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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4 | 연재 [문화기고]
전북의 민속놀이1
김익두 전북대 국문학 강사(2003-09-08 12:13:06)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솔직히 놀이에 관해서 깊이 있게 오랜 시간 동안을 숙고해 보지는 않았다. 나는 그동안 연극을 중심으로 여러 관련분야들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게으르고도 힘겨운 일종의 연구 작업을 계속해 왔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러할 즈음에 나는 <문화저널>의 새로운 편집자의 한 사람이자 나의 문학적 '악동시절'의 선배인 이병천 형으로부터 전북의 민속분야에 관련된 기행물을 연재해 보자는 연락이 왔으며, 이에 대한 나의 학구적 반응이 결국 여러 차례의 생각 끝에 이 글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결정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상과 그 실체들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민족연극학의 문제와 그리 멀지 않으며, 또한 지금가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아직 이렇다할 학문적 관심과 연구 작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이 아주 오래 전부터 나의 창조적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해 왔다는 점에서 이루어졌다.
또 한편 생각해보면 이 작업이 나의 일상적인 삶에 실제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지만, 생존 여부가 궁극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우주의 아주 작은 한 별의 가장 어려운 한 지역 한반도, 그중에서도 가장 '처참한'역사와 현실 속에서 삶의 가꾸어온 남서부 지역의 한 이름 없는 민족연극학도의 학구적인 희망과 한계, 그리고 그로부터 드러나게 될 메꾸기 어려운 딜레마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곧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 미리 내 지식의 미흡한 점을 보충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므로, 나는 지금 쓰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쓰지를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쓰기로 결정하였다."

1. 머릿말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한다. 이러한 속성은 모든 생명의 궁극적인 특징인지도 모르며, 이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롭지 못함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도 같다. 이러한 딜래마 속에서 우리는 그 부자유로부터 자유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지향성'을 어쩔 수 없이 지닐 수밖에 없으며, 그 지향적 사고와 실천적 행위가 '문화'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와 행위는 종종 자유에로가 아니라 구속과 파멸을 향해 가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간의 세계사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구속, 적어도 '파멸'에로까지 아나가지 않으려면(나 개인의 체험적 지혜로 말할 수 있다면) 먼저 나 스스로가 그 파멸로부터 '벗어나야'하며, 그런 뒤에 나와 관계되고 있는 세계의 모든 다른 존재들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들은 결코 진공적 초월이 불가능하다. 오직 상황내적인 체험의 험로를 통해서만 존재의 어떤 궁극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 자체가 아주 웅변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자유를 지향하는 존재이며,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인간을 '호모 리베르'(Homo Liber)라고 명명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 속성은 우리의 삶 가운데 '놀이'(Play)라고 하는 한 독특한 영역을 이룩하게 하였다. 그것은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형무형의 문화적 전통 속에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다양한 족적을 남겨놓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가히 놀이적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할 만하다.
우리 민족도 옛부터 지속적으로 놀이의 전통과 유산을 전개해 왔으며 이러한 사실들은 구비전승과 행위전승, 그리고 몇몇 문헌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북지역은 역사적으로 몇 차례의 행정구획 변동이 있었긴 했지만, 대체로 진안고원과 지리산록 일대의 동부 산간지역과 김제 평야를 중심한 서부 평야지역, 그리고 위도·고군산열도 일대의 서해 도서지역에 걸쳐서 비교적 다양한 문화를 이룩해 왔고, 놀이문화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독특하고 다양한 개성과 창조적 깊이를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2. 놀이의 개념과 본질
놀이 Play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기록에 단편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서구에서는 일찍부터 상당한 정도의 관심과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최근에 들어서는 특히 문화인류학의 진전과 함께 이에 대한 새롭고도 싱싱한 연구의 결과들이 우리에게도 종종 알려지고 있다. 놀이란 무엇인가, 놀이의 개념과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말하기 곤란한 질문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무래도 19세기말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말년에는 나치의 점령하에서 불우하게 일생을 마친 요한 호이징하 Johan Huiznga의 말을 상기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의 말에 의하면 놀이는 다음 두 가지의 특징이 있으며, 이것이 놀이의 중요한 본질을 이룬다고 한다.
첫째, 놀이란 우리의 삶의 일상적 세계를 떠난 어떤 세계이며, 실제적인 목적이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 행위의 유일한 동기가 놀이 그 자체의 즐거움에 있는 정신적 혹은 육체적인 활동이다.
둘째, 놀이에는 거기에 관여하는 모든 참여자에 의해 인정되는 어떤 일정한 원칙, 즉 '놀이규칙'이 있으며 놀이는 이것에 따라 진행되는 활동이고 거기에는 성취와 실패,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결국 놀이란 일상생활을 떠나 실제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고, 어떤 일정한 규칙에 따라 그 자체의 즐거움으로부터 행위의 동기가 유발되는 정신적 육체적 활동인 셈이다. 그에 의하면 놀이는 인간의 문화보다도 오래된 것이고, 단순한 생물학적·심리학적 혹은 물리적 행위의 한계를 넘어선, 독특하고 의미 있는 행위의 한 독립적 범주이며, 인간사회의 모든 중요한 행위의 원형 속에는 본질적으로 놀이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또한 놀이의 행위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것이며, 장소의 격리성과 시간의 한계성 및 지속성에 의해 혼란스러운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제한된 완벽성'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것은 그 고유의 과정과 의미와 반복 가능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긴장'을 해소시키려 하고, '가장'과 '하는척하기'의 의식이 지배한다. 거기에서는 '공정성'의 정신력이 요구되며 진지하기도 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에게 놀이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이 우주 속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치의 초논리적인 특성을 계속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인간이 단순한 기계적 물체, 나아가 이성적 존재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3. 민속놀이의 개념 및 범위와 성격
민속놀이랑 대체로 민간전승, 즉 민속 folklore의 일부로서 '민간전승의 놀이' folk play란 의미의 말로 쓰여지고 있는 것 같다. 민속이라는 용어가 포괄적인 의미의 생활양식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듯이, 민속놀이란 말도 보통은 특정민족과 특정지역의 놀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민속놀이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학계에서는 거의 논의된 적이 없으므로, 우리는 우선 최소한의 정보계수(情報係須)로서의 육하원칙에 근거하여, 대체로 '개화기' 혹은 '근대' 이전부터 우리 민족의 민간사회에서 민중들이 그들의 삶의 일부로서 자발적으로 창조하고 행하여 온 놀이들을 말한다고 규정해두자.
민속놀이의 기본 성격에 관해서는 구비전승과 행위전승을 통해서 전개되어온 문화적 전통의 산물로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속성 continuity과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창조적 충동으로부터 솟아나오는 변이성 variation, 그리고 그 속에서 민속놀이가 살아오고 있는 형식을 결정하는 사회에 의한 선택성 selection을 상기해 두는 것이 요긴할 것 같다.

4. 한국의 민속놀이와 전북의 민속놀이
김광언에 의해 1982년 현재 파악된 전국의 민속놀이는 모두 211가지이며, 이것들을 몇 가지 기준에 따라 나누어 그 특징이 살펴지고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한국 민속놀이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년놀이가 소녀놀이보다, 남자놀이가 여자놀이보다 훨씬 더 많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남성중심의 사회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둘째, 개인놀이보다 패를 이루는 상대놀이와 집단놀이가 훨씬 많다.
셋째, 목적에 따라 분류해 보면 놀이를 위한 놀이>풍농기원놀이>내기놀이>겨루기놀이>풍어기원놀이>마을태평 개인복락놀이 등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넷째, 시기에 따라서는 연중놀이(51.18%)>대보름놀이(11.3&)>여름놀이(7.10%)>기타놀이(6.63%)>정월놀이(5.68%)>봄놀이(4.26%)>수릿날놀이(3.79%)>겨울놀이(2.84%)>한가위놀이(2.36%)>영등놀이(1.89%)>사월초파일놀이(1.86%)>백중놀이(0.94%)로 나타났으며, 명절에 따라서는 대보름놀이(40.67%)>정월놀이(20.33%)>수릿날놀이(13.55%)>한가위놀이(8.47%)>영등놀이(6.77%)>초파일놀이(6.77%)>백중놀이(#.38%)의 순으로 되었다.
다섯째, 민속놀이의 지역적 분포상에 있어서는 전국적으로 두루 행해지는 것이 97가지(45.97%), 큰 지역의 놀이가 457가지(27.01%),특정지역의 놀이가 57가지(27.01%)로 나타난다.
여섯째, 집단놀이는 영남지역이 17.33%로 제일 많고, 소싸움·닭싸움·씨름·진뺏기 등과 같이 강한 승부를 보이는 놀이도 역시 영남지역에 제일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곱째, 줄다리기와 농악(풍물굿)과 같이 비교적 온화하고 화합적인 놀이는 호남지방에 제일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거북이놀이는 충청·경기 지방에, 그리고 고수는 경기지방에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이러한 전국적인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전북지역은 크게는 호남지방의 전반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전북지역 나름의 어떤 독자적인 성격을 지닐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중에 여기서 잠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이다.
첫째, 전북의 놀이들은 갈등·싸움·경쟁·겨루기보다는 풀이·화해·협동·단결의 성격을 더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전북지역에 탈품이 없고 농악과 판소리가 발달해 있다든가, 무당굿도 영남·영동지방처럼 다이내믹한 춤동작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주가 된다든가,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싸움''뺏기'등의 놀이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적다든가 하는 점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육체의 강력하고 동적이며 남성적인 행동의 미학보다는 유연하고 정적이며 여성적인 소리의 미학을 지향해가는 특성이 있다. 이 점은 물론 그렇게 간단히 유속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러한 지적이 타당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점은 비교적 순탄한 자연환경과 이 지역에 오랜 세월 동안을 두고 가해진 억압과 착취 유화의 과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형성되어진 문화적 풍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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