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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 | 특집 [문학평론가 천이두 교수 별세]
한국문학 평단의 거목, 그의 굵은 족적을 기리다
윤희숙(2017-08-28 15:20:49)



문학평론가 하남 천이두 선생이 지난 7월 8일 새벽,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1929년 남원 운봉에서 태어난 고인은 남원농업중학교 5학년을 수료하고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고 일본 경도 불교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익산 남성고등학교와 김제 만경종합여고에서 짧은 기간 교편을 잡았고 전북대·원광대 국문과 교수로 50년 가까이 재직하며 활발한 연구·저술활동과 후학양성에 전념했다.
1995년 원광대학교를 퇴임한 이후 지역문화지인 월간 『문화저널』  발행인에 취임하였고 2001년 '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을 맡으며 축제 초기 기틀을 잡는데 기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처럼 교육자이자 평론가, 한국문학 연구자, 판소리 연구자, 잡지발간인 및 축제조직위 수장 등으로 탁월한 업적을 쌓아온 고인은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알츠하이머 발병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

수많은 평론과 연구논문 및 저서를 통하여 이룩한 천이두 선생의 학문적 업적은 크게 '폭넓은 시인, 작가에 대한 비평'과 '판소리 연구의 새로운 영역 개척' 그리고 '恨에 대한 독보적 이론 정립'으로 나뉘어진다.
그의 평론 활동은 일제강점기 작가, 시인은 물론 해방이후 1970년대 활동하던 현역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방대했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평단에 데뷔한 선생은 1960년대 활발한 문학평론활동을 펼쳤으며 그 결과 1965년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현대문학사에서 주는 평론부문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3년 발간된 『恨의 구조 연구』는 그의 대표 저서이자 '한'에 대한 최고 수준의 학문적 경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던 그에게 모진 고초를 안겨주었던 양심과 사상의 문제, 그를 위해 가족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희생, 그리고 전북대에서 맞은 재임용탈락의 시련과 원로 평론가들의 도움을 계기로 원광대에서 다시 교수직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는 더욱 강해지고 성숙해졌으며 자신의 인생역정을 오히려 학문의 한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성과를 이뤄냈다. 자신이 '한' 그 자체이자 '한'의 연구자로 우뚝 선 것이다. 한국소설과 시, 판소리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고인은 한(恨)의 구조와 관련된 많은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평소 쑥대머리를 즐겨 불렀을 정도로 우리 소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한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 판소리 특징을 연구하며 특히 임방울의 창을 즐겨 들르며 수년간의 자료수집과 연구 결과로 1986년 『천하명창, 임방울』이라는 전기물을 발간하기도 했다.

대표 저서로는 '한국현대소설론'을 비롯해 평론집으로 '한국소설의 관점' '문학과 시대' '한국문학과 한' '한의 구조 연구'등이 있으며 평전 '판소리 명창 임방울' 등을 냈다.

고인의 장례는 7월 11일 오전 전주 중앙성당에서 박태건시인의 사회로 유족과 지인, 후배 문인들의 애도속에서 영결미사를 겸한 전북문인장으로 치러졌다.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작가회의 양측 후배 문인들이 참여한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은 생전 고인과의 인연을 추억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하는 마음을 보탰다.
김승종교수(전주대학교) 는 '한의 문학, 한의 판소리, 한의 일생, 천이두'로 정리되는 그의 생애사를 돌아보았고 소재호시인은 고인의 삶과 연구업적이 투영된 절절한 애도시 '靈의 세계에 까지 비추신 별'을 낭송했다.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 돈독한 정을 나누었다는 천이두 선생의 평소 따뜻한 품성은 추도식이 진행되는 내내 지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전북대 시절 제자와도 수시로 식사나 술자리를 함께 했으며 동료 교수나 지역의 문인은 물론 다른 지역의 문인들과도 교분을 두텁게 유지하며 잘 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문인협회 안도회장은 추도사에서 늘 문우들에게 사랑방역할을 했던 선생의 집을 추억했고 전북작가회의 김병용회장은 그를 '천상 선비이면서 지식인' 이었다고 칭하며 대학시절 나이 어린 학생이었던 자신을 존중해주고 따뜻한 격려로 힘을 주었다고 추억했다. 열악했던 시절, 작가회의에서 운영하던 카페를 자주 찾아 챙겨주고 걱정해주던 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추도 마지막 순서로 평소 고인이 좋아하고 즐겨 불렀던 '쑥대머리'를 부르는 판소리 공연이 있었다. 소리꾼으로 나선 차복순명창은, 오래 전 한 경연대회에서 참가자와 심사위원으로 만났던 선생과의 인연을 풀어내며 당시 대상을 받은 자신에게 고인이 건넸던 따뜻한 말과 격려가 소리꾼의 길을 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전했다.
고향 남원에 대한 선생의 남다른 애정은 그가 알츠하이머를 앓는 중에도 자녀들이 함께 지내던 전주 또는 서울에서 까지 지갑만 두둑해지면 택시를 잡아타고 남원으로 달려 가곤했던 유명한 일화를 통해 전해지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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