에 없다. 이점이 극의 전면에 대두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보고 형식으로 대체됨으로써 관객은 무대공간의 재약을 뛰어넘어 상상의 지평을 무한대로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권력층이나 있는 자들에게 무참히도 묵살되고 소외당하는 기층민들의 참상과 고통을 고발할 ㅃ누만 아니라 평등과 분배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사회극의 새 범주를 개척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공연에는 어두운 사회 구석을 고발하려는 무거운 사회극의 분위기와 몰가치 투성이로 일관한 주인고의 모순적 형태를 부담없이 희화시켜 나가려는 분위기가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우스꽝스럼움에 대한 부담ㅇ벗는 웃음, 모순투성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 행위가 별다른 틈을 노출시키지 않음은 원작을 완전히 소화해낸 연출진의 덕목이라 볼 수 있다. 무대 전면의 사건과 보고를 토앻 전달되는 도 다른 사건들이 무리없이 연결될 수 있었음은 무대 전면의 대사와 무대 밖의 보조음향간의 앙상블 덕택이며 특히 '옥수수튀기는 사나이'나 '목수'의 설정의 어눌한 대사, 모질한듯한 음색과 육체 언어를 해당 배우들이 적절하게 소화해냄으로써 감상쯤 모두를 현안하게 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연극에서 주인고 '거복'의 목에 매달인 혹과 고목의형상은 허을어진 봉건 잔재 구조와 일그러진 의식 구조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 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두 요소가 배우들의 상징적 몸짓 언어와 화합하여 비유적 힘을 발휘하였는지에 대해선 긍정하기 힘들다. 텍스트의 기호 체계를 정직하게 소화하고 무대화하였음은 이론의여지가 없지만 기층민의 건강함이나 실소의미학을 되살려야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배우들의 동선이나 무대 구조물 간의 상호 관계 측며에서 입체성이나 비유의 힘이 확실치 못하다. 움직임의 선이 부분적이나마 단조롭고 병화가 약하다거나9예를 들어 반복되는 마루위의 대화 장면이나 단조로운 등퇴장선)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일깨우기 위한 음향과 조명 처방이 약화되어 있음은 이 연극이 막연한 희극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희비극 싹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다. 자신의 동질성을 끝끝내 회복하지 못하는 주인고 '거복'의 끙끙대는 모습. 이는 8.15라는 당대의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현실과우리 의식속에서도 계속 치유되지 못했던 희비극적 요인이라는 점에서 이 연극의 심미적 파장은 오랫도안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벌거벗은 사실주의 무대 방식이나 평면적인 몸짓 언어에 머무는 시대는 지났다. 제2의 창조에 가까운 새로운 무대 비유와 상징 체계의 개발,, 이점은 진지한 반성 작업과 동적 유희성, 그리고 이둘 사이의 섬세한 읫기의 흐름을 정밀하게 창출시켜야 한다는 어려운 난제 해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