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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2 | [교사일기]
교단잔상 3제(校壇斷想 3題)
진병술/남원문덕국민학교 교사 (2004-02-05 11:58:06)
14명의 가족 20년만에 고향집을 찾아 온 기분으로 교문을 들어섰다. 텅빈 운동장 중위에 늘어서있는 운동기구들이 외로와 보였다. '학년은 5학년. 사무는 생활전반, 실외환경, 국화화분재배...' 내가 해야 할 일은 부임인사도 하기 전에 이미 짜여져 있었다. 출석부를 보니 우리반 학생은 모두 13명, 남학생 10명이고 여학생 3명이다. 20년전 그러니까 내가 햇병아리 교사로 첫걸음마를 한 곳이 이 학교인데 그때 내가 맡은 학급의 학생수가 67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 전교생이 70명이다. 그것도 3년전에 이웃 학교가 폐교되어 합쳐진 숫자이다. 학급당 학생 숫자로만 보면 선진국 수준이다. 그러나 농어촌 학급 및 학생수가 급속히 줄어들고 학교조차 없어져가는 이 현실이 그렇게 자랑스럽세 만 여겨지닌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6,7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공업위주의 정책으로 농촌은 상대적으로 거의 방기(放棄)되다 시피하여 많은 사람들이 황금알을 주으러 도시로 도시로 떠나고 떠날 힘조차 없는 사람들만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는 형편이다. 그 중에서도 자칭 교육에 좀 열의가 있다는 사람들은 주민등록만 옮겨놓은 위장전출로 아이들들을 도시로 빼돌리고 있다. 그래서 쓸만한(?) 애들은 다 빠져 나가보리고 뒤처진 애들만 남아 있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교사나 학부형들 입에서 나온곤 한다. 20평 교실이 유난히 넓게 느껴졌다. 하나하나 마주치는 눈동자가 지극히 맑고 깨끗하다. 모습이 조금ㅇ느 꾀죄죄하고 언행이 다소 유치하기도 해 도시 아이들처럼 똑똑해 보이지느느 않아도 그 애들과는 또다른 때 뭊디 앟고 순박한 모습들이다. 난 아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나서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우리 14명의 가족이 서로 아껴주고 보살펴주어 사랑의 학급을 만들어 봅시다" 부모가 몰라서 가르치지 못라고 도시애들이 기본으로 2-3곳은 다닌다는 학권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참고서는커녕 기본 학습용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s아이들, 이 애들이야말로 교사가 절대 필요한 아이들이아니겠는가? 그런데 나는 과연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교사가 괼 수 있을까? 고아 아닌 고아 "선생님 ㅈ네 할머니 오셨어요." 한창수업을 하고 있는 데 한아이의 느닷없는 외침에 깝짝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할머니 한 분이 교실을 기웃거리고 계셨다. "아이고 우리 손지 교실이 여기 그마이" 아이를 발견하자 할머니는 곧장 교실로 들어오셨다. 수업이 끝나고 자리를 마주했다. "이놈이 참말로 불쌍한 놈이라우..."로 시작된 할머니의말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ㅈ 어머니는 자를 낳아놓고 반년도 채 못되어 가출해 버리고 뒤이어 아버지도 집을 나가 인천에서 노동일을 한다는데 홀아비로 혼자 살고 있다. 작년 겨울 10여년만에 어머니가 나타났으나 아이는 거들꺼 보지도 않고 이혼만을 요구해 수속을 밟아주어 이제는 완전한 남이 되어버렸다. ㅈ은 어릴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못하고 자라서인지 언어와 지능이 지체[된 상태에 있다. 제 이름은 물론 숫자 글자 한자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걸핏하면 어린아이 마냥 엉엉 울기도 하고 공부시간엔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등 기호같은 글자만 쓰고 있다. 유아용이나 정박아용 교재를 구해다가 지도도 해보고 연필을 바로잡기를 가르펴주어도 돌아서면 그만이다. 내 자신이 한계르르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지발 핵교나 안빠지고 댕가게 맨들어 주시면..."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일어서시면서 할머니는 안주머니에서 한라산 한갑을 꺼내 주셨다. 순간 나는 멈칫했으나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정성도 정성이려니와 할머니께 어떤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우리 반에는 13명의 학생 중 부모의 정상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가 ㅈ 말고도 3명이나 더 있다. 부모와 사별하여 어쩔 수 없이 고아가 된 경우는 1명도 없고 모두 부모의 비정상적인 결혼생활로 인해 억지로 만들어진 고아 아닌 고아들이다. 왜 우리사회가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왜 부모 잘못대문에 아이들이 이런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가 이 애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이들은 나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만을 요구 하지 않는다. 때론 부모가 되어야 하고 때론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참 사랑일테니까. 절름발이 국악교욱 요즈음 우리 직원들 사이에 국악바람이 불고 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수업이 끝난 후면 플라타너스 나무 주위에서 구성진 사철가가 흘러나오곤 한다. 아직은 초심자들의 다듬어지지 않는 소리라 다소는 어눌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나른한 오후 교정에서 단가 한 가락을 듣는 맛은 여간 기쁜 맛이 아니다. 한사람은 북으로, 어떤 이는 장구로 또는 무릎으로 서툰 중모리 장단을 치며 반주를 맞추다보면 저절로 흥이 나서 어깨가 들썩들썩 해진다. 바람을 일으킨 사람은 ㅊ선생과 학교버스 기사인 ㄱ씨이다. 이들이 얼마전부터 남원 국악원의 가을 학교에 나가 강습을 받고 있는 중이다. 5학년 1학기 음악에 단소 연주가 나온다. 그런데 난 단소를 한번도 불어본 적이 없다. 배운 적도 없다. 2년간의 대학시절에도, 240시간의 1정 강습때에도, 60시간의 예능(음악)연수떼에도. 단소뿐만아니라 국악의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국악 단원을 가르칠때마다 느끼는 난감함이란! 아이들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나 자신과 또 누구에겐가는 몰라도 화가 났다. 새로 개정될 6차 교육과정에서는 국악이 더욱 l강조된다고 한다. 너무 당연하고 반가운 일이지만 그에 비례하여 걱정도 많아진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절름발이 국악교육을 계속할 수 만은 없지 않은가? 교육과정만 편성해 놓는다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교사 자신의 노력이 중요하겠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굥ㄱ정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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