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0.3 | 칼럼·시평 [서평]
「80년대 사회운동 논쟁」
지역연구모임(2003-09-08 11:43:49)

1.
80년대는 사회운동 및 사회인식에 있어서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즉 70년대의 소시민적 민주화운동이 계급적 인식을 명확히 함으로써 번혁운동으로서의 자기위상을 정립하재 되었으며,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도(체제유지적 인식틀로부터 체제변혁적 인식틀로의)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60-70년대의 종속적 자본주의화 과정 속에서 심화되어온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80년대에 들어 전면적으로 노정된 상황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온 산업화정책의결과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일반적사회관계로 정착한 한국사회는 70년대 말 다양한 내 ·외적 계기에 의해 구조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유신체제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붕괴한 뒤 일시적인 정치적 공백상태 속에서 각계급세력 간에 정치권력의 획득을 위한 투쟁이 전개되었지만, 결국 파시즘체제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80년 5월 광주항쟁의 실패로 민중의정치적 진출이 좌절된 이후, 이를 계기로 해서 사회운동의 장·단기적 목표, 주체 및 대상, 그리고 변혁의 단계 및 과정 동 사회변혁의 내용에 관한전반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80 84)에는 주로 학생운동권에서의 문제제기를 통해 학생운동의 위상 및 임무를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다가, 85년 이후 사회운동 전반에서 운동의 과학화, 계급적 전망의 수립을 위한 시도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사회운동의 질적 비약이 이루어진 80년대 10년간의 시기는 흔히 논쟁의 시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다양한 쟁점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 간의 논쟁이 진행된 시기였다. 이러한 논쟁들이 때로는 대중의 인식에 혼란을 주기도 하고 운동대오의 분열로 비추어지기도 하였으며 혹자는 운동발전에 부정적인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하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사회변혁의 민중적 길을 확인하고 그 가능성을 필연성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보여진다.89년 하반기에 한길사에서 펴낸 『80년대 사회운동논쟁」은 지난 10년간 행행된 다양한 논쟁들을 정리하고 있다. 사회발전의 전망을 둘러싸고 진보적인 진영에서 전개된 논쟁들을 일정하게 정리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박현채 ·조회연 편,「한국사회구성체논쟁 I, II」가 있다) 또 한권의 책으로 모두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80년대 사회운동논쟁』은 각 사회운동부문과 학계에서의 논쟁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으며, 문화·문학에서의 논쟁까지도 포함시키고 있어 일단 관심을 끈다.

2.
이 책의 1부에서는 학생, 노동, 농민운동에서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글(「학생운동의 변혁운동으로의 정립」)에서는 80년 말 학생운동의 임무를 둘러싸고 학생운동의 선도적인투쟁을 통해 민중운동을 활성화해야한다고 주장하는 학림계열과 민중역량의 조직화·세력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립계열간의 소위 무·학논쟁에서부터 사회성격과 모순구조, 변혁대상, 주체설정의 문제를 중심으로 본격적 논쟁에 돌입하는 CNP(시민민주 : 민족민주 : 민중민주혁명)논쟁까지를 정리하고 있다. 두 번째 글(「민족해방론: 제헌의회론 논쟁에서 민족해방론 : 민중민주주의론 논쟁으로」)에서는 86년 이후 현재까지의 학생운동논쟁의 흐름을 시기별로 정리하고 있다.1부의 세 번째, 네 번째 글은 각각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에서의 논쟁을 정리하고 있다.2부에서는 사회운동 전반에서 수행되었던 중요한 쟁점들을 각각 민주변혁론, 선거전술론, 통일전선론, 정세분석론, 사상문제 등으로 나누어 검토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중복되기도 하지만, 최근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사상의 문제 등 다양한 쟁점 속에서 나타난 논쟁들을 정식화시키고 있어 그 내용과 추세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3부에서는 학계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사회구성체논쟁을 다루고 있다. 3부 앞의 네 개의 글은 80년대 초반하나의 이론적 대안으로 흡수되어 세계 체제적 인식틀을 제공하면서 본격적인 사회구성체 논쟁을 촉발시킨 종속이론(제3세계론, 주변부자본주의론)에서부터 식민지반봉건사회(구성체)론,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에 이르기까지의 논쟁의 전개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85년의 주변부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간의 논쟁에서 제기된 과제, 즉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통일적 인식의 문제가 최근까지의 사회구성체논의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처음두개의 글은 논쟁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조회연씨의 두 편의 글은 1,2부의 글들과 상당부분 중복되면서도, 사회운동권과 학계에서의 논의를 포괄적으로 정리하고 있어서 논의전개의 시기별 특성과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뒤의 두 개의 글은 사회구성체논쟁에서의 두 가지주요 쟁점(계급론과 국가론)을 정리하고 있다. 그간 이 분야에서의 논쟁이사회구성체론과의 관련 속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고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이 부문에 관한 정리는 의미 있다고 여겨지지만, 문외한인 우리로서는 4부에 실린 네 편의 글을 평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3.
이 책은 80년대의 논쟁을 (1차 자료의 모음이 아닌 일정한 해설을 통해)종합 ·정리하고자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그 의의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편집자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이 논쟁의 쟁점들이 그 중요성의 차이가 고려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편집되어 있으며, 논의가 지나치게 압축적이어서 비전문적인 독자들은 이해가 다소 어려우리라는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아쉬움들은 10년간의 치열한 논쟁을 한 권의 책에서 모두 정리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논쟁의 전개과정을 압축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중요한 문제는 각 부분의 정리를 맡은 필자들 간에 일관된 입장이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혼란이다. 실제로 편집인의 서문에서부터 이러한 혼란의 여지는 발견되기 시작한다. 첨예한 논쟁을 정리할 때, 엄밀한 객관성을 견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 책은 애초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본문의 내용에 대해서 뿐 아니라, 각 글마다 충실하게 제공되고 있는 참고문헌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흔히 작품보다 평론을 먼저 읽음으로써 지니게 되는 선입견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