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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 | 특집 [창간특집]
창간 27주년 특집 전북의 건강한 문화생태계
새로운 지역문화 생태계 우리 삶을 바꾼다
이세영 편집팀장(2014-11-04 09:52:08)

건강한 생태계는 최하위 식물부터 최상위 포식자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유기적 관계를 맺습니다. 문화도 생태계의 그것처럼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이뤄야 합니다. 다양한 문화의 현장에서 가르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원활하게 순환되는 구조가 필요할 것입니다.

창간 27주년을 맞은 전북문화저널이 건강한 전북의 문화생태계를 가꾸어 가는 현장을 찾았습니다. 때론 습지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듯 사업을 밀어붙이는 문화 현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자연처럼, 따뜻한 사람의 온기로 건강함을 찾아가는 문화생태계의 복원력도 있었습니다.  

지역의 문화를 생태계의 보고 '습지'로 만들려는 노력이 녹아 있는 현장에서, 야생화처럼 제 스스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생적 문화 현장에서 우리가 뿌리 내리고 사는 이 지역 문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문화공간이 가져다준 큰 행복

작은 문화시설





우리 동네에 문화시설을 짓는데 무엇을 지을지 나에게 물어오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크고 화려하게 ‘그들만의 생각’으로 지어진 문화시설은 외면받기 일쑤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문화시설이 일상을 바꾸기도 한다. 장수 한누리시네마가 그 예다. 두 개 상영관에 100석이 채 안되는 영화관이지만 영화관을 찾는 인원은 장수 전체 인구보다 많다. 16년전 주민센터 한편에 들어선 무주 안성면의 작은 목욕탕도 마찬가지. 번호표를 받아든 주민들이 목욕탕 물이 데워지기만을 기다린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농촌이지만 그곳의 영화관람과, 목욕은 전국 제일이다.

이렇게 작은영화관, 작은목욕탕 등 지역의 ‘작은’ 문화시설들이 주민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전북에서 추진하고 있는 ‘작은 시리즈’는 농촌지역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이 대규모의 시설도, 많은 예산도 아님을 보여준다. 


유일한 문화창구, 장수 한누리시네마

비오는 월요일 저녁, 장수 한누리시네마. 빗속에도 우산을 든 주민들이 영화관으로 들어온다. 삼삼오오, 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한누리시네마에서 진행되는 무료 기획영화를 보기 위서다. 붐비는 도시의 영화관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장수군의 명물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장수 한누리 시네마는 2004년 전북에서 가장 먼저 생긴 작은 영화관이다. 인구 2만의 농촌에서 영화관이 될까 싶은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2만의 관객이 들더니, 지난해 3만2천, 올해는 4만의 관객을 예상할 정도 장수군의 명물이 됐다. 작은영화관의 성공사례로 전국 지자체의견학 장소가 되기도 했다. 

“한누리시네마는 단조로운 생활을 탈피할 유일한 문화 창구라는 의미를 지녀요. 장수군에는 서점도 없고, 청소년문화관, 장애인복지관 같은 시설도 없어요. 아이들이 갈만한 데라고는 피씨방이 유일해요. 영화관을 처음 오는 아이들도 많았을 정도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었는데 아이들이 놀러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큰 혜택이죠.”

한누리시네마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김혜경 씨도 가족과 함께 귀농해 가장 불편을 느낀 것이 문화시설이었다. 한누리시네마가 생기고 우연찮게 매니저로 일하면서 영화관이 주민에게 절실했음을 느꼈다고 한다. 개관 초기 김 매니저는 영과관이 문을 닫으면 안된다며 일부러 보러오는 학부모들, 고맙다며 이야기를 건네는 주민들이 있었다며 한누리시네마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그가 지금껏 한누리시네마의 매니저로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것도 주민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고 했다. 

지자체의 작은 관심이, 전주까지 나가 적게는 적잖은 경비를 써야 하는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했고, 언제든 5천원에 영화를 보러 올 수 있는 영화관을 주민들의 자랑거리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한누리시네마가 장수군만의 영화관인 것은 아니다. 인근 남원, 진안, 그리고 거창, 함양에서까지 영화를 보러올 정도로 인기가 높은 ‘큰 영화관’이 됐다.


영화팬 만드는 작은영화관

“한달에 한두번 심심할 때마다 영화를 보러와요. 멀리 가지 않아도 친구들과 언제나 영화를 볼 수 있으니 정말 좋아요.” - 강정묵 (17·장수읍)

“일하는 거 외에는 즐길 것이 없었는데 한누리시네마 덕분에 영화를 보게 되면서 영화팬이 됐어요. 무료영화를 보러 자주 오는데 미안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직원들도 친절하고 무료영화도 있어서 편하게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 오장길 (65·계남면) 

주민들의 반응처럼 작은 영화관의 인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개봉한 <명랑> 이후로 작은 영화관의 변화가 일어난 것. “아무래도 영화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러 왔죠.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고 갈만한데가 피씨방을 빼고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명랑> 이후로 어르신 손님들도 많이 늘었어요. 한 번 보시고 다음 영화는 뭘 하는지 묻는 어르신들도 많아졌고요.” 요즘 어르신들의 관람문의에 전화받는 사람을 붙박이로 세웠을 정도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층이 노인층까지 넓어져, 어르신 단골도 심심치 않다며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영화관의 모습이 기쁘다고 김 매니저는 말한다.

장수 한누리시네마에서 보이는 모습은 이제 전북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지난해 김제 지평선 시네마, 무주 산골영화관, 임실 작은별영화관에 이어 올해 고창동리시네마, 부안마실영화관 등이 잇따라 개관하며 문화소외 지역에 새로운 문화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시지역이면서도 영화관람이 불가능했던 김제시의 경우 올해 9월까지 6만3천여명의 관람객이 들어 주민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전북도는 내년 진안과 순창에 작은영화관 개관을 준비 중이어서 주민들의 영화관 나들이가 더욱 가벼워질 것 같다.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라

목욕탕도 주민의 생활을 바꾸는 작은문화시설이기는 마찬가지다. 작은목욕탕은 1998년 안성면사무소 건축을 의뢰받은 건축가 정기용씨로부터 시작됐다. 건축가는 설계도를 그리기 전 주민들을 만나 어떤 면사무소를 짓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주민들은 면사무소는 뭐하러 짓느냐며 목욕탕이나 지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안성면주민센터에는 홀수일은 남자가, 짝수일은 여자가 목욕할 수 있는 목욕탕이 들어섰다. 봉고차 빌려 대전까지 출장 목욕을 다니던 주민들은 가까운 곳에서 고된 농사일에 지친 몸을 담글 수 있었다.

주민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의문을 가진 한 사람의 작은 수고는 2012년 도 사업으로 추진돼, 올해까지 18개의 작은목욕탕을 도내에 짓게 했다. 1천원~3천원이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작은목욕탕을 찾은 주민은 올해 9월까지 14만명. 무주군 4개, 고창 5개, 장수 2개, 남원, 익산, 부안, 진안, 김제, 정읍, 진안에 각각 1개씩의 작은목욕탕이 들어서 지역주민에게 최고의 인기시설이자 사랑방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작은’이 붙은 이름답게 홀수일과 짝수일 또는 요일을 정해 남녀를 구분하는 것도 작은목욕탕만의 재미있는 여탕과 남탕 구분법이다. 


작은목욕탕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전북도는 지난해 정부 희망프로젝트 시책의 롤모델이 된 작은목욕탕 사업이 농식품부의 지원을 받게돼 45개까지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운영비 절감을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연료비, 인건비 절약을 통해 지자체의 운영에 부담을 줄이고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춰지고 있어 우리농네 목욕탕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작은영화관, 작은목욕탕 등 작은 문화시설들은 전북에서 처음 시작해 국가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주민들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하는 작은 의문이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수요를 하나둘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주민들의 생활에 쓸모가 있는지, 주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정책의 첫째임을 ‘작은’ 시설들은 확인해준다.




문예회관의 변신, 시민은 즐겁다

김제문화예술회관



어떤 문화공간을 마련하느냐보다 어떤 내용을 채우느냐를 생각하지 않은 문화시설은 지역 주민들로 외면받기 십상이다. 거꾸로, 애물단지로 전락한 문화시설도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발길 끊이지 않는 문화현장, 교육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미래 고객의 교육을 책임지다

2009년 개관한 김제문화예술회관이 그렇다. 2004년 착공한 김제문예회관은 지역 주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과다한 예산으로 공사중단을 겪으며 가까스로 개관했다. 대공연장(488석), 소공연장(230석), 전시관으로 이루어진 김제문예회관은, 그러나 공무원과 지역주민의 문화시설에 대한 인지도 부족, 열악한 시 재정, 부족한 공연장 시설로 개관 후에도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반전의 기회는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김제문예회관의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예술회관으로 소풍가요’를 중심으로 한 문화나눔 프로그램들은 시민과 김제문예회관이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 주었고 현재의 김제문예회관을 만드는 초석이 됐다. 

김제문예회관이 주목한 것은 공연장이 아니라 복합문화센터의 기능이었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과 ‘행복을 드리는 곳’이 되기 위해 직원들이 똘똘 뭉쳤다. 그 첫 프로젝트가 주변 학교들이 시내 체육공원이나 산으로 현장학습을 가는 것을 보고 착안한 ‘우리는 예술관으로 소풍가요’였다. 

입시 위주로 학사를 운영할 수밖에 없는 한계로 모든 학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 낼 수는 없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하는 학교 수가 늘었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프로그램은 공연장을 처음 찾는 학생들을 위해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무대, 음향, 조명실 등 공연장 시설투어를 통해 공연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공연관람예절 및 문화예술명사를 초청해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후에야 공연을 관람하게 했다. 여기에 전시관 관람, 잔디광장 소풍, 학교 예술제 지원 등을 함께 함으로써 김제문예회관과 학생들의 거리를 좁혔다. 

난생 처음 공연장을 찾은 학생들은 김제문예회관의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공연을 관람하면서 문화에 대한 안목을 조금씩 키워 나갔다. 낯선 공간이던 공연장이 놀이터가 되고 학생들은 수준 높은 관람자가 돼갔다. 김제문예회관 강기수 팀장은 “문화공간의 이해 및 활용방법, 공연예술체험 등 교육적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은 현재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미래 고객인 학생들의 안목을 높여주는 계기도 될 것”이라며 “지역 청소년들이 문화적으로 소통하고 문화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도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문화수준을 끌어올리다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써 거리를 좁히기 위한 김제문예회관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천원의 행복’이라는 하우스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어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천원의 행복’은 뮤지컬, 오페라, 대중음악,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진행돼 청소년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도농복합지역인 김제의 특성을 반영한 ‘다문화가정과 함께 하는 문화나눔 협약’으로 다문화 가정을 포용하고, ‘장애인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 나눔 협약’으로 장애인들의 문화향유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공연장과 주민들의 거리 좁히기에 성공한 김제문예회관은 공연의 수준을 높여갔다. 열악한 재정으로 단체와 기업이 지원하는 공연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올렸다. 2010에 열린 국립 오페라단의 ‘나비부인’ 갈라콘서트는 김제 시내의 화제였다. ‘무슨 나비부인이 온디야’ ‘나비부인이 누군디’ ‘그거시 오페라는 것인디 꽤 괜찮더라고’ ‘나도 봐야 것네’ 하는 대화가 버스에서 오갔고 대극장 좌석이 모자라 소극장에서 영상으로 공연을 관람해야 했다. 

수준 높은 공연을 무료나 낮은 가격으로 무대에 올리며 시민들의 관람 수준도 자동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김제는 대중가수 공연이 아닌 클래식 공연에서도 매진 사례가 이어질 만큼 공연 관람문화가 성숙한 고장이 됐다. 그리고 김제문예회관의 이런 노력으로 2011년과 2013년 문화예술회관 운영 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제문예회관의 올해 테마는 ‘당신을 위한 빈자리’다. 지역 주민을 위한 빈자리를 마련하고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김제문예회관의 노력이 지역의 문화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작은 아이디어가 우리 삶을 바꾼다

익산희망연대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시민주도, 시민참여를 외치는 시대다. 하지만 여전히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인 듯 시민들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시민운동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공간을 열어주는 대중참여형 시민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익산희망연대(대표 김정필)는 느리지만 시민과의 소통을 통해 시민을 문화 소비자에서 문화 생산자로 변화시키고 있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시민단체

“시민단체가 거대담론 중심의 접근 방식이 아니라 합리적 대안이 되는 단체로 가야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단체, 시민이 생산자가 되는 지역사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11년 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민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한 젊은 청년들이 만들어낸 것이 익산희망연대입니다” 

이진홍 사무국장은 익산희망연대의 시작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때의 청년들은 중년이 되고, 그들이 지향했던 ‘대중참여형 시민운동’은 익산 시민 830여명이 참여하는 소중한 일이 됐다. 11년간 활동해온 단체답게 하는 일이 많다. 낡고 어두운 담장을 시민의 손으로 바꾸는 ‘벽화 자원활동’, 삼성동 어린이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며 시작한 ‘작은도서관 운동’, 소외된 이웃들의 밥상에 작은 행복을 전하고 있는 ‘행복도시樂 자원활동’은 시민들의 손으로 지역사회의 나눔을 실천하는 일들이다. 또 자신의 삶과 사회를 성찰해 보는 시민강좌 ‘공동체 시민아카데미’ 등 다양한 시민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그러나 사업보다 중요한 것은 익산희망연대의 동아리들이다. 시민들이 진행하는 익산희망연대의 사업에는 동아리들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벽화봉사단 ‘붓으로만드는세상’,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직접 배달까지 하는 <행복도시락>, 시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오디오북을 녹음하는 책녹음봉사단 ‘소리로나누는기쁨’, 시민들의 삶과 생활적 요구와 밀접한 사항을 주제로 정해 조사하고 공공기관에 제안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회창안 서포터즈’, 우리 지역의 문화유적 또는 둘레길, 산 등을 함께 걷는 ‘우리땅밟기 걸음마’, 지역의 문화예술전시공연 등을 함께 관람하는 ‘문화모꼬지’ 그리고 ‘독서회 BOOK소리’, ‘사물놀이반’, ‘오카리나반’, ‘축구동호회’, 40대 이상 남자회원들이 활동주제를 정해 한 달에 하나씩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임인 ‘남자의품격’. 시민의 관심사에 따라 활동하는 분야도, 범위도 다양하다.


시민이 낸 아이디어 시의 정책이 되다

익산희망연대의 사업 중에서도 시민과 공무원, 시의원이 함께 정책을 만드는 익산시민창조스쿨은 익산희망연대의 정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일이다. 익산시민창조스쿨은 2007년 시작된 익산사회창안대회가 시작이다. 이 대회를 통해 시민들이 낸 아이디어를 갈고 닦아 익산시 정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시내버스, 주민자치센터, 청소년자원봉사 등 일상에서 만나는 불편함에 대한 시민들의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9년 익산사회창안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탑천에서 미륵사지까지 가는 길’ 아이디어는 국토해양부에서 주관한 주민참여형 도시대학에서 1등을 차지하며 10억원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익산사회창안대회에서 제안한 아이디어가 전국에서 1등을 차지하자 시에서 희망연대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익산판 도시대학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2010년부터 익산시민창조스쿨을 열게 됐죠.”

익산시민창조스쿨은 시민이 낸 아이디어를 학습과 토론을 통해 완성도 높게 만드는 장이 된다. 두 달여 동안 시민과 공무원, 시의원이 함께 참여해 아이디어를 내고, 현장을 조사하고, 추진전략, 검토의 과정을 거치며 실현가능한 구체적 프로젝트로 만들어내는 것. 매년 10여 팀이 참가하는 창조스쿨에서 만들어진 프로젝트를 익산시는 현실화시킬 방안을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가까운 곳으로 도서관의 책을 배달하게 하거나, 함열의 시장과 다문화공간을 묶어 익산 이민여성센터를 만든 것, 직거래 장터인 익산 새벽시장, 왕궁리 역사관 천년별밤캠프는 모두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 정책에 반영된 사례다.

“익산시민창조스쿨을 통해 시민 아이디어가 30%는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과 공무원, 시의원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신뢰가 생긴다는 거죠.”


익산희망연대를 지키는 이 사무처장과 손은정 회원·사업팀장, 오상열 벽화사업팀장, 원경 홍보팀장은 익산희망연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회원으로 참여하다 사무국직원이 된 사람들. 자신만의 삶을 살다 익산희망연대를 통해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이 사는 지역을 더 살기 좋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익산희망연대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 

익산희망연대는 시민들의 꿈에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회창안사업을 상시적으로 시행하고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시민 스스로 할 일을 찾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를 바꾸겠다는 욕심보다, 시민들과 즐겁게 지내며 그 속에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익산희망연대의 최고 보람이다. 그들의 꿈과 이상이 익산전체로 확장돼 곳곳에서 문화생산자가 된 시민이 더 나은 익산시를 만들어가길 희망한다.




예술가 없는 예술의 거리

주목받던 군산 예술의 거리를 가보니


2002년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사건. 14명의 여 종업원이 감금돼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화재사건을 조사하면서 현금 보관각서 등 반인권적인 환경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의 실상이 밝혀져 충격은 더욱 컸다. 

2009년 이 아픔의 현장에 예술인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시도였다. 일상에서 문화를 즐기고, 구도심을 문화로 살려보겠다며 작업실, 카페, 공연장 등 10여 곳에서 예술인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은 ‘개복동 예술의 거리’로 불려진다. 

그로부터 5년, 다시 찾은 군산 개복동은 2002년의 황량한 모습 그대로다. 2012년 전라북도 문화예술의 거리 사업이 진행된 거리라고 보기에는 힘든 풍경이었다.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몇년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다 빠져나가고 없다”고 했다. 예술인과 주민의 이해 부족 그리고 지자체의 섣부른 사업이 가져온 결과였다.


자생적 문화생태계를 파괴하는 시 사업

‘군산 개복동 예술의 거리’는 전북 최초의 극장이 위치했던 군산 근현대문화의 중심지였다. 최고의 번화가를 이뤘던 거리는 상권의 변화에 따라 몰락한 구도심이 됐다. 2009년 예술가들이 이 거리에 들어선 것은 성매매업소 참사에 대한 아픔을 간직한 이 곳을 문화와 예술로써 치유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일상에서 문화를 접목하기 위해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12년 군산시가 ‘군산시 문화예술의거리’를 조성하겠다는 사업을 발표하면서다. 최초 도비와 시비 50억 규모의 사업을 준비했으나 전북도와의 의견차이를 보인다. 전북도는 ‘장미동 동녕고개거리와 영화동 일대와 영화시장’을 대상지로 추천하였으나 군산시는 개복동이 민선 5기 공약지역이며 공간조성을 위한 문제가 없다면 거점공간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군산시 문화예술의거리’ 사업은 18억원 규모의 ‘시민예술촌 조성 사업’으로 전환되지만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더 큰 문제는 예술인과 주민간의 갈등이었다. 민선 5기 공약사업 대상지라는 기대감으로 개복동이 술렁였다. 주민들과 예술인들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시는 수수방관했다. 예술인들이 하나둘 거리를 떠나갔다.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는 2013년 “거리조성 후 5년째를 맞고 있지만 개복동 문화예술의거리는 활력이 없다. 활력이 없다는 것은 개복동이 매력적인 문화공간으로 시민들과 젊은 층이 찾아오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문화예술인들에게도 창작과 거주 및 수익구조를 낼 수 있을 만큼의 장소가 되지 못하는 것”이라며 “‘개복동 문화예술의거리’라곤 하지만 군산시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기에 위해 찾지 않고 있으며, 거주했던 예술인들도 떠나는 현실”을 우려하기도 했다.


문화예술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전북도의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 사업’은 지역문화예술의 생산과 소비뿐만 아니라 향유의 문화를 생활 일상적 활동 속에서 활성화시키기 위해 특화된 거리와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취약한 지역 문화예술 생산역량을 강화하고 도시이미지를 ‘문화도시’로 만들자는 프로젝트다. 

그러나 이 사업은 오히려 자생적으로 진행되던 예술인들의 활동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개복동 시민예술촌’사업은 임대료와 건물리모델링만 쓰고 대책없는 공간이 되거나 특정인을 위한 공간으로 전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만 무성하다. 군산시 임미숙 예술진흥계장은 “임대료가 비싼 번화가였던 특성 상 경제적인 면에서 여유롭지 못한 예술인이 버티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우일극장이 공연장, 영화관, 동아리연습과 세미나 공간으로 바뀌면 시민과 예술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우일극장의 리모델링으로 시민예술촌 거점공간이 마련돼 올해 12월 시험 운행되지만 아직 뚜렷한 운영주체도 선정되지 않아 그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임미숙 계장도 “주민들이 아직도 잘나가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월세 등을 비싸게 받고 있다”며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완강한 부분이 있는데 서로 변해야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예술의거리 초기에 합류했던 예술인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통될 텐데, 곳곳에 거점을 만들라며 인위적으로 진행한 사업진행방식이 잘 못됐다는 것이다. 군산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이상훈 대표는 “예산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산이 들어오면서 조화가 깨진 것이다”며 “먼저 문화생태계를 만들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이런 노력없이 자본이 투입된 것이 화근”이라고 말한다. 현재 진행되는 거점공간 조성사업도 주민들과의 관계 개선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개복동 예술의거리 조성 사업’의 결과는 참담하다. 이런 상황이 전북도에서 진행하는 전주 동문예술의 거리 등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섣부르게 투입된 예산이 기존의 문화생태계마저 파괴할 수 있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예술인과 주민의 소통문제는 자본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예술가들이 거리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을 가지고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가다. 그리고 지자체의 역할은 그들이 주민들과 서서히 소통하며 시민과 예술인이 함께 즐기는 거리와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예술인과 주민 그리고 문화시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지속적으로 문화예술이 생산되고 소비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진정한 예술의거리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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