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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2 | [서평]
포장만 있고 알맹이 없는 경제정책 『신경제정책과 한국경제의 미래』 (1993, 한국사회과학연구소, 도서출판 녹두)
지역사회연구모임 (2004-02-05 11:53:18)
소위 문민정부가 신한국건설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지 불과10개월여가 흘렀다. 이 짧은 기간동안 우리사회는 엄청나게 많은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변화들은 아직 일관된 방향을 지니고 진행되거나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끼게 된다. 이처럼 급변하는 현실에 비해 우리의 인식은 아직 훨씬 뒤처진 채 방황하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현정부의 성격을 둘러싼 제법 많은 진단과 처방들이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매우 단편적이거나 추상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대안의 제시도 아직 가설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올바른 실천적 대안의 마련은 정확한 현실인식으로부터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직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중운동의 부활은, 과연 개혁 또는 신한국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우리사회를 어디로 끌고가고 있는 것인지를 점검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구체적 실증성을 획득하는데 달려있다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사회연구소에서 편낸 『신경제정책과 한국경제의 미래』(한울, 1993)는 현실의 변화에 대한 구체적, 실증적 검토를 통하여 실천적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이론적 시도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정부의 개혁정책 중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경제정책을 각 부문별로 점검하면서 한국경제의 현실과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전체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총론에 해당하는 첫 번째 글을 제외ㅣ한 나머지 8편의 글에서 총 8개의 경제정책부문(대외, 국제, 산업발전, 금융, 재정, 세제, 토지, 주택, 농업, 노동, 사회복지정책)을 각각 독립적으로 살표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각 논문들은 일관된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경제정책'의 비개혁적 성격에 대한 비판이다. 책의 내용 전반은 1장 총론에서 종합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저자들은 현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신경제정책은 과거 60년대 이후 한국 경제정책의 기조였던 성장우선정책으로부터 한발자고 나아가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정책이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현실의 변화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8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는 이미 대량생산체제의 효율성을 확보했으며, 노동력 수급에 있어서도 농촌의 값싼 노동력 공급원이 소멸되고 노동수요가 노동공급을 초과함으로써 임금상승이 불가피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조건의 변화는 이전의 저임금에 기초한 성장정책이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현정부의 '신경제정책'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신경제정책이 지니는 이전의 성장정책과의차이점은 한국의측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1980년대를 풍미했던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있으며 그 귀결은 재벌지배의 강화이다.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 또는 그 이데올로기적 조건으로서의 신보수주의는 70년대 이후 서구에서 복지정책의 퇴조와 함께 등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에 장애가 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자유경쟁이 보장되는 시장에서 대기업의 능력이 마음껏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국가의 규제 완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논리는 한국경제의 현실변화에서 비록쇧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과거의 정치권력은 돈의 흐름을 독점적으로 틀어쥐고 그것을 특혜적으로 배분함으로써 대기업을 통제해 온데 비해 자본이 현저하게 성정한 현재의 상황에서 국가는 기업으로부터 규제완화를 요구받게 된 것이다. 현 정부가 제시하는 '신경제'란 권위주의 시대의 정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창의에 기초해야 제대로 경제가 운용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이처럼 올바른 원리에서 출발한느 '신경제정책'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고통분담으로만 해석하고 있으며 자유시장을 도입하기만 하면 창의와 참여는 동원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것은 '서구의 자유주의자들의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을, 복지라고는 하나도 없는 한국에 직수입하는 무지한 수입상들의발상인 것이다." 여전히 종속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과거 정구의 대외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대외, 국재정책(2장), 재벌규제 방안이 갈수록 완화되어 경쟁력 강화대책이 결국 재벌위주로 짜여지고 있는 산업발전정책(3장), 독점과 집중은 묵인하고 규제는 풀겠다는 금융정책(4장), "땅많이 가진 것이 고통이 되게"하겠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세제정책(5장), 토지투기를 재발시킬 수 밖에 없는 물량공세적 주택정책(6장), 한국농업과 농민의 파산위기를 정혀 고려하지 않고 개방과 국제화의 기조에서만 짜여지는 농업정책(7장), 과거 공권력에 의존하던 통제방식으로부터 개별자본 위주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노동정책(8장), 사회복지에서의 국가책임을 회피한 채 복지책임 주체의 다워화를 꾀하는, 그러나 복지재정이나 투자계획은 제시되지 않는 복지정책(9장) 등은 과거 권위주의정권 하에서 추진되던 성장청책의 기조에서 조금도 진전하지 못한 이름만 바뀐 성장정책의 재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처럼 포장만 바뀐 신경제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쉰 빵을 다시 찐다고 맛이 날리 없다... 더구나 이빵은 앙꼬마저 빠져 버렸다"고. 결국 신정부에 의해 추진되는 일련의 개혁 및 경제정책은 포장만 남고 알맹이는 없는 것이라는 점이 이 책의 저자들이 지닌 공통된 주장이다. 이 책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급박한 문제들 즉 개혁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사회를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 중, 적어도 전자에 관해서는 꼼꼼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할 수 있다. 형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현실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이라 할 때, 이책은 그 모범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이전에 출간되었고, 저자들은 금융실명제의 실시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사히고 있다. 그러나 이책의 출간 이후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가 기득권세력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보완조치라는 이름으로 점차 자체의 긍정적, 진보적 의미를 소멸시켜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저자들의 논지는 훼손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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