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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 | 특집 [2018 전주세계문화주간-미국주간]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니 다양성이 보였다
제레미 믹의 사진전 '미국의 얼굴'
이동혁(2018-09-17 10:50:57)



다문화는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말,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다. 2000년대 이후 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가정 100곳 중 두 곳이 다문화 가정이라고 한다. 눈에 띄는 수치는 아니지만, 평생 만날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만큼 적은 수치도 아니다. 그런데 사회 일각에선 여전히 다문화를 차별과 멸시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야, 다문화."
베트남 출신 어머니를 둔 '김전일' 학생은 항상 교사에게 다문화라 불렸다. 일본인 어머니를 둔 A 학생도 친구들이 무심코 던지는 "넌 한국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는 질문에 남모를 고통을 겪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를 부를 땐 자기도 모르게 친구들의 눈치를 보았다. 불과 한 달여 전에 실린 서울신문 기사의 내용들이다.
다문화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서양인과의 결혼은 '글로벌 가정'이라 부르면서 아시아인과의 결혼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부른다. 제도적인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인식의 차별'이다. 다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 개선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국문화주간을 맞아 전주를 찾은 제레미 믹의 사진전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그는 사진을 통해 끊임없이 호소한다. 차별과 편견은 알지 못함에서 오는 것임을, 관심을 갖고 마주 보았을 때 오해 역시 해소될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문화저널은 '미국의 얼굴(Face of America)'이란 이름으로 전주를 찾은 포토저널리스트 제레미 믹을 만나 다문화와 소수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눈부신 보석이 알알이 박힌 왕관을 든 여성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화려한 차림새와 화장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숨길 수 없는 당당함으로부터 사진 속 여성에 대한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여성의 이름은 레이디 셔그.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나바호 트랜스젠더 공동체의 일원이다.
반나체 남성의 사진 앞에서 다시 걸음이 멈췄다. 성조기 무늬의 모자와 반바지가 눈길을 끈다. 불가리아 이민자인 남성이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민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과 안 다음의 느낌이 다른 건 무의식중에 품은 편견 탓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인종, 성별, 직업, 종교 등 다양성과 소수자에 대한 주제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는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돕는다. 이번 사진전, 미국의 얼굴에도 나바호 인디언 보호 구역의 성소수자 공동체부터 워싱턴DC의 도시 바이커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발견되는 다양성이 담겨 있다. 작가는 미국의 얼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배경을 가진 개인들을 포함시켜야 함도 시사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유진 썬더 휴즈'의 사진들이다. 전직 프로 권투 선수인 유진은 워싱턴DC의 고급 주택 지역에 위치한 낡은 건물에서 휠체어에 앉아 소외 계층 아이들을 훈련시켰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년간 유진은 자신의 건물을 높은 가격에 구입하기를 희망하는 개발업자들의 제안을 물리쳤다. 이유는 "내 새끼들을 계속 훈련시켜야 해"였다. 유진의 생전 모습을 담은 작가의 사진에는 그래서 입체감이 있다. 평면적인 사진에 이야기가 입혀지면서 입체감을 띠는 것이다. 작가는 소외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으며 그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호소한다.
작가가 다문화와 소수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성장 배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내가 자란 지역에는 백인들밖에 살지 않아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인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 속에서 소수자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히 갖게 됐다"며, "소외된 계층이나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문제들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알지 못함에서 오는 편견은 작가가 무겁게 다루는 주제 중 하나다. 그는 "다른 문화와 접점이 없으면 의도하지 않아도 인종차별주의적인 생각을 갖기 쉽다"고 말했다. 다른 피부색, 다른 종교의 신자를 아예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알지 못함에서 오는 편견과 오해가 있다는 것. 그는 그런 오해가 대중매체를 통해 대체로 부정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비슷한 것 같다. 단일민족으로서 오랫동안 다른 문화에 노출된 적이 없기 때문에 타 문화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또, 단일민족이란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때로는 그 자부심이 혼혈을 격하시키는 건 아닌지 우려도 든다."
그가 1년 반 동안 작업한 'WHEELZ UP'은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벗긴 가장 대표적인 영상 프로젝트다. 워싱턴DC 교외에 사는 가난한 흑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왜 도심의 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모는지, 뉴스 기사에 적힌 대로 정말 오토바이를 훔치고 마약을 사고파는 무법자들인지, 그들의 관점에서 쓰인 기사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작가는 직접 연락을 취했고, 그렇게 WHEELZ UP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그는 "교외의 흑인들이 워싱턴DC 도심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이유는 바로 차별적 행정에 대한 저항 때문이다.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교외에서의 오토바이 폭주는 방치하면서 부유층이 사는 도심에서의 폭주는 경찰이나 정부가 막는다"며, "WHEELZ UP은 그러한 차별에 저항하는 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다. 영상을 보고 오해를 풀게 됐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포토저널리스트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작가는 피사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사용하는 렌즈도 단렌즈만을 고집한다. 그는 "단렌즈로 사진을 찍으려면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러면 의도치 않아도 대상과 나 사이에서 어떤 교감이 이뤄진다.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며, "그렇게 찍은 사진과 독자 사이엔 긴밀한 대화나 소통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얻을까? 그는 "다른 예술가나 사진작가로부터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발견해 그것을 따라하는 사이 창작이 시작된다는 것. 좋아하는 작가로는 'Alec soth'와 'Lynsey addario' 등을 꼽았다.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도 눈길을 끌었다. 작가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에서 교환 학생으로, 2010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 총 4년을 한국에서 머물렀으며,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만난 박종우 교수는 그의 사진 인생에서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다. "사진에 관심이 있다고 했더니 장비도 추천해 주고,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전까지는 가벼운 취미 정도였지만, 박종우 교수와 만난 뒤로 진지한 사진을 찍게 됐다." 작가는 사진전 시작을 알리는 커팅식에서도 "사진을 배운 나라에서 사진전을 열게 돼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제레미 믹은 미국 사진작가이자 비디오작가로서, 현재 캄보디아 프놈펜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소외 공동체와 인간사에 관한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 내셔널 지오그래픽, 엘르 매거진, VICE, 아틀란틱 City Lab 등의 세계 유수의 매체에 작품을 싣고 있는 실력 있는 사진작가다. 이번 미국의 얼굴전은 8월 7일부터 19일까지 팔복예술공장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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