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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0 | [문화저널]
<제34회 백제기행>남도의 전통문화를 찾아서 _ 옛사람들이 살아온 자취-
김두경/서예가/편집위원 (2005-01-25 15:05:37)
사람이 못나다보니 “못났다”농이라도 하면 서러워하기라도 할까봐 슬그머니 수습딱지를 면제해 주며 편집위원 감투를 씌워 주었는데 백제기행과의 인연은 내 게으름 만큼이나 멀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백제기행은 내 삶의 한 구석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어떤 의문 하나를 풀어 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여러 인연을 물리치며 여행길에 올랐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키크고 잘 생기고 공부까지 잘한 우리의 수습 김정수씨는 마이크를 애무하듯 어루만지며 여행일정도 설명하고 자기소개 시간을 마련하며 그 매력적인 덧니까지 자랑했고 우리는 자기소개를 하며 한 식구가 되어 첫 번째 기행 목적지인 운주사에 다다랐다. 제23회 백제기행때 운주사 기행을 했는데 그때 가슴속에 맺힌 어떤 것이 오늘, 잠깐 들른 운주사에서 윤덕향 선생님의 열강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더 큰 화두가 되어 마음 깊이 자리 했다. 운주사에 대한 나의 미련을 아랑곳 하지 않고 해는 저물어 어둠이 깔렸고 우리는 약간의 허기를 누군가 가져온 사탕하나로 달래며, 추억의 밤도 기대하며 율포항으로 떠났다. 마치 중고등학교 학생이 되어 수학여행 온 기분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는 전북대학교 음악대학 최상화 선생님의 대금과 피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아울러 연주와 감삼에 넋을 잃었다. 문화적 허영에 빠진 사람들의 여행이라는 비난의 말씀도 계시다는 것 들어 알고 있지만 숨죽이며 듣는 무대가 아니고 우리 선조들이 그랬듯이 자리깔고 앉아 막걸리도 돌려가며 추임새도 해가며 듣는 이 맛, 문화의 허영이라도 빠졌기에 맛보는 것이지 언제 맛볼 수 있을 것인가.! 대학시절이던가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던 시절 단소와 대금을 만들어 보겠다고 대밭만 보면 쌍골대를 찾아 헤맸지만 쌍골대는 찾을수 없었고 살이 유난히 두터운 황죽이 있어 어렵게 어렵게 모양새를 갖추어 불어보던 한소절의 삶이 지나간다. 진양의 상념과 애띤 가락으로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 할 수 있다. 약간 쓸쓸하지만 담담한 어조의 중몰이로, 자지러지다 자지러지다 신명에 들떠 덩더쿵 덩더쿵 덩더쿵 덩더쿵 딱... 땀으로 흠뻑 젖은 몸과 마음이 대숲에ㅓ 불어오느 한 줄기 청량한 바람에 눈을 떠 하늘을 보고 고추장같은 잠자리 되어 메밀밭을 나른다. 박수 박수... “거 있잖여! 왜 전설의 고향, 우리같이 무식한 놈도 알 수 있는 거?”(웃음) 이종임 선생님의 장난어린 말씀에 부처님같은 최선생님 빙그레 웃으시며 “필리리...요거?” “네”(일제히 웃음과 함께) 선생님의 연주가 끝나고 선생님을 찾아 서울에서 전주까지 유학온 그 선생님의 그 제자 이아무개군의 피리산조를 듣고 막걸리, 막걸리도 마시고... 잠이 오지 않았다. 율포 해수욕장 모래밭에 2차를 마련해 못다 풀은 신명도 풀고 모나리자 12년만의 외출, 배꼽잡는 사연도 아는분은 알리라. 잠잔 사람이나 백제기행에 동참치 않은 분은 알 자격 없음. 우리의 수습 김정수씨는 최후까지 막걸리를 바닥내고 새벽 3시 30분까지 맥주병을 끌어 안았지만 수습딱지를 떼려고 피나는 정신력으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예정시간에 우리의 본 기행인 전통옹기의 맥을 잇는, 전남 보성군 미력면 미력옹기 이옥동, 이학수씨 부자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어젯밤 대금 소리를 듣던 대나무 사운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듯한 대밭 사이사이에 앉아 때를 기다리는 옹기와 질그릇들의 넉넉한 마음을 대하고 보니 우리는 무엇으로 후손들에게 남을 것인가? 정말이지 정신이 아찔하였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데도 진리는 있다지만 물질문명의 허상에 최면을 당한 우리는 전정 알아야 할 그리고 가꾸어 나가야 할 그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지나 않은지? 광명단을 발라서 피부가 번들번들 개기름이 흐르듯 윤이 나는 요즈음 옹기와 전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품위가 있고 적당한 무게를 느끼게 하면서도 권워를 내세우지 않으며 소박하지만 당당한 우리전래 옹기와 차이로부처 가마와 유약의 특성을 비롯 태림작업에 의한 그릇 제작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작업이라는 말씀을 들을때는 우리들의 어깨에 내리는 햇살이 왜그리도 싱싱하던지! 하지만 편리하고 깨지지도 않으며 값싼 플라스틱 제품에 밀려 이제는 도저히 생활보장이 안된다는 현실과 이옥동씨의 늙어버린 모습에는 그렇게도 싱싱하던 햇살이 부끄러웠다. 그간 무책임하게 외면해 온 우리자신의 삶, 즉 우리문화의 단절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깊이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떤분의 말씀에 문화는 발전도 아니고 퇴보도 아닌 변화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 변화의 의미에는 분명 변화의 주체와 객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주체가 무엇으로 되어있는가! 안타깝다고 말하지 말자. 우리의 옹기 단지에 덕지덕지 지점토 발라 울긋불긋 색칠해 놓고 자랑하지 말고 지금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애정을 갖자. 문화는 우리의 부모요 또한 자식이니 맹목적 애정이라도 갖자. 옛 말씀에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느니라”했거니 그 밖에도 옹기와 질그릇의 차이점과 쓰임새들에 대한 이야기, 서양 도자기문화와 우리 것의 차이점을 이야기 나누었고 우리가 좁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이 강산이지만 옹기는 그 지역별로 다양한 특성을 갖는다는 말씀과 아울러 그 모든 다양함이 그 지역 자연환경과 가장 적절히 맞아 떨어진다는 설명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인간은 분명 자연의 일부일 뿐 자연을 정복하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인간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짧지만 적절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투박하고 앙징맞은 옹기에게도 자꾸 눈길을 주던 우리는 그 분의 안내로 완성된 작품들을 넣어둔 창고에 들어갔다. 친절한 설명 때문이었을까 모두들 감탄사를 흘리며 강한 소유욕의 본질을 드러냈다. 전시회 준비관계로 팔 수 있는 물건이 없다는 그 분의 말씀은 아랑곳 없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집어 들고 생떼를 써 많은 분들이 소유의 만족을 누렸고 음료수 값이라도 하라며 돈을 쥐어주시려는 그 분들과 정별을 나누며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벌교로 향했다. 벌교역 앞에 차를 맘춘 우리는 곧바로 식당에 들려 짱뚱어탕으로 점심을 먹으며 한광석씨의 재기가 넘치는 육담도 들으며 전통염색을 찾아온 젊은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다. 조선대학교 염색공예과 학생들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짱뚱어탕에 입맛도 서먹했지만 위도연안 여객선 침몰소식에 모두들 입맛을 잃어버렸고, 처음 만난 학생들도 방이 비좁아 북적한 탓인지 서먹했지만 한광석씨의 작업과 정이 담긴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테두리를 넓혀갔다. 비록 비디오를 통하야 작업과정을 지켜 보았지만 대략적인 쪽물들이는 법과 특성 그리고 선연히 돌아오는 쪽빛의 감흥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한 시간도 못되는 비디오를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은 한정된 것일 수 밖에 없지만 오히려 사계절의 모든 작업을 볼수 있었기에 모두들 알았다는 듯 느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쪽물의 산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집으로 향했다. 이 땅의 어느 마을에 찾아가도 소박한 정감 느끼지 못하리요만은 오랜 도시생활 탓인지 마삭줄이 온통 뒤덮인 돌담벽이 있는 마을 안길이 너무나 정겨웠다. 한광석씨를 따라 대문을 들어서며 우리는 두리번 거렸다. 마당가에 놓인 커다란 항아리 3개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마당에 붉은 고추가 널려있고 닭들이 마당을 돌며 건강한 모습으로 모이를 쪼이는 평범한 농촌마당에서 무엇인가 흔적을 찾으려는 듯, 언젠가 보았던 중국영화 국두를 연상하는 것일까? 주단집의 화려함이라도 연상하는 것일까? 이러한 우리들의 마음을 꼬집기라도 하듯 젊은 그이는 “놀랫지라우? 암껏도 없능것 봉께로.” 그리고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이 나를 찾아온 것은 잘못이라고, 그렇다. 그것은 분명 잘못이다. 서편제 100만 관중 돌파, 200일 장기상영 기록등 서편제 증후군이 주는 안타까움을 아는이라면 가슴이 철렁 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몰랐다.(철렁 소리 못들었을)젊은 그이가 뿌리는 비웃음 진하게 담은 걸죽한 육담에 마음이 상해 그의의 말대로 “나 쪽봤다이”수준으로 끝나버릴 우리의 문화적 허영도 잘못이고, 우리 생활 속에 있어야 할 우리 문화의 씨앗이 멸종 위기에 처함도 잘못이다. 또 마치 자기만 우리 문화의 진실한 의미라든지 생활속의 문화를 체험하고 있는양하고 삶이 곧 문화이어야 된다고 맛봄의 문화가 아니라 피로써 순환하는 문화라야 된다고, 그리고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라야 진정한 문화가 되는 것이라고 침과 육담을 튀긴것도 잘못이었다. 욕지기나 육담이 구수한 숭늉맛이 아닌 치기처럼 느껴져서 일까? 그래도 이땅에도 묵묵히 피나는 노력으로 할 일을 해가는 사람이 많아 희망적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 일까.-다만 분야가 다른 뿐-.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인연이 되어 온몸으로 알고 온몸으로 젖어 사는 것이 진정한 문화라는 것을. 뭔가 머릿 속에 알고자 하는 지적 허영에 만족감을 채워주기 위해서, 아니면 식탁에서 칼질하다가 토장국 그리워 한번 맛보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된다. 때문에 젊은 그이가 뿌리는 육담도, 젊은 그이의 손톱에 물든 쪽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옷감이 마를 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리도 뭔가 보여주고 싶어 무명 발필을 꺼내다 쪽물에 담그는 그이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간단한 쪽물들이는 시범에 이어 그이가 내보이는 은은하면서도 화사한 여러 가지 전통염로로 물들인 옷감을 보며 어떤 학생이 물었다. “핑크빛은 무엇으로 물들여요?” “예” “핑크빛으로 물들이지요.” 그렇다 분홍은 분홍으로 물들이고 핑크빛은 핑크빛으로 물들인다. 우리는 이미 서양의 인공적 색의 기준에 물들어 있어 우리의 색을 거기에 대비해 색의 정의를 내리려하고 이름을 붙이려 한다. 또 우리색의 아름다움이 옳으냐 그르냐를 재려한다. 아니 우리의 아름다운 마음과 몸까지도 서양의 어떤 기준으로 재려한다. 선문답같지만 지초가 내주는 빨강은 빨강이 아니라 지초색이고 홍화나 소목이 내주는 빨강은 홍화색이고 소목색일 뿐이다. 김치나 된장국 먹으며 자란 우리가 부르는 싼타루치아는 피자먹으며 그네들이 부르는 그것과 결코 같을 수 없듯이 그네들이 부르는 정선아리랑은 그냥 노래 일뿐 정선아리랑은 아닌 것이다. 젊은 그이의 질타와 비웃음에도 아름다움에 취한 여인들은 옷감을 몸에 걸처보며 환상에 빠졌고 쪽물에 오장 육부까지 물들어버린 어떤분은 손톱 끝에 라도 쪽물을 간직하고 싶어 새끼손가락에 쪽물을 들여 한바탕 웃음을 웃기도 하고, 신발을 신은채 툇마루에 올라앉은 철없는 여학생을 호되게 질타하는 그이의 핏발서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자꾸 흘러 우리는 여행을 마무리 해야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더러는 상념을 젖은 듯하고 더러는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담소를 나누기도 했으며 더러는 코를 골기도 했지만 우리의 영혼한 수습 김정수씨는 언제 그렇게 아부를 했는지 이번 기행에 대한 소감들은 모두가 희망적이었고 다음기회에 또 만날 것을 거듭거듭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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