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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 | 특집
[기획특집] 시장 - 전주남부시장, 진안시장
관리자(2012-04-04 17:50:00)


고단한 시장통에 피어난 문화 한 줄기 유희중 객원기자 속살 같은 새벽, 잠들지 않는 남부시장 기척소리 하나 없을 만큼 고요한 새벽 시간. 시계바늘이 세 시를 넘어가자 어렴풋이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 든다. 시장 건물은 아직도 깊은 잠에빠져 있건만 천변 노점은 갑자기 일대 활기를 띈다. 아직은 추운 기운이 온 몸을 파고들며 시장 상인들의 입김이 찜통마냥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날이 밝아올수록 활기는 절정을 달린다. 멀리 군산, 진안, 김제에서 물건을 가져온 사람들은 부지런히 차에서 물건을 내리고 근처 소매상들은 빠른속도로 물건을 떼다 트럭에 싣는다.시장의 아침은 그 어느 곳보다 분주하다. 남부시장에는 오전 10시만 되어도 술 한 잔 걸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새벽시장을열었던 이들에게 오전 10시는 고단했던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요, 바쁜 일을 마치고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는 퇴근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남부시장십자로를 중심으로 순댓국밥집과 콩나물국밥집은24시간 영업을 하고 있으며 오랜 기간 이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시장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남부시장은 이렇게 새벽부터 저마다의 생활습관대로 각자의 시계를 안고 돌아간다.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남부 시장의 속살 같은 시간이 지나니 이쪽저쪽 상가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건물 밖 건너편 천변의 노점들이 도매 위주의 시장이라면 시장 안쪽은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소매시장에 가깝다. 실질적으로 관광객들이나 고객들이 직접 마주하는 얼굴들인 것이다.분주하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오늘 들어온 생선이며 채소를 이리 저리 살피던 상인들이힘 있게 진열대에 올려놓는다. 문을 열고 상품을 정리하고 청소를 마치면 비로소 시장에는 여유가 찾아온다. 오전 시장은 한산하다. 무표정하게 어딘가를 응시하는 상인들도 눈에 띄지만 대게 이웃가게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한다. 콩나물국밥 vs 순대국밥 한산했던 시장에 다시 활기가 도는 시간이 바로 점심시간이다. 도시락을 직접싸와 한 쪽에 쭈그려 앉아 먹는 상인들도 있고, 익숙한 듯 냉장고에서 음식을꺼내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하지만 누가 뭐래도 남부시장에서 오랜기간 사랑받아왔던 점심 메뉴는 콩나물국밥과 순대국밥이다. 점심시간을 맞춰가면 이미 늦는다. 서너 평 남짓한 가게는 벌써 손님들로 북적이기 일쑤다. 시장통 속의 점심심사는 유난히 시끌벅적하다. 늘 부대끼며 살아온 이웃이요, 늘상 찾아오는 단골이 태반이기 때문이다.콩나물국밥은 한정식, 비빔밥과 더불어 전주의 3대 진미로 손꼽힌다.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은 펄펄 끓여 나오는 전주식과 달리 육수에 밥과 콩나물을 말아먹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국물이 뜨겁지 않아 먹기에 쉬우며 개운한 맛을낸다.순대국밥도 빼놓을 수 없다. 기본 찬으로 대게 부추무침과 풋고추, 깍두기,새우젓 등이 나온다. 보글보글 뚝배기에담긴 국밥이 눈앞에 나타나면 부추를 한젓가락 넉넉하게 집어넣고 야들야들한내장을 집어 새콤한 초장에 찍어 먹는다. 그렇게 정신없이 후후 불어가며 한그릇 다 먹고 나면 천하일미가 부럽지않다. 이쯤 되면 고민이다. 콩나물국밥과 순대국밥, 중화요리 집에서 짜장과짬뽕을 고민하는 그것보다 더 괴롭다. 청년과 커피, 그리고 남부시장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2층 하늘정원으로 올라간다. 든든히 배도 채웠겠다커피 한 잔 마실 요량이다. 하늘정원은 남부시장 상가 4동 2층에 위치해 있으며 1999년 화재로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죽은 공간을 리모델링했다.관광객들에게는 쉼터로, 시장 상인들에게는 문화공연장으로, 작가들에게는야외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다. 시원하게뻗은 전주천을 한 눈에 담고 하늘 정원반대편으로 가니 전통시장과 어울릴 것같지 않은 아기자기한 커피숍이 나타난다. 남부시장 문전성시 사업으로 진행된‘청년장사꾼’프로그램을 통해 이곳에 정착한‘카페 나비’다. 핸드드립 커피를 시중보다 훨씬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며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카페답게 매주 셋째 주 토요일에는 음악 공연도 감상할수 있다. 맞은편에는 캘리그라피‘공방ㅇ’이 자리하고 있다. 보기에도 예쁘고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직접 글씨를 써보고 완성된작품을 액자에 담아갈 수도 있다. 하늘정원과 연결된 2층 공간은 수년간 방치된 채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지만 이곳에청년장사꾼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활기를띄고있다.‘ 카페나비’를운영하고 있는 정영아(31) 씨는“아직은 손님들이 많지 않아 힘들지만 그래도 시장 안에서 어울리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며 전통시장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했다.처음 이곳에 터를 잡을 때만 해도 주변상인들과의 소통이 힘들었지만 지금은옆 가게 상인들이 함께 밥을 챙겨줄 만큼 가까워졌다. 어디를 가나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그릇가게를 운영하는 조남주(53) 씨는“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끄럽게 뭐하는 것인지 몰랐는데 관심을 갖고 보니 아이들이 하는 일이 다 예뻐요.열악한 환경이지만 시장 안에서 살 길을찾겠다고 덤비는 모습들이 대견하고 기특합니다”라며 힘을 보탠다. 어느덧 남부시장에는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꿈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들이 남부시장의 미래를 더욱 탄탄하게 갈고 닦을 밑거름이 될 것이다. 변화 속에 다시 태어난 문화공동체 진안시장 진안시장은 곧 100년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여느 전통시장이 그랬듯 진안시장도 한때는 오가는 사람들로 번성하던 시장이었다. 특히 산중고원지역인 탓에 지리적으로 교류가 쉽지 않았던 터라 5일 만에 한 번 서던 장날은 더욱 소중했다. 하지만 번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다시 채워지지 않았으며 자연스레 시장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공동화 현상은 진안시장 역시 피해갈 수 없는 시련이었던 것이다. 시장통 속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아팠다. 좌우로 늘어선 가게 사이에는검정색 그늘막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낮에도 어둡기까지 했다. 심지어 쓰고 남은 현수막을 기워 만든 천장이 그 쓸쓸함을 더하기도 했다.하지만 2012년의 진안시장은 한 마디로 말끔하다. 시장 2층에 주차를 하고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대형마트에서 보던 카트가 가지런히 줄을 서 있다. 1층에는 구획별로 정돈된 시장 가게들이 먹을거리, 입을거리 별로 모여 자리 잡고있으며, 시장 건물을 나와 중앙광장을가로지르면 식당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장사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차 있다.좀 더 비약하자면 흡사 백화점에 와 있는 기분이다. 말 그대로‘천지개벽’이다. 입구는 친숙한 목재와 세련된 글자체로 정비되었으며 아기자기한 시계탑이 눈길을 끈다. 상가와 식당 중앙 공간은 대형 복합 상가와 다를 바 없는 휴게 공간이 세련됨을 뽐내고 사랑방은 마치 도심의 북카페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단한 세월 속에 감춰진 문화의 뿌리 이는 모두 지난 2007년부터 진행되었던 시장 현대화사업과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일궈낸 것들이다. 현대화된 시장에진안 시장만의 새로운 시장 문화가 둥지를 튼 것이다. 진안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이렇게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사실 상인들에게 지금까지 문화란 사치에 불과했다. 문화 소비자와 생산자를구분할 겨를도 없이 치열한 삶을 살아왔으며 제 한 몸 돌보기 어려웠던 것이 그네들의 삶이었다. 그랬다. 그들은 문화를 즐기고 향유할 의욕이 없었던 것이아니라 힘겨운 하루살이에 그런 엄두를낼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제 이들은당당히 문화의 생산자요 주체가 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떠난 자리를 지켜오던그들이 비로소 그 존재와 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우리네 전통시장에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사랑방에진열된 티셔츠에 소박하게 새겨진 시장공동브랜드‘마이산의 선물’이 어느덧이들에게 진짜 선물이 된 듯하다.건물 내에서 인삼약초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남수(44) 씨는 시장의 목공일을 담당하고 있다. 진안시장에 들어오기전 18년간 가구 일을 하며 쌓은 노하우 시장에 펼쳐낸 것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형태의 재능기부다. 실제 진안시장에서는 김 씨의 작품들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시장 광장에 있는 벤치도,내부에 있는 공방도 모두 김 씨의 작품이다. “할 일이 끝이 없습니다. 라디오부스부터 각 상점의 매대, 벤치, 놀이터,그네까지 다 우리가 직접 만든 것들입니다.”김 씨의 목소리에서 자부심과 뿌듯함이 베어 나온다. 하지만 이내 시장을위한 애정 어린 걱정도 털어놓는다. “제가 마흔 넷인데 막내입니다. 그만큼 시장 상인들이 고령화되어 있다는 것이죠.시장의 미래를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이와야 합니다. 게다가 아직도 연세 많은어르신들은 새로운 사업이나 시장 내 문화사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앞으로 서로 더욱 소통해야할 부분입니다.”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평생 자신의 것을 가져와 팔던 어르신들에게 문화란 생소할 수밖에 없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과거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으며, 흘러온 시간만큼 그 단절의단단함도 세기 마련이다. 지금 진안시장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치열한 소통의 장이었다. 밥 한 끼로 함께 나누는 소통의 장 배꼽시계는 말하지 않아도 울려대는 자동알람시계다. 일찍부터 움직였던 터라 오늘의 알람은 더욱 빠르고 크게 울려댄다. 정오가 가까워 오자 시장 상인들이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중앙광장으로 모여든다. 상인들이 익숙한 듯 음식을 꺼내 나눠먹기 시작한다. 시장 사람들이 소통을 위해 함께 모여 식사하는이른바‘한솥밥 먹기’행사다. 사실 옆집이웃, 친구 한 번 만나기 쉽지 않은 것이우리 현대인들의 삶이다. 마음먹기 나름이건만 일에 쫓겨, 집안일에 쫓겨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진안시장사람들은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준비한 음식을 함께 모여 나눠 먹는다.진안시장의 먹을거리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진안의 흑돼지야 워낙 잘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시장통에서는 역시 국밥이 제일이다. 특히 식당가에서 파는소머리국밥 맛이 일품이다. 머리고기,사골, 우거지, 무 등을 넣고 푹 고아 옛날 할머니의 손맛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무말랭이, 김치, 나물 무침 등 함께나오는 찬도 예닐곱 가지가 넘는다.진안시장의 식당들은 마치 대형 쇼핑몰의 푸드 코트를 연상케 한다. 모두 시장 왼편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간판 아래를 자세히 보면 그 집의 대표 메뉴를 달아놓았다. 식당 로비에는 알록달록한 색이 돋보이는 공동 테이블도 세팅되어 있다. 내 이웃의 온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던 그곳 배를 채우고 다시 들어간 시장. 수선가게가 아주머니들의 수다로 요란스럽다. 무진장수선을 운영하고 있는 정순자(53)씨는 이미 진안시장 유명인사다. 20년이 넘도록 수선집을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가방 만드는 동아리를 이끌고있다.“ 내가 가진 재주 나눠주는 것이지 뭐 별것 있간디.”특별할 것이 없다는 투로 말하지만 강한 자부심이 담겨있다. 정 씨는 가게 구석 공간을 활용해 공방으로 꾸미고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장바구니나 쿠션 등을 만들고 있다. 어디 바느질 솜씨 안 좋은 아낙이 있던가,모두가 기십 년 동안 실력을 쌓아온 숙련공들이다. 작품에 대한 호응도 좋아‘마이산의 선물’상표를 붙여 시장 사랑방을 통해 직접 판매도 한다. 장이 열리기 전날에는 회원들끼리 서로 연락해 공방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에도 정씨의 손은재봉틀을 돌리고 바느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랜 세월 축적된 실력의 깊이가 느껴지는 대단한 내공이다.느지막한 오후. 시장은 다시 한가로움에 젖는다. 일찌감치 판을 걷은 상인들이 많아서인지 오늘 장은 좀 더 빨리 파하는 듯하다. 진안시장‘만남의 장소’중앙광장 벤치가 장사를 마친 상인들의수다로 시끌벅적하다. 주머니가 만족스럽게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이웃, 내 친구를 만나는 소중한 장터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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