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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0 | 특집 [특집]
문예진흥기금 이렇게 쓰여야 한다.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운용의 모색
곽병창(2004-01-29 16:13:09)


Ⅰ 엄밀히 말해서 예술가는 불행하다. 그들은 거의 모든 시대를 통해 자신의 일이 곧 재화의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노동에 종사해 왔다. 비단 그런 측면에서만이 아니라도 예술가의 영혼은 당대를 규정짓는 여러 가지 모순과 불합리함에 노출되어 있는 까닭에 늘 안락하지 못한 삶을 견뎌 나간다. 어떤 이는 말한다. “예술가에게는 가난이 특권이다. 가난을 벗어 던졌을 때 예술가로서의 반짝이는 창의력은 시든다. 운운ㅡ”. 물론 들을 가치가 있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낡은 사고 방식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시대는 가야 한다. 그것이 예술을 건강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가난을 면할 것인가? 가장 어려운 지경에 있는 연극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무엇보다도 떳떳하고 좋은 방법은 연극 작품을 통한 입장료 수입을 올리는 일이다. 이를테면 상업적 가치가 있는 연극을 부단히 만들어서 시장(?)에 내어놓는 일이다. 그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관객의 관극 의욕을 충분히 고취할 만한 내용으로 짜여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 작품을 이루는 요소는 여러 갈래로 지적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배우이다.(현대극에서 text나 무대를 없애 버리는 일은 많지만 아직껏 배우 없이 하는 연극은 없다.) 그러나 지방극단의 현실에서 좋은 배우를 확보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확보가 아니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해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연극예술을 정말로 진흥하는 일은 결국 배우를 얻고 키우고 유지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문예진흥기금의 조성은 물론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필요한 당면사업에 비해 그 액수가 다소 모자란다는 느낌이다. 배우를 키우는 일에는 엄청난 돈이 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Ⅱ 하지만 30억원은 작은 돈이 아니다. 지혜를 모아 잘 쓴다면 침체된 지역문화를 살리는 첫걸음에 충분한 바탕은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몇 가지 생각을 내 놓는다.
첫째, 연극학교의 설립이다. 이것은 길게 보면 대학에 학과를 신설하거나 예술전문학교 정도를 세우는 일로 이어져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정례화된 연극학교 개설이 적합할 것이다. 이 학교는 매년 상․하반기 또는 여름․겨울 등으로 나누어 두 차례 정도를 마련해서 분기별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게 한다. 매 분기마다 4~8주 정도의 기간으로 극작․연기․연출․제작 등의 과목을 강의하며 강사진은 해당분야의 전공자로 한다. 당장 구성한다 해도 도내의 각 극단에 소속되어 있는 단원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수강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이 지역에 전문 연극인들이 뿌리를 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둘째, 창작 지원금 제도의 운용이다. 이 방법은 중앙이 문예진흥원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으므로, 그 지원절차와 규정 등에 좀 더 세심한 보완을 해서 운용하면 될 것이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명실공히 창작에 대한 지원이 되기 위해서 초연 및 자제 창작 희곡에 대한 지원을 더욱 비중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수석 단원에 대한 수당 지급이다. 이는 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각 극단 중에서 공연 실적 등을 감안해 수석단원을 선발하고 연극인 수당 등의 명목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방법이다. 수석 단원이라 했지만 극단 별로 2-3인 정도의 숫자로 늘려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런 방법은 자칫하면 운용상의 문제점을 노출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희곡상 제정해서 운용하는 일이다. 얼핏 문자화된(Literal)대본을 경시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희곡은 연극에서 기분이 되는 막중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내에는 전문적으로 희곡을 쓰는 작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지역 출신이 문인으로 희곡 창작에도 많은 관심과 역량을 보였던 채만식이나 20여년 동안 도내의 연극을 이끌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던 박동화 등을 기념하는 의미도 곁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제도는 물론 도내의 작가를 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지만 심사위원의 위촉 등에는 역시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또한 당선된 작품이 경우 충분한 지원금을 주어 도내의 극단으로 하여금 공연하게 하는 등의 특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다섯째, 바로 숙원사업이라고 할 종합예술회관의 건립이다. 이 문제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부지의 선정과 설계 등의 과정에 현장 예술가들이 참여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행사를 위한 회관의 기능을 겸하게 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훌륭한 시설의 대․중․소극장을 갖추고도 대관료나 대관절차가 현실적이지 못한 경우도 예상할 수 있으므로 이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연극 학회의 조직을 지원하는 일이다. 도내에서 이루어지는 공연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연극 경향을 소개하고 비평하며 정리해 내는 기증을 수행할 학회의 결성은 바람직한 연극문화의 정착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랄 수 있다. 도내 각 대학에 있는 연극․희곡 전공 교수들과 대학원생 등이 참여해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벌이고 그 성과를 정기적으로 발표할 학회지를 내고 하는 일에도 충분한 후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Ⅲ 넉넉하지 못한 돈으로 다소 실현 불가능한 일에 대한 언급도 없진 않았겠지만, 이 정도의 사업이어야 진정한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몇 자 적었다. 무엇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일을 계획, 추진하는 과정이 공개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담당해서 처리해 나가는 주체들이 편견 없는 태도로, 따뜻한 애정을 갖고 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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