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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4 | 특집 [연중기획]
생명 소중히 하던 마음은 어디에 담겼을까
공간 - 살림의 공간
이세영 편집팀장(2013-04-05 11:56:46)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은 중세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살림살이의 변천사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드가, 멤링 등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중심으로 부엌, 침실, 수납, 난방 등 우리 이야기는 아니지만 살림살이와 살림을 꾸려가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살림의 여왕’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가전제품 고르기부터 싸게 살 수 있는 가게, 음식만들기, 리폼, 인테리어까지 다양한 살림살이가 소재로 등장한다.하루 종일 몸 움직여도 태나지 않는 살림은, 어렵다. 깨끗이 쓸고 닦는 것만으로도 어려우니‘여왕’의 칭호를 기꺼이 붙일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 속에는 또 살림은 여성의 몫이라는 생각도 지배한다. 그리고 소소한 것, 잡다한 것이라는 편견도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살림은 오장과 같다는 말을 한다. 몸의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해야만 사람이 살아갈수 있는 것처럼 살림살이도 각각의 기능을 다해야 한다. 오장의 어느 하나를 빼낼 수 없는것처럼 살림살이의 어느 것 하나도 빠져서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한 집안 사람을 살려냈던 ‘살림’의 철학은 여성을 통해 시작되었지만 살림은 집의 테두리를벗어나 세상을 ‘살리는’ 살림살이를 담고 있다.

되돌아보는 살림의 의미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로써 살림은 완전한 구조를 가진다. 분가해 따로 사는 것을 ‘살림을 낸다’고 하는 것처럼 살림은 한 집안의 기본단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 한사람이 살림을 낼 수도 있고 여남은 명이 한살림을 낼 수도 있다. 때문에 살림의 구조는 의미적으로 항상 움직인다. 살림이 삶이라는 고정된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였을 테다. 그래서 살림이란 단어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산업화의 시기, ‘역군’이 되었던 공장 노동자들과는 달리 살림하는 주부들은 ‘살림꾼’으로 혹은 ‘부엌때기’로 전락한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것 정도를 살림의 역할로 치부했고 살림은 더 이상 집안사람들을 살리는 신성한 것으로 바라봐 주지 않았다. 최근에는 가사노동으로 살림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 조차도 의식주를 돈으로 쉽게 주고받는 노동의 틀로 한정해서 바라보는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살림은 다분히 중의적이고 종합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살림의 의미는 전통적으로 한 가정의 테두리에서, 안살림과 바깥살림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구분은 성별에 의한 구분이라기보다 역할에 따른 구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안주인과 바깥주인의 성별이 그러하기에 성별 분업적 속성으로 살림의 의미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레스터 브라운은 『에코 이코노미』에서 “살림은 노동의 본질적 정신성을 표현하고 공간적으로도 걸리는 경계가 없다”며 기존 살림의 속성을 버리고 탈성별분업적으로 가정, 지역사회, 국가, 지구촌을 살리는 살림을 이야기했다. 살림의 가치와 철학은 성별과 노동의 의미를 넘어선 실천적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살림살이, 그 안에 담긴 철학
살림이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것이라면 ‘살림살이’는 재미있는 단어의 조합이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하는 구호가 아니라도 살림+살이로 풀어내면 살리는 것을 살리는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 나라의 예산 편성에서부터 집안에서 쓰는 잡다한 생활도구까지를 통틀어 다 살림살이라고 부른다. 가족을 살리는 살림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책으로 쓰면 열권도 넘을 거라는 어머니들의 말과, 글 쓰는 이라면 한 번쯤 어머니를 주인공 삼아 책을 내는 것은 어머니의 고단한 살림살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선대가리만 좋아하는 모습이나 수챗구멍으로 흐르는 밥알마저 주워 삼키던 어머니의 삶은 자식들을 그렇게 살게 하지 않겠다는 살림살이의 의지다. 그리고 가족들을 살리는 살림의 철학은 고단한 살림일지언정, 살림살이를 바지런히 정리하려는 어머니의 의지로 집안 곳곳에 그대로 투영된다. 부뚜막 위에 자주 쓰는 물건을 올려두는 살강, 긴 나무 두세 개를 가로질러 벽이나 방에 만들었던 시렁, 긴 널빤지를 까치발로 고정시켜 가끔 쓰는 물건들을 올려두었던 선반처럼 모양과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이름의 수납공간들이 있었다. 어느 공간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손에 닿는 곳과 머리가 닿지 않는 곳에 적절하게 살림살이를 채워 넣었다. 옷장에 서랍장에 넣어둘 물건도 시골집에서는 데룽데룽 갖가지 물건들을 매달아 놓기도 했다. 지금이야 원하는 크기로 집을 지을 수 있지만 나무로 짓는 한옥은 크기의 제한이 있었다. 대단한 권세를 누렸던 집안이 아니라면 살림살이보다 작아지는 집 탓에 살림살이들이 넘쳐났을 것이다. 살림살이들은 사람이 집에 길들여져 가는 것처럼 집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살림살이들이 하나 둘 늘때마다 창문 위에 선반을 만들고, 벽 한 귀퉁이에 시렁을 내고 벽에 못을 박아 걸었다. 집을 사람에 맞추어 짓기보다 사람이 집에 맞게 살려는 옛사람들의 살림살이 지혜다.

첨단으로 무장하는 살림의 공간
살림살이도 살림의 공간에 따라 변하고 살림의 공간도 세월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 할머니시대, 아궁이는 집안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음식을 데워 주던 곳인 동시에 시집살이의 한을 풀던 곳이었다. 타닥, 타오르는 불길을 한없이 보며 눈물 훔치던 그 공간 쪼그리고앉아 살림살이의 고단함을 가슴으로 삭혀냈을 부엌이사라졌다. 더 이상 시커먼 아궁이나 그을음이 눌어붙은 벽, 재 앉은 시렁 위 살림살이를 보지 않아도 된다.현대화된 살림은 부엌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엌은주방이라 부르는 곳으로 바뀌며 편리함과 인테리어를 덧붙인 생활공간이 되었고, 온 가족의 일상이 시작되고 끝이 나는 가족 모임공간으로 거듭났다.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에서도 지옥 같은 열기가 감도는 부엌은 시대에 따라 거듭났으며, 집 안이 규격화되면서 다른 곳보다, 특히 욕실과 부엌이 첨단기술의 전당으로 거듭났다고 적고 있다. 한때는 필수 품목이었던 살림살이들이 사라지기도 했다. 오줌싸개들도 자주 이용했던 키는 곡식을 까불 일이 없어져 사라졌고 쌀 속 이물질을 걸러내던 조리도 부엌에서 제 할 일을 잃었다. 집에 하나씩은 갖추었던 체, 절구, 시루, 동이, 소쿠리, 다듬잇돌도 아궁이 그을음 사라지듯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살림의 공간을 채우는 살림살이들도 늘었다. 옛 사람들이 쓰던 살림살이 대신 믹서,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와 갖가지 전동 주방기구가 첨단기술을 보유한 채 자리 잡았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그 공간을 채우는 살림살이들이 쓰는 사람에 맞게 갖춰진다는 점이다. 하나 둘 살림살이느는 재미에 살림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살림살이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다. 그래서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법정스님의 이야기는 살림살이에도 유효하다.

사람 살리는 생명의 공간
살림의 여왕이 인테리어를 잘한다거나 싼 물건을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로써 살림을 넘어 ‘살리는 일’로 의미를 곱씹어 볼 때 가정, 지역사회, 국가, 지구를 살리는 신성한 일이 된다. 그래서 살림이 ‘가사’를 넘어 생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두루 쓰이는 것일 테다. 이제 살림은 집 담장을 넘어 도시에 적용된다. 한옥의 불편함을 즐기며 옛집에서 다시 살림을 시작하고 생태하천을 조성하고 도시 농업을 하는 살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머니들이 집안사람들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허투루 밥알하나 버리지 않던 생명 존중 정신이 존재한다. 이미 그 옛날, 우리네 삶은 살아있는 것들을 살리려는 애틋한 마음으로 살림살이를 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했을 따름이다. 살림의 정신을 온전히 할 때 회색 빛 도시는 살림의 공간, 생명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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