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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3 | 특집 [연중기획]
밟지 않는 길은 죽는다
공간 길 1 - 김제 제비산 구릿골 길
이세영 편집팀장(2013-02-28 11:39:24)

전주에서 금산사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옛날 사람들은 제비산 안쪽을 돌아 구릿골로 난 길을 이용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옛사람의 고단한 자취를 보여주지만 한때 그 길은 기세가 오른 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하기 위해 단걸음에 뛰어넘던 고개였다. 공주까지 올라간 전봉준이 울분을 삼키며 힘을 모으러 내려온 길도 그 길이었고, 그들을 쫓아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그 앞잡이들이 승냥이처럼 몰려온 길도 그 길이었다.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 중

이 한 단락의 글이 구릿골을 찾게 했다. 구릿골은 변혁을 꿈꾸던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머물렀던 곳이다. 정여립에 관한 이야기는 금산사 부근에 많은데 한동안 제비산 월명암 부근에 살면서 처음으로 대동계를 조직했다. 여기서 그는 차별없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꿨다. 강증산은 정여립 집터 바로 옆 구릿골에 약방을 차려놓고 구한말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악산 배꼽 밑엔 ‘오리알 터’로 불리는 금평저수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來) 터’라는 뜻에서 온 ‘오리알 터’는 ‘우주의 모든 기운이 이곳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라면 미륵불이 오고, 증산교에서라면 상제가 오는 곳이다. 구릿골 초입, 강증산의 증산교본부가 그가 차렸던 ‘구릿골 약방’의 몇 백배는 됨 직하게 지어져있다. 제비산 아래 증산교본부와 금평저수지 샛길을 따라 구릿골에 들어섰다. ‘제비산 안쪽을 돌아’ 난 길을 도통 찾을 수 없었다.“쩌그, 제비산 꼬랑지 보이지라? 마을 뒤짝 산 미티로 혀서 저수지를 맹글라고 산을 까까 논디로 가믄 거그가 구릿골 질이여.” 일흔다섯의 이병한 할아버지가 일러주는 곳을 따라 구릿골 길의 초입을 알아냈다. 그는 구릿골길로 농민군이 갔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구릿골 길을 따라 놓인 홀어머니다리며 홀아버지다리, 형제바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젊을 적으는 저 질로 전주를 댕겨오기도 혔어. 저 질이 아니믄 삥 돌아 가야허는디 계곡질을 따라가믄 귀신사가 있는 청도리로 바로 가 뻔져. 구릿골 질을 따라서 독배를 지나가꼬 우시장이 스던 우전서 황소 한 마리를 사가꼬 그 질로 왔당게.” 그의 젊었을 적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반세기 전까지 구릿골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곳이라고 했다. 전주를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던 탓에 인근 마을 뿐 아니라 멀리 원평에서도 이 길을 사용했다. 농민군은 물론이고 정여립이 대동계를 처음 조직하고, 증산교의 탯자리를 자처하는 자리였으니, 제비산 구릿골에 사람이 모여든 것은 오래되었을 터다.

할아버지가 일러준 데로 산길을 돌아 구릿골 길 초입에 올랐다. 금평저수지 위로 또 하나의 보를 막는 공사를 한다. 옛길은 온데간데없고, 공사차량들이 들락거리는 황톳길과 산허리를 깎아 마련한 돌들이 어지럽다.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못지않은 폭력이 온 계곡을 뒤흔들고 있다. 인적이 사라진 옛길이 다시 저수지에 의해 사라져야할 운명인 모양이다. 구릿골 길은 개천을 끼고 흐른다. 구릿골에서는 섭다리골내라 부르고 청도리에서는 수양골내라 부르는 이 천은 산 사이의 완만한 계곡을 따라 흘러 원평저수지에 담긴다. 불도저의 무한괘도 자국이 사라지자, 길도 곧 자취를 감추었다. 구릿골 사람들의 이야기대로라면 남아 있어야할 바위들도 찾아 낼 수 없었다. 내를 길 삼아 계곡을 올랐다. 구릿골 길을 옛사람들이 자주 찾았던 이유를 길을 걸으며 짐작할 수 있었다. 계곡은 완만하게 이어져 힘이 들지 않았다. 군데군데 너럭바위가 길을 대신하기도 하고 전주로 향하던 농민군들이 모두 쉬어갈 만큼 큰 쉼터를 마련해주기도 했으니 참 편한 길이었을 테다. 제비산의 뒤쪽을 바라보게 될 쯤, 돌로 두렁을 낸 논들이 보였다. 청도리 노인은 “1990년 쯤까지는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했다. 쌀값 떨어지고 농지가 남아도는 상황이 되자 힘들게 이곳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려 하지 않았을까 싶다. 천수답마저 농사를 지어야 했던 시절, 이 계곡의 논들은 계곡의 풍부한 물로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구릿골길을 사이에 두고 청도리와 구릿골 사람들이 경쟁하듯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을 테다. 옛사람들의 손길은 정성스럽게 돌로 쌓은 논두렁에도 머물렀다. 방치된 논두렁이 여전히 튼튼하게 서 있을 만큼 옛사람들의 땀이 쌓였다는 것일 터, 배고픈 시절 식구를 생각하며 눈물로 쌓았을 산속의 논두렁이 더욱 값지게 보였다. 경운기가 지나갈 만큼 제법 넓은 길도 이제는 쓰러진 관솔과 덩굴로 사람을 막아서고 있었다. 내 주변으로 나있을 거라 기억하는 제비산 구릿골길은 온전히 산에 둘러싸였다. 길은 생명과 같아서 태어나서 자라고 죽는다. 이른 봄 보리를 밟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길은 그렇게 죽는다. 제방이 완성되면 내도 죽을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태어나고 사람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길. 잊혀서 더 이상 길이 아닌 제비산 구릿골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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