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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1 | 특집
전주의 문화거리 , 그 가능성과 과제
김재식 전북대 교수·조경학과 외(2004-02-12 13:15:51)

도시를 새롭게 하자는 운동이 지방정부와 시민들 모두에게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주시의 문화거리를 둘러싼 토론은 그것의 한 부분이다. 11월 문화저널 창간기념호의 특집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문화거리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인가, 지금 논의되고 있는 문화거리는 어디인가 하는 문제들이 짚어졌다.
도시조경에 대한 진지한 연구자인 전북대 김재식 교수의 글은 문화와 문명의 차이에 주목한 것이다. 두 번째 글은 보다 전주시의 문화거리 조성의 배경과 조건을 보다 실질적인 관점에서 취재한 리포트이며 세 번째 글은 문화거리를 둘러싼 현재까지의 토론을 정리한 것이다. 전주시는 문화거리의 조성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민의식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지만 그렇다고 정책이 안이한 태도로 문제를 바라보아서는 안될 일이다. 문화저널은 문화를 아끼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이 문제를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천년고도의 전통으로 내일의 문화도시를

글·김재식 전북대 교수·조경학과

도시란 그 도시에 거주하는 소년이 그곳을 걸으며 지날 때, 이제부터 전 인생을 어떻게 살기를 원하고있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경관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물을 뜻하는 것으로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과거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도시는 도시인들의 삶을 담아주는 그릇이라 볼 수 있으며, 이 그릇의 모양, 크기, 색깔, 기능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다. 도시경관 속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며, 도시인의 삶이라는 도시 사회적 현상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잔잔한 물위에 돌을 던지면 돌이 떨어지는 곳에서 파문이 생겨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떨어진 곳의 파문은 없어져도 주변의 파문은 점점 확산되어 나간다. 문화의 전파방식은 물의 파문처럼 종종 근원지에서 출발하여 주변부로 전래되어 가고 주변부의 문화는 결실을 맺어 영속되어 가나, 도리어 근원지에서는 이 문화가 소멸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의 문화를 유교문화로 일컫는다. 유교문화의 근원지는 중국이었으나 이를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 꽃이 피었다. 문화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전세계의 각 나라들은 독특한 고유문화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 문화가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체의 고유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때 고유성이란 타문화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스팽클러는 그의 문화관을 주장하고 있다.

문화도시 전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1차 산업사회인 농경사회시대에 호남제일의 문화도시 전주는 전구에 알려져 있었으며, 이 시기에 형성된 문화유산들만이 오늘 전주에 문화도시의 명맥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경기전, 풍남문, 객사, 전주향교, 오목대, 한벽루, 남고산성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문화유구들의 면면속에서 호남 제일의 도시 모습을 아직도 조명해 볼 수 있다. 산업의 형태가 수공업 중심일 때 형성된 전주의 한지공예 및 목공예의 기술은 현재의 문화상품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전통가구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는 전주장은 대개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닫이문이 이층에, 반닫이 문이 일층에 달린다. 목재는 무늬가 현란하며 재질이 매우 강한 느티나무(괴목)가 주로 쓰이고 있으며, 대장간에서 주문 제작되는 무쇠장식의 투박한 장식성이 어우러져 안방가구의 대표적 유산으로 꼽힌다.
또한 한국화의 여백에서 보이듯이 한국 전통의 외부공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마당이라는 공간에 나무를 심게 되면 그 집은 액운이나 곤궁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한자의 형태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마당의 형태의 한자는 ‘口’자와 비슷하며, 이곳에 나무(木)를 심는 것은 한자의 ‘곤(困)’자가 되며 그 뜻은 厄(Anxiety) 혹은 窮(Povert)이다. 마당에 나무를 심는다는 한자의 ‘곤(困)’자를 유추하면 햇볕이 드는 것을 막으며, 환기를 방해하며 나무들이 해충을 불러들이며, 나무가 쓰러질 위험이 있으며, 낙엽은 관리문제를 야기하며, 그리고 습기를 증가시킨다. 한국 전통건축의 외부공간인 마당은 바로 풍수에서의 혈(穴) 즉 명당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우리의 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았으며, 한국화의 여백처럼 텅빈 공간으로 족하였다. 이러한 텅빈 공간이 마당들이 삶의 여유공간으로 한국인들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마당들이 도시에서 사라져 가면서 도시인들은 삶의 여유를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마당은 포장 재료가 흙이다. 이것은 한국 전통건축의 특성이 흙냄새가 물씬 나는 것과의 조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주시에서 아직도 흙냄새가 나는 곳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의 한옥과 토담 그리고 골목길 등이다. 이러한 흙냄새가 사라지면 전주시의 문화경관은 소멸되는 것이다. 흙은 우리 건축의 방바닥에서, 벽에서, 천정에서 그리고 마당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쓰는 재료로 한국전통건축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의 흙마당이 얼마나 많이 콘크리트로 덮여가고 있는가? 흙마당이 가장 생태적인 환경의 이용임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 하며, 이 속에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흙은 콘크리트로 덮으면 콘크리트 밑에 있는 모든 유기물들은 죽어버려 달나라의 토끼처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여서 지하수의 고갈을 초래한다. 이처럼 현대도시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흙의 공간을 없애가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한국적 경관의 상실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자연경관에 반응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문화경관에 반응한다. 왜냐하면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환하는 경관의 변형은 자연적 변형과정과 매우 유사한 문화적 진화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문화경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많은 것들은 지방색(vernacular)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대부분의 사적도시(史蹟都市)들은 현대인들이 보기에도 괄목할만한 장소성을 지닌 지역적 환경들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열거한 전주시의 모든 문화요소는 가장 전주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시 전역에서 은근하게 표출되어야 하며, 도시의 한 부분에 새롭게 단장하는 부분적인 거리들로는 전주시를 문화도시로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전주시가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도시경관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전주시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정밀한 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들 문화경관적 요소들을 총망라한 문화경관지도의 작성이 시급하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가구가 어느새 서구가구에 의해 밀려나 골동품으로 탈바꿈하였듯이 현재의 전주시 도시개발전략으로는 전주의 문화경관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제 미래의 전주시가 문화도시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도시는 시민들의 문화수준에 의거해 주로 형성되어 가는 것이지 설계가 및 행정당국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전주에 이어지고 있는 건물들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필자가 전주시의 건물들을 한옥형태로 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전주시민들이 구사하는 구수한 사투리처럼 건물들의 형태, 색, 재료, 기법 등에서 사투리 냄새가 나는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될 때 문화도시로서의 전주시 경관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만들려는 문화도시로서의 전주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려면 시 당국의 문화경관 보존 및 복원계획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후 새로운 문화거리를 조성하면서 앞의 문화경관 보존 및 복원계획에 걸맞는 문화경관적 거리들을 조성하여야 한다. 문화도시 전주의 미래는 과거부터 전승되어 오는 문화요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들의 창출과 이들 전승문화요소의 현대화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본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전주시의 모습이 우리의 문화수준임을 인정하면서 이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 지방색이 반영된 전주문화로 평가될 수 있는가를 점검하는 작업이 우리가 제일 먼저 시행하여야할 과제인 것이다. 문화란 문명과는 달리 외연적이기보다는 내포적이고, 물질적이기보다는 정신적이며 문명은 소멸될 수 있으나 문화는 영구하므로 미래의 전주시가 문명도시가 되기보다는 문화도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재식 / 연세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조경기획 및 설계를 전공했다. 도시 조경을 연구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지 시대속에 전주의 자존심 생각한다

글·원도연 문화저널 편집장

‘지속가능한 도시’, ‘이미지’, ‘녹색도시’, 전통도시‘ 등의 개념이 각광받고 있다. 성장과 발전만을 상징했던 한국의 도시는 이제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되고 있다. 도시는 합리성의 상징이었고, 특히나 급속한 산업화를 겪어왔던 한국의 도시는 획일화되었다.
그러나 도시는 이제 굴뚝으로 상징되는 산업적 성공의 무대가 아닌 도시의 전통과 특성을 부각시키는 이미지 건설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삶의 질’ 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시는 새로운 의미에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전주를 어떤 도시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각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주를 새롭게 한다는 것의 의미는 곧 전주의 상징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도시의 상징을 세운다는 것은 단순한 기호적 표상이 아니라, 그 도시의 역사성 또는 전통성과 더불어 생활 속의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터다란 테두리에서 본다면 전주의 거리이름을 바꾸거나 모악산을 살리자는 시민운동이나, 지방정부가 남발하다시피 하는 각종 지역 이벤트도 역시 하나의 도시적 상징을 만들어가는 작업들이다. 그 속에서도 도시적 상징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문화의 거리를 만들겠다는 지방자치단체의 발상이다. 전주의 도심에 천년고도의 정취를 담은 문화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전주의 오랜 염원이었다.
전주시의 도시계획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일제시대였던 1938년의 일이었다. 당시 일제는 전주에 근대적인 도시계획을 확장하면서 전주속에 남아있던 천년고도의 흔적들을 차례차례 밀어냈다.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고 도시 전체에 일식건축들이 주를 이루면서, 전주가 지닌 정통성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해방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되던 1966년 전주시 도시계획 재정비계획이 고시되면서 전주는 지금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발의 시대에 도시를 지배한 정신은 서구화와 합리성이었다. 일제시대에 상당한 훼손을 겪기는 했지만 아직은 천년고도의 정취를 담고 있었던 관아건물들과 한옥들이 소리없이 사라졌고, 도심내의 녹지공간은 일제히 상업지구와 주거지역으로 전환되었다. 전북대 장명수 교수(전북대 총장)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의 성원오피스텔 자리에 있었던 소화(소화)공원이 66년 폐지되었고, 1943년 계획되었던 한벽당에서 다가동 그리고 매곡교에서 완산칠봉까지의 도로를 연한 도로공원 역시66년 폐지되는 불운을 겪었다. 장명수 총장이 그의 책에서 한탄하듯이 전주 관아와 낡았지만 격조있던 한옥들을 집중적으로 보존할 수 있었다면, 도는 지금의 극장거리가 애초 계획대로 녹지공간으로 조성되었다면, 그리고 한벽당에서 교동둑으로 이어지는 도로공원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면 전주의 도시적 이미지는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사라져버린 전주의 전통적 이미지들은 기묘하게도 21세기를 앞둔 첨단과학의 시대에 다시 활기차게 부활하고 있다. 전주의 이미지와 상징을 전통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에 누구도 토를 달리 못한다. 앞으로의 전주를, 이미지를 만들고 강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는 전북대 윤덕향 교수(고고인류학과)의 말이나 미래지향적으로 도시를 보아야 한다는 국립전주박물관 이종철 관장의 주장은 그래서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천년고도 전주의 현실은 지극히 실망스러운 것이다. 실망스러운 정도를 넘어서 천년고도의 자존심이 무색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하게 들린다. 문화재급으로 볼만한 유형적 시설물들은 경기전 등의 몇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고 불과 백여년전의 고풍스런 한옥 한채 변변치 않은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한때는 호남의부수였고 거슬러 올라가면 후백제의 도읍이었으며 조선팔도에 사람살기가 가장 좋았다는 이곳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농업사회의 중심으로서 당당한 위용을 자랑했던 전주가 농촌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산업의 중심이 공업으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도시적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도 타당하고, 정치적 억압과 지역적 차별이 가져온 도시적 황폐의 결과라른 사회락적 설명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말줄깨난 한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전주의 전통성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일까를 다시 물어야 한다. 어차피 인위적인 계획이란 어느 한 측면을 중시하고 다른 측면을 부수적으로 보는 정책적인 고려가 필요한 일이다. 전통의 시점을 어디에둘 것인가. 그리고 지금 새로 조성하고자 하는 문화거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전략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웃 광주는 전통예향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그 도시적 상징만은 ‘80년 광주’라는 현대사로부터 찾아 온갖 현대적인 시설물을 이미지화 시키는데 성공한 이색적인 사례로 꼽힌다. 서울 역시 천만 인구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고 할 수 있는 전통성을 정도 600년을 맞아 탄탄한 틀로 다시 조직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도시의 전통성은 유형적인 시설물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물론 가치있는 시설물에 대한 치밀한 보존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것이 억지에 가까워지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전라감영을 복원하고 객사를 다시 뜯어고치고 전주시의 옛 성벽을 다시 쌓아올리는 것이 곧 전주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한 도시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무형의 전통성을 되살리는 일이 더욱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주의 경우 백제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해 전통적인 농업지역의 중심에 자리잡은 까닭에 그 도시적 성격이 다분히 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외관을 중시하는 유형의 시설물보다는 무형적인 문화유산이 풍성하게 남겨져 있고 그것은 여전히 파괴되지 않은 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유의 전통성을 간직한 유형의 건축물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도 도시의 무형적인 분위기로 문화거리의 생명력을 유지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통성은 현대적인 삶의 리듬에 부분적으로 부응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그 곳을 찾았을 때 이질적이고 생소한 느낌이 아니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거리는 철저하게 보행자 중심의 공간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찾아오는 사람들과 장사하는 사람들의 호흡이 편안하게 맞아야 한다. 서울에서는 마침내 ‘걷고 싶은 서울만들기 운동본부까지 만들어졌다.
어쨌든 전주시는 지금 전주를 새롭게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문화예술과는 문화예술관광도시 종합개발 기본계획안을 내놓았고, 도시계획과는 도시를 계획해가면서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사고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주시의 도시계획 실무자가 밝히듯이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민간자율이라는 흐름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화거리 조성사업 역시 시민의식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문화거리를 만드는데 최대한으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자는 것이 지방정부의 의무이지만, 문화거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문화가 우러나는 생활 속의 문화거리
전주시 문화거리 권역별 점검

정리·편집부

문화의 거리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도시의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가 무엇으로 상징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먼저 검토될 필요가 있다. 역사성과 전통성은 도시를 상징하는 가장 확실한 조건이 되고, 그런 점에서 전주는 역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또한 앞으로 관광이나 문화욕구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 우선되어야 한다. 전통문화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상품화할 필요가 있고 그것들이 끈끈한 생명력으로 전통과 이어져 있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해야 한다. 가능하면 도로의 기능이 활발해야 하고 편리한 주차장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전주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즐겨찾지 않는 곳이 외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화거리일 수는 없다. 관광의 욕구는 이제 단순한 볼거리에서 생생할 삶이 묻어나는 형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문화거리의 개념은 좀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 세계화시대에 그것이 강요하는 규격에 맞추어진 서구화된 거리는 문화거리로서의 차별성을 갖기가 어렵다. 한 도시의 사람들이 길들여지고 전승되어온 삶의 고유한 방식이 재현되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문화의 거리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전주의 남부시장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문화의 거리가 될 수 있다. 여기서는 그 동안 전주에서 문화의 거리로 계속 부각되어 왔던 세 곳의 권역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먼저 그 지역의 특성을 보고 현재의 진행정도와 같이 문제점들도 같이 논의될 것이다.

천년고도의 자존심으로
〈경기전 일대〉

풍남문에서 오목대를 잇는 거리를 전통고도의 핵으로 삼아 부각시키자는 의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제기되어 왔다. 이목대와 오목대, 한벽당, 향교, 경기전, 한옥지구, 전동성당, 풍남문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놓고 보면 그 역사성이나 전통성의 측면에서 황금벨트가 형성되는 까닭이다.
전북대 윤덕향 교수(고고인류학과)는 이 지역이 조선조 전라도의 수부였던 전주성의 마지막 남은 성문인 남문이 있고, 경기전은 이태조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거슬러 올라가면 견훤과 관련된 유적지나 통일신라시대의 전주 모습까지도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현재의 한옥지구는 1930년대 일제하에서 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한 왜식건물들에 맞서 전통한옥을 짓고 모여 살면서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키고 살았을법한 저항의 정신과 선대의 민족적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한옥지구는 그 동안 대표적인 전주의 상징으로 꼽혀왔고, 그것이 이 지역에 대한 보존의 절대적인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한옥지구와 이어진 향교의 경우 전통적인 건축양식과 함께 유교문화의 본산으로서의 명맥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전주시에서도 이 지역을 주목하고 나름대로의 개발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행정적인 측면에서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은 한옥지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전체 8만 7평에 이르는 한옥보존지주는 77년에 보존지구로 공시되었고, 87년부터는 ‘한국 고유의 건축양식에 대한 보존이 필요하다’는 행정적인 판단에 따라 제 4종 미관지구라는 이름으로 묶여져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 지역이 보존지구로 묶인 외에 어떤 행정적인 지원이나 대책도 세워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그 동안 몇 차례 이 지역을 정밀실사한 전문가들의 의견인 한옥지구 내에 실제로 보존가치가 있는 한옥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방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주시로서는 더 이상 의미없는 규제에 발목잡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현재의 한옥보존지구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개발’을 시도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전주시가 현재 진행중인 이 지역의 개발 프로젝트에 붙인 이름은 ‘민속의 거리’조성사업이다. 일괄적인 규제는 풀되 가치있는 시설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도심의 건축물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에 근거한)을 두고 역사적인 지형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거리를 새롭게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전주시 도시계획에 이민섭 계장은 ‘궁극적으로는 자치시대에 걸맞는 시민의 자율성을 보장’ 한다는 측면에 의미를 부여했다. 결국 전주시가 계획하는 민속의 거리는 시민들이 어떤 입장에서 문제를 보느냐가 중요해진 셈이다. 궁극적으로 전주시의 ‘자율성’에 대한 입장은 일면 긍정적이지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 거리는 단지 계획적으로 조성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주의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유산들로 결집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화의 거리를 소망했던 많은 이들의 바램이다. 예컨대 조선조를 풍미했던 전주의 필방들이 이 곳에 모여들고,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있는 장인들이 이 곳에 한지방을 열어 전주의 솜씨를 자랑하고, 거리 곳곳에서 판소리 가락이라도 흘러나오게 한다면, 그리고 그런 문화가 가치있게 여겨지고 시민들이 그것을 가깝게 느끼면서 생활 속에서 실제로 활용한다면 이 곳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주시에서는 민속의 거리 조성사업에 대한 기초적인 작업 프로젝트를 이미 발주한 상태이고 그 용역결과는 11월 중순 나오게 된다. 전주시는 일단 전체 사업비로 11억 원을 책정했고 용역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전주시는 이 결과를 놓고 시민공청회를 열고 시민적 합의를 수렴하여 개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물관의 개념을 바꿔라
생활문화의 현장으로

국립전주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효자동 지역은 전주시가 도시확장을 거듭하면서 도시계획에 있어서 급부상하고 있는 곳이다. 주로 야산과 농지로 구성되어 있고 민가가 적으로 유흥시설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또한 도로는 전주 도심에서 금구를 잇는 단선방향 의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특정한 시설물을 중심으로 한 전통성이나 역사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박물관이라는 대표적인 역사 시설이 중심축이 될 수 있다.
지난 10월 국립전주박물관에 대한 국정감사의 질의과정에서 박물관 측은 바로 이 문제를 부각시켰다. 전통예술의 대표적인 고장인 전주의 박물관 주변을 계획적으로 조정하여 문황술과 체육공간의 기능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박물관 앞 3천여 평의 부지를 문화시설지구로 지정하고 청소년들의 건전한 놀이문화공간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적극적인 방안이 제시된 셈이다.
박물관측은 국정감사에서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있는 이 지역을 문화시설지구로 지정하기 위해서 예산 30억 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전북도와 전주시 및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건의하였으며, 국회와 정부도 상당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물관의 이종철 관장은 도시팽창에 따른 권역개발은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의 문화가 시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문화거리를 조성한다고 할 때 누구를 위한 문화인가가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기획의 중심은 ‘생활문화’에 대한 것이고 그 구체적인 방향은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간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이 보여주었던 서구지향적인 양상을 탈피하면서 전통 마당놀이나 판소리 공연장, 조각공원, 문화예술 전문도서관 등이 곳곳에 배치되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취향까지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지 모른다. 또한 휴일이나 주말 가족과 함께 이 곳을 찾아 간단한 운동을 즐기고 전통 공연을 보면서 활력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생활문화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박물관은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살아 숨쉬는 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요컨대 박물관이 골동품 전시장으로서가 아니라 도시의 문화센터가 되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인식이 깔려있는 치밀한 기획인 셈이다.
“결국 문화는 시민의식의 문제라고 본다”는 이종철 관장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시사적이다. 전체적으로 강요되지 않는 문화적 마인드가 시민들 속에서 형성되면서 문화적 밑거름이 탄탄해질 때 지역문화는 번성할 수 있고, 문화거리는 그 같은 과정을 매개하는 중요한 정책이 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
〈덕진공원에서 동물원까지〉

덕진공원에서 동물원에 이르는 권역은 지금 전주시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어있는 지역이다. 대학로 개설문제로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고, 예술회관 부지 문제가 몇 년째 표류하고 있으며, 문화거리에 대한 토론이 벌어질 때마다 빠짐없이 회자되는 지역이다. 그 만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가능성과 문제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곳인 것이다.
이 곳은 역사성과 접근성, 기존 시설과의 관계성 등 모든 측면에서 대단히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95년 전북경제사회연구원에서 예술회관 부지문제를 놓고 정책과제로 설정하여 발표한 연구에 의해서 이 지역은 예술회관의 최적지로 꼽혔고, 전북도에서도 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관광개발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전주시를 대표하는 덕진공원이 넉넉하고, 이씨 왕조의 시조 묘역이 있는 조경단, 전북의 전통음악을 대변하는 도립국악원, 어린이 회관과 체련공원이 잇달아 연결되어 있으며 그 끝에는 시민위락시설은 동물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전북대가 짓고 있는 삼성문화회관 야외공연장 그리고 전북도의 예술회관이 들어설 경우 전주시의 공연문화가 완전히 이곳으로 중심을 이동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들이다.
이 곳을 문화벨트로 묶어 개발한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체련공원과 동물원 등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생활문화의 기능을 담담하면서도 전통도시로서의 면모를 가꾸어 본격적인 관광산업을 기획해 볼 수도 있다.
백제고분이 남겨져 있는 가련산을 조성하고 도립국악원과 조경단을 묶어 전통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고, 덕진연못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벤트를 개발하여 호반축제는 조직해 볼 수도 있다. 경기전 주변이 고도의 정취를 간직한 정적인 이미지라면 이 곳은 문화와 관광이 일치되는 동적인 문화거리로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전주시에서 발주한 문화예술관광도시 종합개발계획안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고 있다. 덕진공원 입구에서 연화마을까지의 1.2km 거리를 미술의 거리로 개발하고 가련산은 특정 주제를 부여하여 플라워 파크를 조성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술의 거리에는 갖가지 문화예술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이 거리의 앞뒤로는 도립국악원과 동물원으로 이어지는 관광루트를 만들어 문화예술행사를 활성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다. 이 지역을 관광단지화 할 경우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이미지는 전주의 전통성이라는 것이다. 문화예술공간이 집중되면서 전국에서 모여들 예술인들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유서깊은 주변시설들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전주만의 특산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 전주비빔밥 한그릇이라도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 전통음식점을 만들고 그것이 또다른 문화관광의 유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주시 예총 문치상 회장의 주장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지적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연계개발에는 뜻밖의 변수들도 숨어있다. 구 도지사 공간인 예술회관 분관의 용도변경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문화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되돌려졌다가 다시 민선 지방정부의 권위적 상징물이 되어버린 예술회관 분관은 개방 당시의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벨트내에 권위적인 시설물의 존재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여전한 여론이다.
덕진종합회관의 문제도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덕진종합회관이 중요한 위치에서 오히려 전주의 특성을 훼손한다고 보고 있다. 수용의 한계를 넘어서서 옹색한 살림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는 도립국악원의 활기에 비교해 보면, 그 바로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는 덕진종합회관의 존재는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모른다. 냉전시대의 유물인 덕진종합회관이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지방정부는 응답해야 한다. 그 공간은 어떤 형태로든 전면적인 보수가 필요하고 시설의 용도에 대해서도 완전히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인터뷰/김기천 전주시 도시국장

적극적인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전주의 역사로부터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2천년대의 도시는 우리 것으로 돌아가는 도시계획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시민의식의 성장과 함께 도시계획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주시 김기천 도시국장은 “도시는 역사의 보고”라는 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전주시의 도시계획에만 20여 년 가까운 세월을 쌓아온 그는 전주는 환경과 역사에 기반한 특성화된 도시의 장점을 두루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 전주시 도시계획의 기본 방향은.
도시계획은 보존과 재현이라는 두 가지 축을 기본으로 한다. 지형을 고려하고 면을 중시하며 역사적인 시설물을 활용해야 한다. 민속의 거리의 경우 획일적인 보존보다는 새롭게 조성한다는 측면이 필요하고, 그것은 한옥보존지구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적극적인 개발’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역사적인 지형을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민속의 거리를 조성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도시미관의 문제만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이벤트를 효과적으로 결합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있는 시설물들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존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규제를 풀었을 경우 의미있는 보존마저도 어려워질 수 있다.
앞으로의 도시계획에는 시민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당지역 시민들의 불이익을 덜어주고 최소한의 면적에 최소한의 계획으로 자연스러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전주시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시민들의 생활과 풍습이 도시의 역사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해야 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도록 해야 한다.

도시를 새롭게 하자는 운동이 지방정부와 시민들 모두에게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주시의 문화거리를 둘러싼 토론은 그것의 한 부분이다. 11월 문화저널 창간기념호의 특집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문화거리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인가, 지금 논의되고 있는 문화거리는 어디인가 하는 문제들이 짚어졌다.
도시조경에 대한 진지한 연구자인 전북대 김재식 교수의 글은 문화와 문명의 차이에 주목한 것이다. 두 번째 글은 보다 전주시의 문화거리 조성의 배경과 조건을 보다 실질적인 관점에서 취재한 리포트이며 세 번째 글은 문화거리를 둘러싼 현재까지의 토론을 정리한 것이다. 전주시는 문화거리의 조성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민의식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지만 그렇다고 정책이 안이한 태도로 문제를 바라보아서는 안될 일이다. 문화저널은 문화를 아끼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이 문제를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천년고도의 전통으로 내일의 문화도시를

글·김재식 전북대 교수·조경학과

도시란 그 도시에 거주하는 소년이 그곳을 걸으며 지날 때, 이제부터 전 인생을 어떻게 살기를 원하고있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경관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물을 뜻하는 것으로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과거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도시는 도시인들의 삶을 담아주는 그릇이라 볼 수 있으며, 이 그릇의 모양, 크기, 색깔, 기능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다. 도시경관 속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며, 도시인의 삶이라는 도시 사회적 현상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잔잔한 물위에 돌을 던지면 돌이 떨어지는 곳에서 파문이 생겨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떨어진 곳의 파문은 없어져도 주변의 파문은 점점 확산되어 나간다. 문화의 전파방식은 물의 파문처럼 종종 근원지에서 출발하여 주변부로 전래되어 가고 주변부의 문화는 결실을 맺어 영속되어 가나, 도리어 근원지에서는 이 문화가 소멸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의 문화를 유교문화로 일컫는다. 유교문화의 근원지는 중국이었으나 이를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 꽃이 피었다. 문화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전세계의 각 나라들은 독특한 고유문화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 문화가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체의 고유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때 고유성이란 타문화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스팽클러는 그의 문화관을 주장하고 있다.

문화도시 전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1차 산업사회인 농경사회시대에 호남제일의 문화도시 전주는 전구에 알려져 있었으며, 이 시기에 형성된 문화유산들만이 오늘 전주에 문화도시의 명맥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경기전, 풍남문, 객사, 전주향교, 오목대, 한벽루, 남고산성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문화유구들의 면면속에서 호남 제일의 도시 모습을 아직도 조명해 볼 수 있다. 산업의 형태가 수공업 중심일 때 형성된 전주의 한지공예 및 목공예의 기술은 현재의 문화상품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전통가구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는 전주장은 대개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닫이문이 이층에, 반닫이 문이 일층에 달린다. 목재는 무늬가 현란하며 재질이 매우 강한 느티나무(괴목)가 주로 쓰이고 있으며, 대장간에서 주문 제작되는 무쇠장식의 투박한 장식성이 어우러져 안방가구의 대표적 유산으로 꼽힌다.
또한 한국화의 여백에서 보이듯이 한국 전통의 외부공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마당이라는 공간에 나무를 심게 되면 그 집은 액운이나 곤궁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한자의 형태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마당의 형태의 한자는 ‘口’자와 비슷하며, 이곳에 나무(木)를 심는 것은 한자의 ‘곤(困)’자가 되며 그 뜻은 厄(Anxiety) 혹은 窮(Povert)이다. 마당에 나무를 심는다는 한자의 ‘곤(困)’자를 유추하면 햇볕이 드는 것을 막으며, 환기를 방해하며 나무들이 해충을 불러들이며, 나무가 쓰러질 위험이 있으며, 낙엽은 관리문제를 야기하며, 그리고 습기를 증가시킨다. 한국 전통건축의 외부공간인 마당은 바로 풍수에서의 혈(穴) 즉 명당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우리의 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았으며, 한국화의 여백처럼 텅빈 공간으로 족하였다. 이러한 텅빈 공간이 마당들이 삶의 여유공간으로 한국인들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마당들이 도시에서 사라져 가면서 도시인들은 삶의 여유를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마당은 포장 재료가 흙이다. 이것은 한국 전통건축의 특성이 흙냄새가 물씬 나는 것과의 조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주시에서 아직도 흙냄새가 나는 곳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의 한옥과 토담 그리고 골목길 등이다. 이러한 흙냄새가 사라지면 전주시의 문화경관은 소멸되는 것이다. 흙은 우리 건축의 방바닥에서, 벽에서, 천정에서 그리고 마당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쓰는 재료로 한국전통건축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의 흙마당이 얼마나 많이 콘크리트로 덮여가고 있는가? 흙마당이 가장 생태적인 환경의 이용임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 하며, 이 속에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흙은 콘크리트로 덮으면 콘크리트 밑에 있는 모든 유기물들은 죽어버려 달나라의 토끼처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여서 지하수의 고갈을 초래한다. 이처럼 현대도시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흙의 공간을 없애가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한국적 경관의 상실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자연경관에 반응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문화경관에 반응한다. 왜냐하면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환하는 경관의 변형은 자연적 변형과정과 매우 유사한 문화적 진화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문화경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많은 것들은 지방색(vernacular)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대부분의 사적도시(史蹟都市)들은 현대인들이 보기에도 괄목할만한 장소성을 지닌 지역적 환경들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열거한 전주시의 모든 문화요소는 가장 전주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시 전역에서 은근하게 표출되어야 하며, 도시의 한 부분에 새롭게 단장하는 부분적인 거리들로는 전주시를 문화도시로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전주시가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도시경관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전주시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정밀한 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들 문화경관적 요소들을 총망라한 문화경관지도의 작성이 시급하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가구가 어느새 서구가구에 의해 밀려나 골동품으로 탈바꿈하였듯이 현재의 전주시 도시개발전략으로는 전주의 문화경관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제 미래의 전주시가 문화도시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도시는 시민들의 문화수준에 의거해 주로 형성되어 가는 것이지 설계가 및 행정당국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전주에 이어지고 있는 건물들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필자가 전주시의 건물들을 한옥형태로 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전주시민들이 구사하는 구수한 사투리처럼 건물들의 형태, 색, 재료, 기법 등에서 사투리 냄새가 나는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될 때 문화도시로서의 전주시 경관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만들려는 문화도시로서의 전주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려면 시 당국의 문화경관 보존 및 복원계획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후 새로운 문화거리를 조성하면서 앞의 문화경관 보존 및 복원계획에 걸맞는 문화경관적 거리들을 조성하여야 한다. 문화도시 전주의 미래는 과거부터 전승되어 오는 문화요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들의 창출과 이들 전승문화요소의 현대화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본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전주시의 모습이 우리의 문화수준임을 인정하면서 이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 지방색이 반영된 전주문화로 평가될 수 있는가를 점검하는 작업이 우리가 제일 먼저 시행하여야할 과제인 것이다. 문화란 문명과는 달리 외연적이기보다는 내포적이고, 물질적이기보다는 정신적이며 문명은 소멸될 수 있으나 문화는 영구하므로 미래의 전주시가 문명도시가 되기보다는 문화도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재식 / 연세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조경기획 및 설계를 전공했다. 도시 조경을 연구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지 시대속에 전주의 자존심 생각한다

글·원도연 문화저널 편집장

‘지속가능한 도시’, ‘이미지’, ‘녹색도시’, 전통도시‘ 등의 개념이 각광받고 있다. 성장과 발전만을 상징했던 한국의 도시는 이제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되고 있다. 도시는 합리성의 상징이었고, 특히나 급속한 산업화를 겪어왔던 한국의 도시는 획일화되었다.
그러나 도시는 이제 굴뚝으로 상징되는 산업적 성공의 무대가 아닌 도시의 전통과 특성을 부각시키는 이미지 건설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삶의 질’ 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시는 새로운 의미에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전주를 어떤 도시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각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주를 새롭게 한다는 것의 의미는 곧 전주의 상징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도시의 상징을 세운다는 것은 단순한 기호적 표상이 아니라, 그 도시의 역사성 또는 전통성과 더불어 생활 속의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터다란 테두리에서 본다면 전주의 거리이름을 바꾸거나 모악산을 살리자는 시민운동이나, 지방정부가 남발하다시피 하는 각종 지역 이벤트도 역시 하나의 도시적 상징을 만들어가는 작업들이다. 그 속에서도 도시적 상징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문화의 거리를 만들겠다는 지방자치단체의 발상이다. 전주의 도심에 천년고도의 정취를 담은 문화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전주의 오랜 염원이었다.
전주시의 도시계획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일제시대였던 1938년의 일이었다. 당시 일제는 전주에 근대적인 도시계획을 확장하면서 전주속에 남아있던 천년고도의 흔적들을 차례차례 밀어냈다.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고 도시 전체에 일식건축들이 주를 이루면서, 전주가 지닌 정통성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해방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되던 1966년 전주시 도시계획 재정비계획이 고시되면서 전주는 지금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발의 시대에 도시를 지배한 정신은 서구화와 합리성이었다. 일제시대에 상당한 훼손을 겪기는 했지만 아직은 천년고도의 정취를 담고 있었던 관아건물들과 한옥들이 소리없이 사라졌고, 도심내의 녹지공간은 일제히 상업지구와 주거지역으로 전환되었다. 전북대 장명수 교수(전북대 총장)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의 성원오피스텔 자리에 있었던 소화(소화)공원이 66년 폐지되었고, 1943년 계획되었던 한벽당에서 다가동 그리고 매곡교에서 완산칠봉까지의 도로를 연한 도로공원 역시66년 폐지되는 불운을 겪었다. 장명수 총장이 그의 책에서 한탄하듯이 전주 관아와 낡았지만 격조있던 한옥들을 집중적으로 보존할 수 있었다면, 도는 지금의 극장거리가 애초 계획대로 녹지공간으로 조성되었다면, 그리고 한벽당에서 교동둑으로 이어지는 도로공원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면 전주의 도시적 이미지는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사라져버린 전주의 전통적 이미지들은 기묘하게도 21세기를 앞둔 첨단과학의 시대에 다시 활기차게 부활하고 있다. 전주의 이미지와 상징을 전통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에 누구도 토를 달리 못한다. 앞으로의 전주를, 이미지를 만들고 강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는 전북대 윤덕향 교수(고고인류학과)의 말이나 미래지향적으로 도시를 보아야 한다는 국립전주박물관 이종철 관장의 주장은 그래서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천년고도 전주의 현실은 지극히 실망스러운 것이다. 실망스러운 정도를 넘어서 천년고도의 자존심이 무색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하게 들린다. 문화재급으로 볼만한 유형적 시설물들은 경기전 등의 몇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고 불과 백여년전의 고풍스런 한옥 한채 변변치 않은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한때는 호남의부수였고 거슬러 올라가면 후백제의 도읍이었으며 조선팔도에 사람살기가 가장 좋았다는 이곳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농업사회의 중심으로서 당당한 위용을 자랑했던 전주가 농촌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산업의 중심이 공업으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도시적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도 타당하고, 정치적 억압과 지역적 차별이 가져온 도시적 황폐의 결과라른 사회락적 설명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말줄깨난 한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전주의 전통성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일까를 다시 물어야 한다. 어차피 인위적인 계획이란 어느 한 측면을 중시하고 다른 측면을 부수적으로 보는 정책적인 고려가 필요한 일이다. 전통의 시점을 어디에둘 것인가. 그리고 지금 새로 조성하고자 하는 문화거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전략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웃 광주는 전통예향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그 도시적 상징만은 ‘80년 광주’라는 현대사로부터 찾아 온갖 현대적인 시설물을 이미지화 시키는데 성공한 이색적인 사례로 꼽힌다. 서울 역시 천만 인구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고 할 수 있는 전통성을 정도 600년을 맞아 탄탄한 틀로 다시 조직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도시의 전통성은 유형적인 시설물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물론 가치있는 시설물에 대한 치밀한 보존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것이 억지에 가까워지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전라감영을 복원하고 객사를 다시 뜯어고치고 전주시의 옛 성벽을 다시 쌓아올리는 것이 곧 전주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한 도시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무형의 전통성을 되살리는 일이 더욱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주의 경우 백제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해 전통적인 농업지역의 중심에 자리잡은 까닭에 그 도시적 성격이 다분히 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외관을 중시하는 유형의 시설물보다는 무형적인 문화유산이 풍성하게 남겨져 있고 그것은 여전히 파괴되지 않은 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유의 전통성을 간직한 유형의 건축물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도 도시의 무형적인 분위기로 문화거리의 생명력을 유지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통성은 현대적인 삶의 리듬에 부분적으로 부응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그 곳을 찾았을 때 이질적이고 생소한 느낌이 아니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거리는 철저하게 보행자 중심의 공간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찾아오는 사람들과 장사하는 사람들의 호흡이 편안하게 맞아야 한다. 서울에서는 마침내 ‘걷고 싶은 서울만들기 운동본부까지 만들어졌다.
어쨌든 전주시는 지금 전주를 새롭게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문화예술과는 문화예술관광도시 종합개발 기본계획안을 내놓았고, 도시계획과는 도시를 계획해가면서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사고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주시의 도시계획 실무자가 밝히듯이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민간자율이라는 흐름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화거리 조성사업 역시 시민의식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문화거리를 만드는데 최대한으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자는 것이 지방정부의 의무이지만, 문화거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문화가 우러나는 생활 속의 문화거리
전주시 문화거리 권역별 점검

정리·편집부

문화의 거리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도시의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가 무엇으로 상징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먼저 검토될 필요가 있다. 역사성과 전통성은 도시를 상징하는 가장 확실한 조건이 되고, 그런 점에서 전주는 역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또한 앞으로 관광이나 문화욕구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 우선되어야 한다. 전통문화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상품화할 필요가 있고 그것들이 끈끈한 생명력으로 전통과 이어져 있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해야 한다. 가능하면 도로의 기능이 활발해야 하고 편리한 주차장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전주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즐겨찾지 않는 곳이 외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화거리일 수는 없다. 관광의 욕구는 이제 단순한 볼거리에서 생생할 삶이 묻어나는 형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문화거리의 개념은 좀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 세계화시대에 그것이 강요하는 규격에 맞추어진 서구화된 거리는 문화거리로서의 차별성을 갖기가 어렵다. 한 도시의 사람들이 길들여지고 전승되어온 삶의 고유한 방식이 재현되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문화의 거리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전주의 남부시장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문화의 거리가 될 수 있다. 여기서는 그 동안 전주에서 문화의 거리로 계속 부각되어 왔던 세 곳의 권역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먼저 그 지역의 특성을 보고 현재의 진행정도와 같이 문제점들도 같이 논의될 것이다.

천년고도의 자존심으로
〈경기전 일대〉

풍남문에서 오목대를 잇는 거리를 전통고도의 핵으로 삼아 부각시키자는 의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제기되어 왔다. 이목대와 오목대, 한벽당, 향교, 경기전, 한옥지구, 전동성당, 풍남문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놓고 보면 그 역사성이나 전통성의 측면에서 황금벨트가 형성되는 까닭이다.
전북대 윤덕향 교수(고고인류학과)는 이 지역이 조선조 전라도의 수부였던 전주성의 마지막 남은 성문인 남문이 있고, 경기전은 이태조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거슬러 올라가면 견훤과 관련된 유적지나 통일신라시대의 전주 모습까지도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현재의 한옥지구는 1930년대 일제하에서 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한 왜식건물들에 맞서 전통한옥을 짓고 모여 살면서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키고 살았을법한 저항의 정신과 선대의 민족적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한옥지구는 그 동안 대표적인 전주의 상징으로 꼽혀왔고, 그것이 이 지역에 대한 보존의 절대적인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한옥지구와 이어진 향교의 경우 전통적인 건축양식과 함께 유교문화의 본산으로서의 명맥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전주시에서도 이 지역을 주목하고 나름대로의 개발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행정적인 측면에서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은 한옥지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전체 8만 7평에 이르는 한옥보존지주는 77년에 보존지구로 공시되었고, 87년부터는 ‘한국 고유의 건축양식에 대한 보존이 필요하다’는 행정적인 판단에 따라 제 4종 미관지구라는 이름으로 묶여져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 지역이 보존지구로 묶인 외에 어떤 행정적인 지원이나 대책도 세워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그 동안 몇 차례 이 지역을 정밀실사한 전문가들의 의견인 한옥지구 내에 실제로 보존가치가 있는 한옥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방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주시로서는 더 이상 의미없는 규제에 발목잡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현재의 한옥보존지구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개발’을 시도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전주시가 현재 진행중인 이 지역의 개발 프로젝트에 붙인 이름은 ‘민속의 거리’조성사업이다. 일괄적인 규제는 풀되 가치있는 시설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도심의 건축물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에 근거한)을 두고 역사적인 지형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거리를 새롭게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전주시 도시계획에 이민섭 계장은 ‘궁극적으로는 자치시대에 걸맞는 시민의 자율성을 보장’ 한다는 측면에 의미를 부여했다. 결국 전주시가 계획하는 민속의 거리는 시민들이 어떤 입장에서 문제를 보느냐가 중요해진 셈이다. 궁극적으로 전주시의 ‘자율성’에 대한 입장은 일면 긍정적이지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 거리는 단지 계획적으로 조성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주의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유산들로 결집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화의 거리를 소망했던 많은 이들의 바램이다. 예컨대 조선조를 풍미했던 전주의 필방들이 이 곳에 모여들고,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있는 장인들이 이 곳에 한지방을 열어 전주의 솜씨를 자랑하고, 거리 곳곳에서 판소리 가락이라도 흘러나오게 한다면, 그리고 그런 문화가 가치있게 여겨지고 시민들이 그것을 가깝게 느끼면서 생활 속에서 실제로 활용한다면 이 곳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주시에서는 민속의 거리 조성사업에 대한 기초적인 작업 프로젝트를 이미 발주한 상태이고 그 용역결과는 11월 중순 나오게 된다. 전주시는 일단 전체 사업비로 11억 원을 책정했고 용역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전주시는 이 결과를 놓고 시민공청회를 열고 시민적 합의를 수렴하여 개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물관의 개념을 바꿔라
생활문화의 현장으로

국립전주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효자동 지역은 전주시가 도시확장을 거듭하면서 도시계획에 있어서 급부상하고 있는 곳이다. 주로 야산과 농지로 구성되어 있고 민가가 적으로 유흥시설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또한 도로는 전주 도심에서 금구를 잇는 단선방향 의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특정한 시설물을 중심으로 한 전통성이나 역사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박물관이라는 대표적인 역사 시설이 중심축이 될 수 있다.
지난 10월 국립전주박물관에 대한 국정감사의 질의과정에서 박물관 측은 바로 이 문제를 부각시켰다. 전통예술의 대표적인 고장인 전주의 박물관 주변을 계획적으로 조정하여 문황술과 체육공간의 기능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박물관 앞 3천여 평의 부지를 문화시설지구로 지정하고 청소년들의 건전한 놀이문화공간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적극적인 방안이 제시된 셈이다.
박물관측은 국정감사에서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있는 이 지역을 문화시설지구로 지정하기 위해서 예산 30억 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전북도와 전주시 및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건의하였으며, 국회와 정부도 상당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물관의 이종철 관장은 도시팽창에 따른 권역개발은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의 문화가 시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문화거리를 조성한다고 할 때 누구를 위한 문화인가가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기획의 중심은 ‘생활문화’에 대한 것이고 그 구체적인 방향은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간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이 보여주었던 서구지향적인 양상을 탈피하면서 전통 마당놀이나 판소리 공연장, 조각공원, 문화예술 전문도서관 등이 곳곳에 배치되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취향까지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지 모른다. 또한 휴일이나 주말 가족과 함께 이 곳을 찾아 간단한 운동을 즐기고 전통 공연을 보면서 활력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생활문화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박물관은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살아 숨쉬는 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요컨대 박물관이 골동품 전시장으로서가 아니라 도시의 문화센터가 되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인식이 깔려있는 치밀한 기획인 셈이다.
“결국 문화는 시민의식의 문제라고 본다”는 이종철 관장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시사적이다. 전체적으로 강요되지 않는 문화적 마인드가 시민들 속에서 형성되면서 문화적 밑거름이 탄탄해질 때 지역문화는 번성할 수 있고, 문화거리는 그 같은 과정을 매개하는 중요한 정책이 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
〈덕진공원에서 동물원까지〉

덕진공원에서 동물원에 이르는 권역은 지금 전주시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어있는 지역이다. 대학로 개설문제로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고, 예술회관 부지 문제가 몇 년째 표류하고 있으며, 문화거리에 대한 토론이 벌어질 때마다 빠짐없이 회자되는 지역이다. 그 만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가능성과 문제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곳인 것이다.
이 곳은 역사성과 접근성, 기존 시설과의 관계성 등 모든 측면에서 대단히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95년 전북경제사회연구원에서 예술회관 부지문제를 놓고 정책과제로 설정하여 발표한 연구에 의해서 이 지역은 예술회관의 최적지로 꼽혔고, 전북도에서도 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관광개발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전주시를 대표하는 덕진공원이 넉넉하고, 이씨 왕조의 시조 묘역이 있는 조경단, 전북의 전통음악을 대변하는 도립국악원, 어린이 회관과 체련공원이 잇달아 연결되어 있으며 그 끝에는 시민위락시설은 동물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전북대가 짓고 있는 삼성문화회관 야외공연장 그리고 전북도의 예술회관이 들어설 경우 전주시의 공연문화가 완전히 이곳으로 중심을 이동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들이다.
이 곳을 문화벨트로 묶어 개발한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체련공원과 동물원 등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생활문화의 기능을 담담하면서도 전통도시로서의 면모를 가꾸어 본격적인 관광산업을 기획해 볼 수도 있다.
백제고분이 남겨져 있는 가련산을 조성하고 도립국악원과 조경단을 묶어 전통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고, 덕진연못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벤트를 개발하여 호반축제는 조직해 볼 수도 있다. 경기전 주변이 고도의 정취를 간직한 정적인 이미지라면 이 곳은 문화와 관광이 일치되는 동적인 문화거리로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전주시에서 발주한 문화예술관광도시 종합개발계획안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고 있다. 덕진공원 입구에서 연화마을까지의 1.2km 거리를 미술의 거리로 개발하고 가련산은 특정 주제를 부여하여 플라워 파크를 조성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술의 거리에는 갖가지 문화예술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이 거리의 앞뒤로는 도립국악원과 동물원으로 이어지는 관광루트를 만들어 문화예술행사를 활성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다. 이 지역을 관광단지화 할 경우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이미지는 전주의 전통성이라는 것이다. 문화예술공간이 집중되면서 전국에서 모여들 예술인들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유서깊은 주변시설들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전주만의 특산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 전주비빔밥 한그릇이라도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 전통음식점을 만들고 그것이 또다른 문화관광의 유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주시 예총 문치상 회장의 주장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지적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연계개발에는 뜻밖의 변수들도 숨어있다. 구 도지사 공간인 예술회관 분관의 용도변경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문화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되돌려졌다가 다시 민선 지방정부의 권위적 상징물이 되어버린 예술회관 분관은 개방 당시의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벨트내에 권위적인 시설물의 존재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여전한 여론이다.
덕진종합회관의 문제도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덕진종합회관이 중요한 위치에서 오히려 전주의 특성을 훼손한다고 보고 있다. 수용의 한계를 넘어서서 옹색한 살림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는 도립국악원의 활기에 비교해 보면, 그 바로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는 덕진종합회관의 존재는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모른다. 냉전시대의 유물인 덕진종합회관이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지방정부는 응답해야 한다. 그 공간은 어떤 형태로든 전면적인 보수가 필요하고 시설의 용도에 대해서도 완전히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인터뷰/김기천 전주시 도시국장

적극적인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전주의 역사로부터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2천년대의 도시는 우리 것으로 돌아가는 도시계획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시민의식의 성장과 함께 도시계획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주시 김기천 도시국장은 “도시는 역사의 보고”라는 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전주시의 도시계획에만 20여 년 가까운 세월을 쌓아온 그는 전주는 환경과 역사에 기반한 특성화된 도시의 장점을 두루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 전주시 도시계획의 기본 방향은.
도시계획은 보존과 재현이라는 두 가지 축을 기본으로 한다. 지형을 고려하고 면을 중시하며 역사적인 시설물을 활용해야 한다. 민속의 거리의 경우 획일적인 보존보다는 새롭게 조성한다는 측면이 필요하고, 그것은 한옥보존지구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적극적인 개발’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역사적인 지형을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민속의 거리를 조성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도시미관의 문제만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이벤트를 효과적으로 결합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있는 시설물들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존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규제를 풀었을 경우 의미있는 보존마저도 어려워질 수 있다.
앞으로의 도시계획에는 시민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당지역 시민들의 불이익을 덜어주고 최소한의 면적에 최소한의 계획으로 자연스러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전주시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시민들의 생활과 풍습이 도시의 역사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해야 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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