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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5 | 연재 [연중기획]
백제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11
실상사 2
윤덕향 고고학, 전북대 교수(2003-09-08 17:38:47)

실상사와 백장암의 석등과 석탑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실상사에 있는 몇몇 유물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1. 증각대사 부도
중각대사는 신라 9산선문중의 하나인 지리산 실상사문의 개산조사인 홍척국사의 시호이다. 이 부도는 신라시대부도의 정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즉 전체적으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는 부도로 다음에 살펴 볼 바와 같이 대단히 화려한 조각을 갖추고 있으며 집의 형태를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하대석은 4각의 지복석과 같은 돌로 되어 있으며 2단을 이루고 있는데 하단에는 풀꽃무늬가 양각되어 있다. 상단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으며 그 위에 있는 중대받침에는 각면에 4각의 구획이 있을 뿐인데 이는 윗부분은 갑석을 좌우는 껏기둥을 표현한 것이며 이 4각의 구획 안에는 다시 기둥을 상징하는 탱주가 있다. 중대석의 각면 중앙에는 안상이 있고 안상의안에는 신장상야 있다. 상대에는 각줄에 16잎씩의 연꽃이3줄로 양각 되어 있는데 개개의 꽃잎은 중간부분이 안으로 곡선을 이루며 약간 들어오는 복엽형태이다.
상대석의 위에는 탑신이 있는데 탑신의 아래에는 난간형의 탑신받침이 있다. 탑신받침은 8각을 이루는 각 귀부분에 난간의 기둥과 같은 것이 있고 각면의 중앙에는 안상이 있다. 탑신은 각면의 양귀에 각각 귀기둥을 세웠고 하나 건너마다에 사천왕을 조각하였고 사천왕이 조각되지 않은 마주보는 2면에는 문비가 조각 되었으며 나머지 2면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문비는 윗부분이 반원형을 이루며 아랫부분은 직사각형을 이루는데 그 내부 윗부분에 자물통과 문고리 2개씩이 양각되어 있다. 탑신의 위에 있는 지붕부분은 윗부분에 기와골과 마루가 세밀하게 표현되어 기와 끝의 막새까지가 드러나 있다. 기와지붕의 아래면에는 4각을 이루며 중심 쪽으로 모이고 있는 기둥이 표현되어있는데 이는 부연으로 추정된다. 이 부연의 안쪽 서까래가 있을 자리에는 넓은 호를 이루는 안상이 있고 이 호형안상의 안에는 비천상이 양각되어 있다.
탑신의 위에는 1매의 돌로 만든 상륜부가 있는데 역시앙화, 보륨, 그리고 보주로 되어 있다. 앙화는 8각으로 각면에는 연꽃잎이 위쪽을 보도록 조각되어 있으며 보륜의 윗부분에도 같은 형태의 연꽃이 있으며 보주는 공모양으로 무늬가 없다.

2. 증각대사 응료탑비
증각대사부도탑의 탑비로 비신이 없어지고 비석을 받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이수의 정면에 응료탑비라는 전각명문이 있어 중각대사의 부도가 응료탑으로 불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수에는 용이 트림을 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 비석의 경우에는 분명하지 않으며 부여에 있는 당나라 유인원기공비의 것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귀부는 비의 받침이 되는데 이 비석의 귀부는 신라무열왕릉의 귀부와 비슷하나 힘이 없는 양식이다. 이 당시의 귀부는 거북의 몸에 용의 머리를 결합시킨 것이 일반적인데 이 비석의 경우는 거북의 머리를 표현하고 있어 전통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3. 수철화상 부도
중각대사 부도와 유사한 형태를 보이나 세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수철화상은 중각대사의 뒤를 이은 실상사의 제2조사로 신라 진성여왕 7년(893년)에 입적하였다. 이 부도는 그의 입적 당시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에 따라 중각대사의 부도와 부도탑비도 893년보다는 얼마간 앞서는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별도의 돌로 8각의 지복석을 놓고 그 위에 1매석으로 된 하대석이 놓여 있다. 하대는 아랫부분이 8각이며 그 위로 곡면을 이루며 좁혀드는데 이 좁혀드는 측면에 형태를 잘 분간할 수 없는 변형풀꽃무늬 또는 구름무늬가 있다. 하대와 중대 사이에는 별도의 돌로 중대받침이 마련되어 있으며 중대석도 별도의 돌로 마련되었다. 중대는 각면중앙에 안상이 있는데 중각대사의 부도에서와는 달리 윗부분이 주름처럼 접힌 꽃무늬를 이루는 안상이다. 안상의 안에는 주악상과 향로 등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는 중대와의 사이에 상대받침, 탑신광의 사이에 탑신받침이 위아래에 각기 층급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측면에 16잎씩의 연꽃이3단으로 하늘을 보도록 조각되어 있다. 개개 연꽃은 중각대사 부도의 연꽃과는 달리 꽃잎이 하나인 단엽이다.
상대석의 위에는 다시 별도의 돌로 탑신받침이 놓여있는데 이 탑신받침은 난간부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껏기둥이 있고 안에는 안상이 조각되었다. 이처럼 별도의 돌로 탑신받침을 마련한 것은 중각대사 부도와는 다른 양상인데 9세기말 경의 신라 부도 조형에서는 보편적인 수법이다.
탑신에는 귓기둥이 있으며 각면에 사천왕을 하나건너 조각하고문비를 2면에 조각한 것은 증각대사의 경우와 같다.
탑신의 위에 놓이는 지붕의 표현양식은 중각대사의 경우와 같으며 상륜부에 노반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수철화상의 부도는 기본적으로 증각대사의 부도와 유사한 구도와 무늬를 보이는 것 같으나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별도의 돌을 증각대상의 경우에 비하여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 연꽃의 무늬수법에서도 차이가 있으며 상대석 위에 별석을 끼우고 중각대사의 경우난간의 표현이 사실적인 것과 다르다.

4.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수철화상부도의 탑비로 이수의 전면 중앙에 능가보원탑기라는 전각명문이 있다. 비문은 마멸이 심하나 수철화상의 출생, 수계, 득도, 세속에서의 활동, 입적 등과 부도탑의 조성경위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수에는 상면 중앙에 있는 여의주를 그 좌우에 있는 용이 다투고 있는 형태가 표현되어 있는데 용의 트림은 장엄함 보다는 간략화된 느낌을 주고 있다. 탑비의 받침은 귀부가 아니라 연화좌대로 특이한데 장방형의 긴 변의 측면아래에는 2개씩의 꽃잎형 안상이 있고 그 위에 4잎의 연꽃이 있다. 연꽃은 안쪽에 2잎씩의 자엽이 있는 형태이며 귀부분으로 가까울수록 비틀림이 심하다. 이같이 귀부대신에 연화대좌를 마련한 예는 매우 특이한 것으로 이 탑비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5. 절제여래좌상
실상사의 본존불로서 개산조사인 중각대사나 2대조인 수철화상 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말기의 철불이다. 현재는 대웅전의. 옆에 있는 약사전내에 모셔져 있으며 무릎 아래부분과 손이 없어진 것을 손은 본래의 것을 찾아서 1986년에 복원하였다. 이 불상은 신라말기 선종사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철불상 중의 대표적인예의 하나이다.
불상의 머리 위에 있는 육계는 큼직하며 머리카락은 촘촘한 나발이고 표정은 근엄하다. 가슴이 당당하고 힘차며 허리는 가는 편으로 통일신라시기의 사실적인 불상의 경향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옷은 양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얇으며 탄력 있게 표현 되고 간결한 선으로 처리하였다.

6. 약수암 목조 탱화
이 탱화는 실상사와 부속암자인 약수암에 있는 것으로 조선 정조 6년(1782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탱화의 기본적인 구도는 불화의 배치구도와 같은데 이를 나무를 이용하여 도도라 지도록 새겨서 부처 뒤의 후불탱화로 이용하였다. 이 같은 류의 후불탱화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조성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약수암 탱화는 실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화면은 2단으로 나뉘는데 하단에는 중앙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불과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등 4분의불상이 협시불로 자리하고 있다. 상단에는 중앙에 2대제자가 있고 그 좌우로 지장보살, 나한 등 4불상을 배치하고 있다. 하단 중앙에 있는 아미타본존불은 앉아 있는 상이며 연화좌대 위에 자리하며 좌우와 상단에 있는 불상은서 있는 상으로 역시 연화화대 위에 있다. 본존은 큰 광배를 갖추고 있으며 결가부좌 하였고 옷은 좌대의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좌우에 있는 보살 등은 머리에 화려한관을 쓰고 몸에는 장신구를 걸치고 있으며 손에는 연꽃, 또는 옷자락을 잡고 있거나 합장하고 있다. 상단에 있는 불상들은 하단 연화좌대에서 뻗어 오른 연꽃을 좌대로 모셔져있다. 이 협시상들의 사이로는 연꽃줄기가 올라와서 꽃봉오리를 이루며 화불이 표현되어 있다. 개개 불상의 얼굴은 근엄하며 얼굴과 몸이 사각형을 이루고 있어 둔한 느낌을 준다. 옷은 두껍고 옷주름이 간결하게 표현되어있어서 전체적으로 둔한 느낌이 들며 이 같은 양상은 조선시대의 후기 불상양식을 잘 대변하는 것이다.

7.실상사 석장승
실상사의 어귀에 있는 다리를 건너기 전과 건넌 다음에 각각 돌로 만든 장승이 있다. 그중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있는 2기의 석장승에는 "상원주장군"과 "대장군"이라는 글이 가슴부분에 새겨져 있다. "상원주장군"은 두 눈이 크고 둥글며 톡 튀어나왔고 코가 크다. 머리에는 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손에는 창을 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대장군"은 이와 달리 손에 창을 든 것이 생략되는 등의 간략한 모습을 보이며 "상원주장군"에 비하여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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