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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 | 특집 [인디밴드, 그들 ②]
희망을 노래하는 인디밴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
도휘정(2016-08-16 10:05:57)





'주스 프로젝트'의 팀장과 기타를 맡고 있는 박석주 씨(49)와 드러머 박인열 씨(45), 그리고 '크림'의 베이스 유현진 씨(33). 지난 7월 14일 『문화저널』이 마련한 인디밴드 집담회가 열렸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면 음악에 대한 열정, 인디밴드로서의 자존감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인디밴드가 됐을까?






박석주: 저는 전주대 스쿨밴드 출신이에요. 저 때만 해도 스쿨밴드 인기가 좋아서 기타 메고 객사에 앉아있으면 버스 안에서 여고생들이 소리 지르고 그랬어요. 현재 남원에서 '올디스 벗 뉴(Oldies But New)'라는 록밴드 팀장과 퓨전국악 앙상블 '어쿠스틱'에서 기타를 맡고 있습니다. '주스 프로젝트'는 음악과 함께 살아온 제 이야기에 고향 정서를 담은 저만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도하게 됐어요.


박인열 : 독재자에요.(웃음) 곡 욕심이 많아서 곡도 자기가 다 쓰고, 파트 편곡만 던져줘요. 한문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음악에서도 한문 냄새가 나요. 국악적인 요소도 느껴지고요.


박석주 : 다시 표현하면 인문학적인 깊이죠. (웃음)


박인열 : 저는 고등학교 때 밴드를 알게 돼서 기타와 노래를 했는데, 20대 후반에 리듬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스승님 권유로 드럼으로 전향했죠. 한 때 외국인들과 함께 'AWD(Asleep Without Dreaming)'라는 팀을 만들어 5년 정도 활동했는데, 외국인 멤버들이 비자 문제로 돌아가고 이후 '주스 프로젝트'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스타'라는 공연 클럽도 운영하고 있고요.


박석주 : 평소 인열 씨 연주를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고 일단 드러밍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제가 하려는 음악과 잘 맞겠다는 판단이 직관적으로 와서 '주스 프로젝트'를 제안한 거죠.


유현진 : '크림(Cryim)'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습니다. '한음사이'라는 국악팀에서 연주하고 있고요. 한 때는 오로지 '크림'만 하겠다고 했었는데, 여기저기 도와달라는 데도 많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웃음) 저도 전북대 스쿨밴드 출신이에요. 그 때는 다른 꿈이 있었고 음악은 취미생활이었는데, 군대에서 실용음악과를 전공한 후임을 만나면서 음악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죠. 타보악보 없이도 기타 솔로를 연주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거든요. 내가 음악적 깊이가 얕았구나, 더 해보고 싶다, 했던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싶어도 딱히 전공학과가 없던 시절. 스쿨밴드로 시작해서 프로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석주 프로젝트' 윗대 선배들만 해도 밤무대나 나이트는 생계 유지뿐만 아니라 음악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무대였다. 1986년 그룹 '부활'의 인기는 전국적으로 록 붐을 일으켰고 록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활동 여건을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리고 이들이 여전히 전북에서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인열 : 음악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더 큰 무대를 희망하고 갈망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전주를 떠나기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자기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활동하면 인지도도 생기고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지역으로 가면 누가 인정해 주겠어요? 그런 어려움 때문인지 보통 20대 중반에서 30대 사이에 서울로 갔다가 다시 가방 싸서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지역에서 활동 기반을 마련한다는 게 어려워요. 전국을 대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막상 소요되는 비용이나 부대사항이 많다 보니 빈번하게 나가지는 못하고, 음악을 끌고 가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해 돈을 벌고 음악 레슨이나 파트타임 세션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전주에서 음악을 하는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저는 세계관을 넓히기로 했어요. 전주에 산다는 것에 제약받지 않고 내 몸이 조금만 바쁘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거죠.


박석주 : 나이가 들다보니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의 꿈과 이상을 어떻게 익힐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역시나 지역과는 상관없이, 음악에 내 인생을 담아서 어떻게 편안하게 즐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요. 젊은 혈기로 20~30대에는 이 지역 저 지역 활발하게 활동하고 했지만, 지금은 지역에서 편안하게 즐기고 싶어요. 음악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도 더 단순해지고, 활동하는 동선도 간결해 지려고 하지만, 예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치열해 지고 더 명쾌하게 하려고 합니다.  


유현진 : 우리나라에서 인디밴드의 메카 하면 홍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잖아요. 저도 한 때는 정말 많이 가고 싶었어요. 서울은 인구도 많고 공연 공간도 많다 보니, 음악적으로 노출할 수 있는 기회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태어난 곳이 전주인데 낯선 곳에 가서 새로 뿌리 내린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물론 도전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니 제가 찾고 있은 음악이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미국을 보면 뉴올리언스 재즈나 남부지방 서던록처럼, 지역마다 특징이 있는 음악이 있잖아요. 그걸 보면서 나도 지역색을 가지고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음악을 하면서 좀 더 보람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석주 : 이제 인디신은 어디나 평준화된 듯해요. 하지만 각 지역을 대표하는 밴드는 반드시 있습니다. 오래 버티고 현재 남아있는 팀들이죠. 대부분의 밴드들이 5년, 10년 가기가 어렵고, 멤버 교체도 자주 되거든요. 꾸준히 가는 밴드들을 보면 분명히 뭔가가 있어요. 자생력의 원천은 역시 음악적으로 알맹이가 있고, 대중들과 공감하는 에너지가 있다는 거죠.


박인열 : 지역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르긴 해요. 부산은 하드코어 메탈, 광주는 한때 펑크가, 전주는 모던 계열이 강세였죠. 요새는 우리끼리 달달한 음악이 어필한다고들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뮤지션들과 교류가 많아지다 보니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것 같아요.


박석주 : 지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게 인디밴드의 순수성이나 젊은이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게 아닌 게 돼버렸죠. 이미 젊은이들은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밸런스가 쏠려있다 보니 전주 인디밴드들이 충족시키지 못해요. 그러다 보니 일부 마니아층만 공연장을 찾게 되고, 전체적으로 인디밴드가 전주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기적적이에요. 

10년 쯤 됐을까. 과거에 비해 인디밴드를 내세우는 기획이나 공연이 많아졌다. 시청률을 떠나 KBS가 2011년부터 밴드 서바이벌 'TOP밴드'를 시즌 3까지 제작한 것만 봐도 분명 인디밴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박인열 : 과거에 비해 인디밴드 무대가 많아진 건 사실이죠. 그런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밴드를 위한 공연인지, 아니면 행사를 위해 밴드를 세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냉정하게 얘기해서 전주에 있는 밴드만을 가지고 행사를 기획한다고 하면 관객이 안 옵니다. 첫째는 인지도가 떨어지니까, 둘째는 지역 밴드는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 그렇겠죠. 예산을 들여 행사를 주최하는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그런 점이 가장 아쉽기도 해요. 어떤 경우는 지역 팀이 하나도 없는 경우가 있어요. 유명한 밴드만 세우거나 단순히 채워 넣기식이라면 의미가 없는 거죠.


박석주 : 아무래도 성과 위주다 보니 그런 거겠죠. 행정에서 주관하는 축제나 행사는 성과가 있어야 하니까 어정쩡한 지역 뮤지션을 세우기에는 부담이고…. 대기업이나 언론이 움직이는 어떤 흐름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겠죠.

유현진 : 인디밴드 무대가 많아진 건 그 자체로는 좋은 일지만, 지역 밴드 입장에서는 오히려 숨구멍을 더 조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한 때 TV에서 'TOP밴드' 프로그램을 보고 좋다고도 생각했는데, 결국은 TV에 나온 사람만 유명해지고 인디밴드라고 하면 그 팀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다른 인디밴드들이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독점하거나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될 때도 있어요.






'인디 안에서도 인디'가 될 수밖에 없는 지역의 인디밴드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꿈꿀까?


유현진 : 음악하는 데 필요한 게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뮤지션들이 뭔가를 한다고 했을 때 방해나 안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기획을 해서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적어도 5년은 굴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한 번 실패하면 그것은 실패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이 판에 문화를 하나 만들어 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민원이 들어오거나 어떤 제약이 들어오면 힘들어지는 거죠.


박인열 : 문예진흥기금 같은 보조금도 있는 걸로 아는데, 지원받으려면 서류도 써야 되고 복잡하더라고요. 상대적으로 국악이나 클래식 같은 다른 장르는 기존에 해 온 베이스가 있으니까, 우린 상대적으로 그런 부분이 취약한 거죠. 대부분의 밴드들을 보면 자기 음악을 위해 생존하는 거지 그걸 비즈니스화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1인 기업이에요. 사장님이고, 매니저이고, 기획도 해야 하고, 최대한 직접 할 수 있는 거는 다 해야 돼요. 이 모든 걸 해결하려면 결국은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언더그라운드 잡지를 만들고 싶어요. 전국 공연장이든 클럽이든, 어디에서 누가 활동하고 있는 지 담는 거죠. 


유현진 : 필드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음악이나 퍼포먼스만 생각하기에도 성이 안차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잘 짜진 판에서 신나게 놀다가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인디밴드도 기획이나 홍보를 전문적으로 해줄 인재양성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는 대구의 '아프리카'라는 밴드와 합동공연을 기획했는데, 다른 지역의 두 밴드가 만나서 함께 공연을 기획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우리는 어쿠스틱이고, '아프리카'는 하드록이라 한 무대에서 잘 어우러질까 의구심도 들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괜찮았어요. 두 밴드 장점이 조화를 이뤄서 좋았다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두 밴드 특색이 기대만큼 살지 못했다는 분들도 있는데, 어떤 평가도 감수할 수 있어요.


박석주 : 저는 직접적으로 돈을 지원해 주기 보다는 지역 인디밴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떤 흐름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행정이나 미디어에서 밴드 음악의 순수성이나 가치를 홍보해 주고, 또 거기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해요.


박인열 : 제가 인디밴드 공연과 캠핑을 접목한 페스티벌을 기획했었는데,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최소 300명은 와야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웹사이트에서 홍보하고 전단지를 붙여도 항상 200명 정도에서 그쳐요. 홍보의 절실함을 느꼈죠. 사실 행정에서 연습공간을 만드는 등 여러 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밴드하는 입장에서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밴드하면서 자기 연습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녹음실이요? 비록 앨범은 창고에서 썩고 있더라도 우리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빚을 져서라도 해요.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제대로 알고 그런 부분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고, 그렇게 봤을 때 밴드 입장에서는 홍보가 참 어려워요.


박석주 : 냉정하게 말해서 음악한다는 것 자체가 음악으로 먹고 사는 정도만 되도 성공한 겁니다. 저는 제가 록밴드를 하든, 국악 세션을 하든, 주스 프로젝트를 하든, 늘 똑같아요. 이미 저에게 음악은 흔들릴 대상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놓인 부분을 놓고 고민하고 흔들린다는 것은, 사실은 자기가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메이저는 메이저의 이유가 있고, 마이너는 마이너의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이너가 메이저가 될 수도 있는 게 우리의 리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뮤지션들도 끊임없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예술 활동을 하면서 자기 예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막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저는 예술가들이 인문학이나 철학, 사회 등 광범위하게 박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생각의 위치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반드시 자기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배고프면 막노동 뛰면 먹고 살 수 있지만, 예술은 그게 해결이 안 되면 쳇바퀴 돌 듯 하거든요. 






박인열 : 나라에서 음악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함께 생존하는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역 밴드들에게, 그리고 후배들에게 음악적으로 많은 경험을 주고 싶어서 '원더 로드(Wonder Road)'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공모를 통해 2팀을 선정했고 10월에 대만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이들이 해외공연을 다녀오면 주변 동료들도 해외진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인디밴드의 음악적 역량이 폭넓어 지겠죠.
저도 희망은 있어요. 밴드들을 키우면서 이 팀들이 잘 되면 나중에 돈 받아야지, 행사를 기획하면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적자도 면하고 돈도 벌겠지, 나중에 아우디도 타고 허세도 부려하지, 그런 희망을 가지고 하는 거죠. (웃음) 

 

유현진 :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후배들에게 돈이면 돈, 행복이면 행복, 음악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이 얼마큼 노력하고 잘 하느냐인데, 그런 점에서 관심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인디밴드들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박인열 씨의 희망, 박석주 씨의 노력, 유현진 씨의 관심.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니, 이런 결론이 나온다.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는 인디밴드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이다.
음악을 위해서라면 빚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 누군가는 용감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인디밴드가 아니었던가. 적어도 헌법 제10조가 보장하고 있는 자기결정권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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