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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 | 특집 [저널초점]
체계적인 지원정책이 절실하다
지역 문화예술 지원제도의 문제점과 발전방향
장세길 기자(2003-07-03 14:29:50)

정기공연이 불러온 빚 때문에 단체의 대표가 갑자기 사라진(?) 일이 있었다. 쌓여만 가던 적자에도 불구하고 예술성을 지향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지만 객석은 생각처럼 차지 않았고 결국 더 큰 빚만 떠 안게 되었단다. '대표'로서 버틸 더 이상의 힘이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이다.

재정적자에 허덕이기는 다른 공연단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빚을 갚기 위해 작품구상보단 '아르바이트'에 전전긍긍하는 단원들, 창단공연이 '고별공연'으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지역문화환경은 여전히 척박하고 재정은 빠듯하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이 올해 4월 실시한 정부의 문화관광정책의 방향성 여론조사에서도 이러한 지역문화 여건이 그대로 드러났다. 향후 정부정책의 우선 순위를 묻는 질문에 73%의 문화예술인이 창작활동을 위한 재정적·법적·제도적 지원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체의 보다 큰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심성 지원'이니 하며 예산삭감을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는 창작활동의 빈곤이 곧 문화복지의 저하로 이어진다는 악순환의 고리를 간과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전라북도에서의 문화예술 지원제도는 어떤가.

현재 전북도의 문화예술 창작지원사업은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비롯해 올해 처음 시작된 무대공연작품 지원사업, 전주시 예술인 지원사업, 사회단체임의보조금 등 네가지다. 여기에 각 시군 지자체 문화예술 부서의 풀(pool)예산을 통한 지원도 있지만 그 폭은 미미하다.

문예진흥기금은 올해 이자수익 중 6억1천8백만원을 2백68개 사업에 지원했고, 문화관광부와 각 시군 지자체가 지원하는 무대공연작품 지원은 16개의 공연에 모두 4억7천만원을 지원했다. 전주시는 이와별도로 1억2천만을 책정, 전주시 문화단체와 예술인들에게 도움을 줬고, 전북도는 매년 풀예산으로 지원되던 3억여원과 별도로 사회단체임의보조금 형식으로 36개의 사업에 2억1천8백만원을 지원했다. 특히 전주시는 처음으로 5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전업작가의 창작의욕 고취를 위해 작품구매사업을 펼쳐 문화예술인의 관심을 끌었다.

보다 체계적인 지원을 위한 재단설립도 추진중이다. 1997년 시작된 전북문화예술진흥재단은 2002년 2백억원을 목표로 현재 각 시군별로 기금조성 중이며, 전북도의 경우 이를 위해 올해 5억원, 내년에 5억원을 출연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문화예술인들은 "여전히 미흡하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사업의 본뜻을 살려내기엔 예산이 너무 부족할 뿐 아니라 실질적인 창작지원이 될 수 있도록 운영방법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나눠주기식 지원의 문제점이다.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지원은 그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완전히 제공하지 않고, 이른바 매칭펀드(matching fund) 형식을 취해왔다. 2000년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내역을 보면 동인지발간 및 연구 분야의 경우 55건에 1억9백50만원이 지원돼 건당 1백99만원 정도의 지원이 이뤄졌다. 5-6년 전의 건당 80여만원에 비하면 상당히 증가됐지만 문학의 경우 출판에 관련된 인쇄비용의 증가율에 비할 때 여전히 실질적인 지원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이렇바에야 차라리 하나의 사업에 몰아주자"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특히 공연관련 단체들의 경우에는 소폭으로 지원되는 예산이 "홍보 팜플렛 제작비도 안된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반해 올해 시작된 무대공연작품 지원사업은 건당 3-4천만원 가량이 지원돼 호평을 받았다. 무대공연활성화를 위해 문화관광부와 각 시군이 각각 2억3천8백만원씩을 출연해 16개의 무대공연작품을 지원한 이 사업은 작품에만 신경 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집중적인 제작지원을 요청하는 공연장르와 달리 문학과 미술계의 요구는 조금 다르다. 작업환경의 열악성 문제는 지자체의 지원으로 해결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에 이 분야의 예술인들도 동의하고 있지만 예술가들이 생산해 낸 작품을 일정한 지자체재단이나 진흥기금을 산정하여 작품을 사들임으로써 창작작업을 활성화시키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술시장도 경직되어 있고, 사립화랑조차 '이름있는' 작가의 작품만을 구입해 젊은세대의 '실험성'은 외면받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런 실정에서 문화선진국들의 지원제도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우선 프랑스는 국가가 최대 구매자로 나서고 있다. 연간 수십억원의 작품구매예산을 산정하고 비평가나 작가 등 9명의 심의위원들이 회화와 조각·디자인·사진 등 다양한 작품들을 구입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작가에 대한 후원이라기 보다는 광의의 투자이며 미술진흥정책인 셈이다.

미국의 지원제도는 문화예술지원이 어디까지 이뤄져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미국은 각 주정부가 운영하는 현대미술컬렉션인 미술은행(art bank)을 비롯하여 공공영역 프로젝트 후원기구, 미술교육기구, 예술가를 위한 긴급재정보고기구, 전시장제공, 전시프로젝트 후원, 펠로우십 장학금, 미술축제 및 공모전 후원기구, 직업안내소, 법률자문기구, 융자, 마케팅과 출판, 작품진열장 대여기구 및 회의후원, 스튜디오 제공 등 각 영역별로 전문화·분업화 되어 있다. 이제 겨우 정부지원으로 남원과 진안에 창작스튜디오를 짓고 있는 지역의 현실에선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국내에서도 지원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 그중 경기도는 문화예술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지역이다. 경기문화재단에 6백억원이라는 돈을 한꺼번에 출연한 '결단성'도 놀랍지만 지원정책의 면면을 보면 경기도의 확고한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격이 문화예술진흥조례다.

경기도 문화예술진흥조례의 백미는 제3장과 제5장. 문화예술진흥 종합계획을 밝힌 제3장은 종합계획 수립, 도민의 의견반영, 도정 중점사업 선정, 문예진흥구역의 지정을 각각 별개의 조로 나누어 명시함으로써 기본원칙의 구체성을 밝히고 있다. 또한 문예진흥 계획의 수립과정에서 도민의 의견반영을 강제규정으로 하고 있으며, 매년 그 추진실적을 평가하도록 명시돼 있다. 조례가 단순한 말 잔치에 끝나지 않도록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5장은 문화예술 지원을 위한 재정마련의 확고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기도는 매년 일반회계 예산의 1%를 출연하되, 1000억원이 조성될 때까지 기금 출연을 해야 한다고 아예 조례로 못박아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전북도는 기금총액이나 출연내역을 조례로 명시화하지 않고 있다. 단지 다른 지역의 조례와 마찬가지로 문예진흥기금은 지자체의 출연금, 보조금과 한국문예진흥원의 지원금으로 조성된다고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주는 대로 받아야만 하는 것이 현재의 문예진흥기금 조성방법인 것이다. 물론 1997년부터 문예진흥재단 설립을 위해 2백억원을 목표로 각 시군이 일반회계 0.15%를 출연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도 명시된 조례가 아니어서 출연금 규모가 들쑥날쑥이다. 내년 전북도 일반회계 예산은 1조4천2백39억원. 0.15%라고 하면 21억여원을 출연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출연금은 21억원이 아닌 이에 4분의 1에도 못미치는 5억원뿐이다.

경기도가 모범으로 꼽히는 또 다른 사례는 '피드백 시스템'이다. 경기문화재단은 민간 전문가들이 주축인 평가사업단을 구성, 매년 지원되는 사업에 대한 정확한 평가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단순히 지원된 예산이 제대로 쓰여졌는가에 대한 감시차원이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그리고 그 보완점은 무엇인가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 그러나 전북은 평가작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을 이뤄진 후 제출되는 문서는 예산 정산서와 행사주체자가 작성한 평가서(이도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가 전부이고 조례 제8장 전북문예진흥기금 지원심의위원회 기능(33조)에 기금지원사업의 평가라는 항목만이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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