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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 | 특집 [의사 남궁인에게 듣는 글 쓰는 이야기]
그의 이야기는 생생한 날것 그 자체였다
이동혁(2018-07-13 11:58:35)




두 권, 아니 지난해 말에 한 권을 더 냈으니 세 권이다. 책을 세 권이나 낸 작가인데, 본업은 의사다. 자세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겸 수필가. 참, 귀가 솔깃해지는 이력이다. 대체 어떤 연유로 의사 선생이 글까지 쓰게 된 걸까. 청진기를 든 그 손에 펜까지 쥐게 된 걸까.
이야기에 앞서 미리 용서를 구한다. 얕디얕은 글쓴이의 식견에 부디 이해와 양해를. 이제야 고백하는 거다. 의사 겸 작가, 방송에도 출연한 적 있는 그를, 부끄럽게도 글쓴이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제야 고백하는 거다. 죄송합니다, 남궁인 작가님.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그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알겠더라. 잘났다는 거.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 의사와 작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으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해서 나는 몹시도 설렜던 것이다. 이렇게 대단한 분을 언제 또 뵙겠는가. 거기에 덤으로 샘도 좀 나더라.


생생한 날것의 감촉.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바닷가로 나들이를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바닷가의 지명도, 몇 살 때의 일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딱 한 가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차 안이었을 것이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내 옆엔 어시장에서 산 생선이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앞자리에선 어머니와 삼촌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두 분의 대화를 시큰둥하게 흘려들으며 바닷가에서 주운 소라 껍데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비닐봉지에서 부스럭, 하고 소리가 난 것은.
생선이 아직 살아 있는 걸까. 지루하던 참이었고, 재미난 놀이거리라도 발견한 양 나는 조심스레 꾸러미를 풀어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담겨 있던 것을 보고 펄쩍 뛰며 기겁하고 말았다.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는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몹시도 놀랐던 그때의 심정만은 지금도 내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닐봉지에 들어 있던 건 생선이 맞았다. 살아 있었고, 주둥이와 아가미를 뻐끔뻐끔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평범한 생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문제는 머리 '아래'였다.
놀랍게도 녀석에겐 '몸'이 없었다. 정확히는 살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녀석에게 남아 있는 건 앙상한 뼈와 내장, 그리고 지느러미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상태로 살아 있지? 어린 마음에 그건 상당히 섬뜩하고 기괴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펄쩍 뛰며 기겁할 정도로. 결국 그날 저녁, 나는 녀석이 둥둥 떠 있던 매운탕을 단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래서 결국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성격 급한 독자 분은 남궁인 작가와 아무 상관없는 글쓴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부글부글 끓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그거다. 남궁인 작가의 이야기가 글쓴이에겐 저 생선과 같았다는, 그런 말이다. 난데없이 달려들어 연약한 마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던 그날의 생선처럼 그의 이야기엔 가감이 없었다. 리얼했고, 처참했고, 화가 났고, 또 측은했다. 그의 이야기는 생생한 날것 그 자체였다.


"응급실 의사로 일하다 보면, 바깥의 일이 응급실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오는구나, 느낍니다. 사고 현장의 공기나 참혹함이 전혀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들어와요."
 특히, 폭발 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은 환자가 실려 오면, 그 풍경은 가히 지옥에 비견될 정도라고 한다.


"사람 타는 냄새가 다른 고기 타는 냄새랑 전혀 다르지 않아요. 똑같거든요. 그런 냄새가 자욱해집니다. 지옥이에요, 지옥. 이런 일들이 계속 있습니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환자를 살리는 게 의사의 일이라고. 물론 맞다. 환자를 치료하는 게 의사의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보고, 무엇과 맞닥뜨리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지옥이에요, 지옥. 그의 말처럼 그 이면엔 지옥이 있었다.


"아동 학대가 정말 심각합니다. 아이를 정말 잔혹하게... TV를 보다가 리모컨으로 머리를 계속 때렸대요. 그리고 한 번씩 들었다 던지고... 병원에 왔을 땐 이미 갈비뼈가 전부 으스러지고, 뇌가 곤죽이 돼 있었습니다. 거의 뇌사자예요. 그 아이는 평생 지능을 못 찾습니다. 이런 악마들이 와요. 더 경악스러운 건 가해자 남성이 3년 6개월 형밖에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말 충격 받았어요. 고작 3년 6개월... 심지어 이제 곧 나온답니다."


지옥 같은 풍경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꺾일 것만 같은데, 세상엔 그보다 더한 악마도 많았다. 감정에 한도가 있다면, 진즉에 말라 버렸을 것을... 그래서 더욱 그의 한마디가 뼈저리다. 의사도 죽을 만큼 아픕니다...


 "다양한 사례들이 있고, 다양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일단 경제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고, 보호자가 없는 무연고자일 수도 있고, 이런 스토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의학적인 지식과 더불어 인간적인 이해도 필요한 직업입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그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데이트 중에 뱀이 나왔는데, 여자가 미처 피하질 못한 거예요. 그래서 응급실에 왔는데, 남자가 뱀을 잡아 왔더라고요. 술 담그는 병 있잖아요? 거기에 넣어서 잡아 왔어요. 이 뱀이 물었습니다, 하고. 그랬더니 사람들은 놀라서 피하지, 뱀은 뱀대로 병 안에서 쉭쉭대지(웃음)."


응급실 한복판에 난데없이 뱀이라니. 도감까지 비치돼 있다는 말에 그만 웃고 말았다.


"저희도 뱀의 종류를 알아야 하니까."


물린 당사자나 남자 친구에게는 정말로 큰일이었겠지. 그래도 어쩐지 우습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일지도 모르겠다.


"젓가락으로 콘센트를 찌르고 감전당해서 오는 사람도 있어요. 콘센트도 한쪽만 찌르면 괜찮은데, 양쪽을 다 찌르고 으악, 해서 와요. 그래서 요즘엔 양쪽에 힘을 똑같이 줬을 때만 꽂히도록 콘센트를 만드는데, 그랬더니 이번에는 젓가락을 들고 정말 동일하게(웃음). 그렇게 감전돼서 아직도 옵니다."


그밖에도 지인의 권유로 독버섯을 먹었다가 구토가 멎지 않아 아예 토사물을 받기 위한 봉지를 귀에 걸고 다녔다는 환자의 이야기(정작 권한 지인은 아무렇지도 않았단다)나, 경비실에서 펜치를 빌려 한 시간 동안 손가락에 낀 반지를 자른 이야기(그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19에 반지를 자르는 도구가 있단다. 만약 손가락에 반지가 꼈다면, 응급실 대신 119를 방문하자), 방송에서 고산병 약으로 비아그라를 언급했다가 때마침 청와대 비아그라 구입 해명과 엮여 관련 검색어까지 얻게 됐다는 일화 등등 엉뚱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경험에 입담까지 더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매년 전국에서 천만 명 이상의 응급 환자가 발생하는데,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도 8만 명 정도가 찾아옵니다. 평일엔 2백 명, 주말엔 3백 명 정도죠. 그렇게 많은 환자가 내원하다 보니 거의 전쟁터나 다름없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셈이다. 악보 대신 차트를 보며 응급실을 지휘하고 있을 그를 응원한다. 그가 구할 수많은 생명을 기대한다.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 도중 그는 여러 번 그 말을 입에 담았다. 기도하듯 엄숙하게, 몇 번이고 그 말을 읊조렸다. 나는 까닭이 궁금했다. 그토록 침통하게 되뇌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는 첫 의대 실습 때 만났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른 살 여자였는데, 발목이 자주 부어서 피 검사를 받았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서 대학병원으로 오게 된 케이스였어요. 일단 검사 결과가 안 좋으니까 바로 입원하고 골수 검사를 했는데, MDS인 거예요.
 MDS라는 병은 딱 2년만 사는 병이에요. 평균 생존 2년입니다. 그 사람은 서른두 살에 죽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레지던트 선생님한테 물어봤어요. 이 환자 이제 어떻게 하나요, 그랬더니 뭘 어떻게 해, 약으로 치료하면 되지, 이러더라고요. 이제 겨우 서른 살인데 앞으로 2년밖에 못 사는 거 아닙니까, 그랬더니 그게 뭐 어떻다고, 당연한 거 아냐, MDS인데, 이렇게 얘길 하더라고요. 병원은 당연한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저는 그것들을 안 쓰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고, 동시에 죽은 자에 대한 애도였다. 환자에 대한 감정을 낭비라고 말하는 선배들 틈에서 그는 어쩌면 이단아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단아의 모습에 치유를 받고, 또 위로를 얻는다. 결국 마음이다.


 "지하철에 뛰어내려 자살을 하려던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근데 죽지 못하고 다리만 절단된 채 병원으로 이송된 거예요. 구급대원이 절단된 다리를 들고 오는데, 어깨에 메고 들어오더라고요. 딱 보니까 다리는 못 붙일 것 같았고, 어쨌든 할아버지는 살긴 사셨어요. 그래도 할아버지 입장에선 죽을 생각으로 뛰어든 거잖아요. 근데 결국 죽지도 못하고 두 다리만 잃었어요.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건이 있던 날 실린 작은 신문 기사 몇 줄.
 '오전 8시쯤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70대 남성이 선로에 뛰어들어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로 인천역 방향 전동차 운행이 40분 동안 지연돼 출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경찰은 이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뛰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도 그 할아버지의 비참함을 알 수가 없어요. 그냥 70대 남성,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정도예요. 구급대원이 다리를 어깨에 메고 들어왔을 때의 긴박한 상황이라든지, 왜 죽으려고 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의 글은 잊힌 자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우리가 짤막한 신문 기사 한 줄로 알 수 있는 건 그저 불편했다, 정도뿐. 그래서 70대 남성, 이란 표현은 사실 속이 텅텅 빈 깡통이나 다를 바 없다.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까닭, 그의 칠십 평생은 그렇게 단순해지고, 그리고 이내 잊힌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남궁인 작가의 글은 어쩌면 구원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시인이 꿈이었습니다."


 비록 시인이란 꿈을 (아직)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런 꿈을 곱씹으며 키워 온 문청의 자아가 지금 이렇게 꽃을 피웠다. 그에게 글이란, 무뎌진 날을 벼르는 숫돌과 같은 것이다. 깎이고 마모되어 가는 의사의 일상,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해지는 순간들 속에서 오직 글만이 그의 감성을 예민하게 깨워 주었다. 환자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때문에 의사로서의 그도, 작가로서의 그도 똑같이 소중하다. 어느 한쪽을 빼고서 '남궁인'이라 할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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