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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 | 특집 [오래된 오늘]
조상들의 멋과 풍류, 부채 속에서 되살아나다
부채 이야기
이동혁(2019-07-17 10:12:51)



여름을 나는 전통 기물로 부채만한 것이 또 있을까. 그중에서도 합죽선은 멋과 풍류의 상징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마치 몸의 일부인양 언제 어딜 가든 지니고 다니던 것이었다. 사대부들은 음의 기운을 가진 대나무와 한지로 만들어진 합죽선을 첩이라 부르며 여인처럼 다루었고, 해서 남에게 빌려주지도, 후대에 물려주지도 않고 사후엔 고인과 함께 묻어 주었다고 한다.


합죽선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접선은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존재해 왔으며,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선 이를 '고려인들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니는데 접었다 폈다 하는 신기한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합죽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부터로, 그 화려함은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영조, 정조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합죽선 유물들은 대개 이 시대, 혹은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대나무 겉껍질을 얇게 켜 두 겹으로 붙인 뒤 한지를 접어 발라 완성하는 합죽선은 만드는 방식 또한 우리 고유의 것이었지만, 가장 특별한 점은 손잡이 부분의 곡선이었다. 손에 꼭 쥐어지는 곡선의 섬세함이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감각을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토록 화려한 멋을 자랑하던 합죽선도 일제의 침략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선비들의 애장품으로서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의 얼을 품게 된 합죽선을 일제는 당연히 마땅찮아 했고, 민족문화말살정책을 진행함과 동시에 값싼 일본 부채를 대량으로 들여와 화려했던 합죽선의 맥을 끊어 버렸다. 물론 그 시절에도 합죽선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부채가 작고 왜소해졌으며 모양새 또한 볼품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엄재수 선자장은 옛 선자장들의 유품과 고문서에 기록돼 있는 부채에 관한 구절들을 하나씩 살피며 일제 강점기 이후 사라진 옛 합죽선의 모습을 재현해 내고자 애쓰고 있다. 대륜선, 칠접선, 백접선, 대모선, 우각선 등 지금껏 그의 손을 거쳐 다시 세상 빛을 본 합죽선의 종류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전통의 틀 안에서 사용자와 긴밀히 소통하며 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엄 선자장. 그에게 전통은 누적이며, 발전이다. 고인 물이 이내 썩고 말 듯이 전통에도 흐름은 필요하다. 그가 부치는 새로운 전통의 바람이 또 다른 전통의 밑거름이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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