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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 | 특집 [기획특집]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관찰자
영화의 전주, 전주의 영화인 ①
이세영 편집팀장(2013-06-05 10:10:17)

때론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영화가 있기도 하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담은 영화들이 많았다. 디지털 삼인삼색의 <풍경>, <천안함 프로젝트>, <말하는 건축, 씨티:홀>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그리고 의문을 던져주는 영화들이다. ‘색안경’을 벗고 TV뉴스에서 보여주지 않는 한국 사회에 대한 ‘시선’을 화두로 감독들을 만났다.

답을 찾으려고 영화를 찍습니다 - <풍경>의 장률 감독
공간의 특수성과 숨 막히는 미니멀리즘, 그리고 작가주의로 무장한 장률감독. 그는 전주의 맛있는 것과 영화를 선택하라고 하면 맛있는 것을 선택할 만큼 전주음식이 좋다고 했다. “막걸리 한 잔에 한 상 가득 올라오는 전주의 인심”에 감동한 그는 웃음을 잘 짓는 푸근함이 있었다. 그가 전주국제영화제에 들고 나온 영화는 한국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풍경>이다. 한국 사회의 하층 노동자를 구성하는 이주노동자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이다. 이방인 장률 감독이 이방인을 담은 <풍경>은 이주노동자들의 꿈 이야기다. 그는 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찰자의 역할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제목도 <풍경>이다. 전작의 제목처럼 장소의 특수성을 나타낸다고 한다면 <풍경>은 그저 풍경이 아니다. 그가 찾았던 안산, 마석, 계림, 가리봉, 마장… 외국인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인 셈이다. “다른 이야기를 하면 말을 잘 안 해요. 사는 것은 어떤가, 뭐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싫어하더군요. 그런데 꿈을 물어보니 다 이야기해요, 꿈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들이 이방인의 낯선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없는 벽을 느꼈던 탓일 것이다. 그 꿈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고향을 떠나 한국에 살고 있는 그도 그렇다고 했다. “떠나면 다 그립습니다. 타향도 아니고 타국이니 오죽할까요. 저도 똑같아요. 여기 적응하는 면도 있고 고향 생각나는 면도 있고 가족생각도 납니다.”그가 느끼는 한국사회의 풍경은 어떠할까. “지난해 9월부터 있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내 살던 곳과 같이 정이 넘쳐나고 정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 이유를 물었다. “알면 영화를 안찍죠. 모르니까, 영화를 통해서 그 이야기를 알아가는 겁니다.” 이미 그는 <이리>와 <중경>을 통해 한국사회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줬다. 그는 너무 길어 두 개를 만들었을 뿐 두 영화가 사실은 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사전조사에서 이리역 폭발사고에 남은 상처와 불만을 확인했다고 했다.“모두 다 잊어버리지만 당사자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상처를 가지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리>는 폭발 후에 폐허에서는 어떻게 상처를 가지고 사는가를, <중경>은 폭발직전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그의 영화는 명확한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왜곡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오히려 명확치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지는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창작이라는건 위험한 행위입니다. 화가가 붓을 들고 난 뒤에야 무엇을 그리게 될지 아는 것처럼 영화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결론 내리기 싫어하고 감히 결론 내리지 못하는 제 성격이 묻어나는 것이겠죠.” 그래서 촬영할 때도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하도록 놔두는 편이라고 했다. 시나리오 없이도 화가처럼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는 날을 그는 꿈꾸고 있다. 그는 작위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흘러가는대로 두면 된다고 생각한다. “창작하는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다가 느낌이 오면 하는 것이지 한다,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이죠.” 영화뿐만 아니다. 인생도 무위자연의 도를 추구하는 듯했다. “어느 것이 내 맘에 들지 않다면 나와 상대방의 시간 안에서 리듬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조금 참아주면 같은 리듬이 생기기 마련이죠.영화뿐만 아니라 삶도 그러한 것입니다.”그의 영화는 영상미가 가득한 장면들이 많다. 정지한 듯한 화면에 화면 전체를 채우는 고운 빛의 풍경. 그러나 그는 “영상미까지 이야기 할 것은 못된다”고 했다. 그저 ‘말투’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자기 느낌, 정서를 따라가면 일관성이 생기고, 그걸 따라가면 말투가 생깁니다. 내 말투가 어떻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이지 자기가 자기를 알 수는 없는 거죠.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데로라면 정지된 화면과 미니멀리즘을 말투라 할 수 있겠죠.”“내 리듬에 맞게 적어도 영화가지고 거짓말 하지 말고 성실하게 찍으려는 노력”할 것이라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해줄 말을 부탁했다. 돌아오는 말은 “관객에게 말을 해준다는 식이 벌써 맘에 들지 않는다”는 엉뚱한 대답이다. 요리처럼 맛있게 내주면 되었지, 요리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흘러가는 대로 창작하겠다 말하는 그의 다음 요리가 무엇일지 자못 궁금하다.

논쟁을 통해 사회는 성숙해 갑니다 - <천안함 프로젝트>의 백승우 감독
<천암함 프로젝트>는 영화제 기간 내내 논란에 휩싸인 영화였다. 국방부가 영화상영 가처분 소송을 낸다는 소문이 퍼져 영화제 페이스북은 원색적인 비난과 비호가 엇갈리며 논쟁을 부추겼다. 이 영화는 <부러진화살>, <남영동>로 ‘돈 좀 번’ 정지영 감독이 백승우 감독에게 영화 제작을 맡기면서 시작됐다.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정지영 감독은 “쉽게 만들려 했는데 백승우 감독이 진한 멸치국물을 우려낸 듯 진하게 만들었다”고 했을 만큼 진지하게 만들어졌다.백승우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드는 1년동안 “극장에 올릴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가지고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들고 난 후의 외압에 대해서 걱정하며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소통’이었던 탓이다. “이 영화를 선뜻 만든 것은 이 사회가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기사나 방송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문학계 철학계에서 제기하고 풀어줘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귀찮은 일이 생겨도 얼마든지 존재할 이유가 있는 영화입니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그의 첫 장편영화다. 감독에게 있어 첫 장편은 부담감이 있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괜찮겠냐”는 이야기만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서야 첫 장편임을 자각했다. 그만큼 첫 장편의 압박감을 잊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저는 판타지를 좋아해요. 이번 영화도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할까 생각도 했는데 더 복잡해지겠더군요. 사실 정지영 감독을 흉내내서 직설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는데 실패한 거죠.” 그는 이 영화가 논쟁거리를 던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을 위한 것인지, 갈등과 혼란을 위한 것인지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다. 아니,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조차 소통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논쟁 속에 사회는 성숙해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을 거냐는 물음에 그는 “정지영감독이 <부러진화살> 같은 영화를 만들어도 건강한 걸 보니 나도 괜찮을 듯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의 영화는 한 철학자의 말에서 시작하고 그의 말로 끝을 맺는다.“나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하고 묻는 어린아이의 물음에 어떤 답을 줄 것인가. 이제는 “답이 아니라 답을 얻어내기 위한 소통”이라는 그의 말에 누군가는 답할 차례다.

관심을 가져야 좋은 건축물이 생기죠 - <말하는 건축, 씨티:홀>의 정재은 감독
솔직히 고백한다면, 서울시청을 ‘투어’했다. 그런데 <말하는 건축, 씨티:홀>이 이야기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비로소 정재은 감독의 영화를 보고서야 서울시청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건축’이 무얼 의미하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정재은 감독은 <말하는 건축가>를 만들기 전부터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들며 시청 주변을 오가던중 “맞아, 시청, 왜 나는 한 번도 관심을 안가졌지?”하고 카메라를 시청에 들이댔다. 400시간 정도를 찍었다. 그 시간동안 그는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래서 씨티홀의 주인공은 시청 그 자체다. 그 시간동안 시청을 바라보며 외국의 좋은 건출물보다 의미 있는 시청에 대한 애정을 느꼈노라고 그는 고백했다. “영화 안에서 시청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시청을 알아갈수록 시청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생각을 했습니다. 내 평생 가장 많이 지켜본 건물이 시청인 것 같아요. 시청에 애증이 생겨서 우리 사회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이었구나, 이런 건축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인공이 시청이라면, 삼성물산과 서울시는 조연쯤 될까, 그 두 주체를 찍는 것이 녹록치는 않았다. “지금도, 끝낸 건지 최선이었는지 모르겠다”는 그에게 있어 편집과정이 제일 어려웠지만, 그 둘을 담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두 주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추상화 되어있는 존재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 어떤 방식으로 현실을 만들어 나가는지 보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들도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균형감 있게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영화를 보고 “서울시청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기록이 되어서 기쁘다고 말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건축이라는 것을 아파트, 돈 벌 수 있는 부동산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건축은 사람들에게 문화로써 익숙하지 않다. 그는 이런 관념을 벗어나야만 좋은 건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고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건축은 중요하죠. 오프닝에 많은 건축물이 등장하는데 모두가 영화 한편 감입니다. 관심을 가지면 많은 스토리들이 있고 스토리들을 대중이 다 알 수 있다면 한국의 건축과 도시가 발전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다목적홀의 음향반사판이 몇 개가 바뀌었는지 세어본다면 영화를 만든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시청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들만의 영화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그의 다음번 영화도 다큐멘터리가 될까. “건축다큐를 하면서 세편 정도는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개봉하고 반응 봐서 3편을 만들 생각입니다.” <말하는 건축. 씨티:홀>의 반응이 좋기만을 기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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