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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5 | [문화저널]
<제25회 백제기행>가슴에 묻어보는 화두 하나 _ ‘백제의 미소’-마애불로 가는 길
권오표/전주완산고 교사 (2005-01-25 14:57:14)
떠남은 언제나 풋풋한 설레임으로 내게 다가온다. 척박한 일상속에서 이 사흘 내내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는 교정의 태산목 뿌리를 적시고 중앙성당 어귀에 나앉아 있는 아낙의 햇참외 광주리를 적셨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비는 개었다. 그 비 갠 오월, 토요일 오후의 눈부신 푸르름 속에 제25회 백제기행 『백제의 미소-마애불로 가는 길』이 있었다. 익명의 땅에서 하룻밤 공인(?)된 외박이 갖는 야릇한 흥분이 나를 들쑤셨다. (용서하라 아내여) 늦으면 자리가 없어 자칫 참여하지 못하게 될 지라도 모른다는 문화저널 윤기자의 엄포(?)에 서둘러 기린로에 당도하니 벌써 몇몇 낯익은 분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예가이신 이용엽님이 반가이 맞아 주신다. 지난 여름 정다산의 다산초당 기행때 동행한 추억 이후로는 처음 만남인데도 알아보시곤 옆자리를 권하신다. 예전처럼 느긋하게 30분쯤 늦게 나왔다가 미아가 된 분들에 대한 미안함을 뒤로하고 서둘러 출발한다. 문화저널에서 꼼꼼히 챙겨 주는 기행자료를 읽어 보는데 버스는 금강하구둑을 넘고 있다. 손바닥만한 반도의 내 조국인데도 전라도땅이 왜곡된 역사의 상채기 속에서 곳곳에 한이 스민 땅이라면, 이제 막 기행을 첫발을 딛는 이곳 충청도는 현대화의 한켠에 비켜서서 아직도 순수서정을 간직한 채 차령의 줄기를 따라 여기저기 명산들을 품에 안고 고즈너기 둘러 앉아 있다. 우리 일행은 대천을 지나 한적한 산길을 달려 첫 기행지인 장곡사에 당도했다. 늦깎이 주부 가수들의 열창곡으로 더욱 유명한 칠갑산 자락에 위치한 장곡사는 곡(谷)자가 들어가는 절 넷-마곡사(공주)&#8228;안곡사(예산)&#8228;운곡사(청양)중 하나로, 여늬 절과는 달리 한 절에 대웅전이 두 개(상대웅전&#8228;하대웅전)가 있다. 보물로 지정된 상대웅전은 맞배집 양식으로 쇠붙이 하나 쓰지 않은, 우리 고유의 건축기법인 연귀짜임과 사개물림등을 이용해 지어진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있는데, 얼마 전 상대웅전 여래좌상 밑바닥에서 불경 여러 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씌여진 이 불경에는, 불경을 통해 양민을 모으고 나라의 힘을 길러 원나라의 잔인한 침략을 물리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한다. 상대웅전 앞에 모인 나이 많은 학동들에게 늘 수줍은 몸짓으로 조심스럽게 풀어나가는 문화저널 발행인 윤덕향님의 자상한 설명은, 불당에만 앉아 있으면 모다 부처님이 아니고 무어겠느냐는 내 소박한 식견을 자꾸 무색하게 한다. 하대웅전 아래 법당에 먼지를 쓴 채 보관된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찢어진 법고와, 산문 앞에 유난히 볼썽사납게 서 있는 이 절의 화려한 개발조감도는, 천년전 외세에 대항하여 가열찬 투쟁으로 맞섰던 호국불교와 얼룩진 현대사에 비켜서서 쇠락해 가는 오늘의 민중불교(?)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저물 무렵에 수덕사 어귀에 도착해서 산채나물 백반에 시장기를 때우고 숙소에 여장을 풀자, 이용엽님이 바람이나 쏘일겸 수덕사를 둘러보자고 칭하신다. 공교롭게도 초파일 전날 밤을 산사에서 보내게되는 인연설 또한 이 기행의 구미를 돋우는 일이었던지라 기꺼이 뒤를 따랐다. 세속적 의식으로 치자면 오늘밤이 전야제이니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연등을 보겠거니 생각하며 잔뜩 부풀어 경내에 들어섰으나 웬걸, 연등을 달아맬 줄만이 사방으로 둘러쳐진 채 산책객들만 여기저기서 한가롭다. 덕숭산을 뒤로 거대한 성처럼 버티고 서있는 대웅전의 위용에 친밀감은커녕 이역의 황궁을 찾아든 나그네의 왜소함과 이질감만을 곱씹을 수 밖에 없었다. 바구니의 도량으로 더욱 알려진 이곳은 전국에서 뽑혀온 오백여 여승들이 엄격한 계율아래 초심, 발심, 자경의 세 단계를 거치며 ‘목마름은 흐르는 물로 적셔 목마름을 달래는’ 십년 고행의 수도생활을 견뎌내어야 비로소 비구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숙소에 돌아와 예정대로 큰방에 모여 문화저널에서 준비한 슬라이드를 감상하면서 윤덕향님의 불상에 대한 강의시간을 가졌다. ‘이 지역의 찬란한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우리의 구체적 삶에 근거한 건강한 문화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건전한 문화풍토 조성에 이바지한다’는 문화저널의 당찬 창립목적이 한결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삼국시대 불상들의 특징과 고려시대 불상과의 차이, 이를 통한 불교문화의 변모와 정에 대한 한시간이 넘는 윤덕향님의 조목조목 챙겨주는 치밀한 강의와, 우리 일행 중 불교대학을 개설하고 있다는 이택회선생님의 보충설명을 듣는 동안 학동들의 자세는 초롱초롱한 진지하기만 하다. 이미 기행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분위기 때문일까. 대부분 첫 만남인데도 낯설지 않은 동질성을 발견하는 따뜻함이 스며 퍽이나 흐뭇한 정경이었다. 이어 주최측에서 마련한 뒷풀이가 있었다. 간단한 마른안주에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 맛이란 평소 술과 정분이 깊지 않은 내게도 객고를 달래는 좋은 위안이었다. 조금전의 다소 무거웠던 분위기를 기필코 누그려 뜨려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휘저어가는 진호님의 ‘끼’ 섞인 ‘칠갑산’ 연출솜씨도 솜씨려니와 (그는 방송국 프로듀서다) 덕숭산 골짜기의 송뢰를 배경음악으로 어느새 너나 없이 두손 모아 부르는 ‘사랑으로’ ‘솔아 푸르는 솔아’는 두고두고 기억해도 좋은 추억이리라. 뻑적지근한 방광을 달래기 위해 가까스로 눈을 뜨는데 창밖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몇몇이서 이른 새벽에 예불에 다녀온 모양인지 나직한 웃음들이 말갛게 부서져 흩어진다. 밖에 나오니 일행 가운데 여선생님 몇 분 이서 수덕사 설거지 공양을 해 온 거라며 초파일 떡을 권한다. 약수는 이른 새벽 공복에 마셔야 제 맛을 알 수 있다는 말에 새벽 안개를 헤치고 약수터로 향했다. 속세를 등진 비구니의 도량인 수덕사는 숭엄한 종교적 접근보다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문학적 상상력이 앞서게 되는 나의 편협함을 어떻게 탓해야 할지. 문득 신석초의 <바라춤> 한 구절이 떠오른다. /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 티 없는 꽃잎으로 살어여러 했건만 /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 도중에 황여사님과 동행했다. 출판업에 헌신하시는 오십이 넘으신 수더분하기 그지없는 분이신데, 백제기행 스물 다섯번 가운데 스물 세 번째 참가하신 터주마님이시라는 주최측의 자랑스런 얘기였다. 문화저널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가 아닌데도 거의 모든 일정을 백제기행 다음 순위에 두고 계신다며, 왜 이런 진지하고 창의적인 기행에 무관심한 채 찰나적인 향락에만 들떠 지내는지 안타깝다는 말씀이시다. 새벽 안개의 정적 속에서 초파일 아침의 경내는 청소하랴, 연등 달랴, 부산하기만 하다. 그런데 지나친 인위적 조경과 웅장함 때문인지 산사가 갖음직한 조금은 고즈넉하며 적막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쉬이 찾을 수 없었다. 약수에 목을 축이고 내려오는 길에 얼마 전부터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친견할 수 있었다. 안내하는 여승이 자상한 내력을 들으면서도, 육성이 아닌 테이프를 통해 경내를 울리는 찬불가와 더불어 부처님을 대하는 신비감이랄지 경외감은 우러나오지 않았다. 아아, 이 불경스런 사바의 속물이여. 당초 이번 기행일정에 포함된 천리포 식물원은 얼마 전부터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주간 이종민님의 죄스런(?) 해명을 들으면서 서산에 있는 마애불로 향했다. 녹음이 우거진 산길을 달려 닿은 곳.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 백화산 인바위에 새겨진 서산마애불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은 그간 여러 문헌속에 관념적으로 기록된 ‘백제의 미소’의 실체를 접하는 남다른 감동을 자아냈다. 자애로운 눈웃음을 타고 입가에 어리는 여래상의 상큼한 미소는 가난하고 무지한 중생들에게 금새라도 앞가슴 열어 따뜻이 싸안아 줄 우리의 이웃,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백제여인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양옆의 반가상 협시보살이나 반가사유상 또한 당시의 사찰중심의 귀족불교에서 벗어나, 중생과 더불어 우리의 가까이에 살아 숨쉬는 진정한 민중불교의 한 전형을 보는 기쁨을 제공해 주었다. 법을 지키지 않아 국민들에게 미안한데 그러나 나는 결코 법을 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저리도 지엄하신 괴변과, ‘구국의 영단’이라는 현란한 수식어 아래 민초들의 바램이 한낱 대권창출 논리의 소모품쯤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오늘의 현주소를 이 마애불 앞에서 무어라 고개 들어 설명해야 할지. 서산마애불과 멀지 않은, 서해가 내려다 보이는 태안읍 백화산의 돌출한 바위에 새겨진 태안마애불. 중앙에 보살입상이 있고 좌우로 장대한 불상이 옹립해 있는 세계 유일한 독특한 백제불 양식을 보면서 가슴에 담아 보는 화두(話頭) 하나 - 나는 정녕 이곳에 왜 서 있는가. 부처가 될 수 있는 데로 스스로 이를 포기하고 중생을 위해 화신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의 내력을 윤덕향님께 들으며 우리들의 발걸음은 왠지 무겁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에 해미읍성을 찾았다. 서해물결이 눈앞에 일렁이는 곳. 옛 원형을 여태도 간직한 성벽엔 담쟁이 넝쿨이 환장하게 푸르른 오월의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려 기어오르는데, 겉에서 본 성곽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성안에는 어느 곳에도 지난날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서해안 방위요새로 성안에 관아를 두어 행정기능도 겸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고, 소풍 나온 교회유치원 아이들이 무심히 뛰놀고 있다. 왜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성안엔 그러나 천주교 수난의 현장만이 그 때를 전한다. 천주교 박해가 심하던 1886년에 천여 명의 교도들이 웅덩이에 생매장 당한 곳. 그 옆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고문한 철사줄이 고목이 된 호야나무에 여태도 아픔의 생채기로 남아 있다. 나라를 지키고자 수 많은 백성들이 바쁜 일손을 틈내 힘모아 쌓은 성터에서, 내나라 어질고 고운 그들을 산채로 생매장한 역사의 아이러니는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오욕의 눈물로 남아 흐르고 있는 것인가. ‘……능청능청 저 비 끝에 시누올케 마주 앉아 나두야 커서 시집가면 우리 낭군 섬길란다’ 작아서 매운 이종민님의 구성진 ‘상주모심기’를 따라 부르며 다시 가슴에 안기는 우리의 젖줄 만경강. 갑오년 억새들은 오늘도 그날의 함성처럼 수런대는데, 저무는 노을 속에 강은 그냥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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