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6.1 | 특집 [오래된 가게]
버스 종점 '점빵들'의 그 자리 이야기
문동환(2016-01-15 09:37:41)

 

 

'조금은 쓸쓸한 풍경. 하지만 곧 따뜻해지는 시절이 거기 있다.
수명을 다한 물건과 기능이 존재하는 공간에 더이상 트렌드는 없다.
그러나 단지 유행을 좆지 않았거나 쓰임이 줄어든 것들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것만은 아니다.
골목 상권이 무너진지 오래, 기억 속 거리와 동네 풍경은 하루가 다르다.
변화무쌍한 시절을 건너며 오늘도 문을 여는 가게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
가끔씩 찾아오는 단골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
유년의 그리움을, 청춘의 기억을 불러내어 우리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공간의 존재.
도시의 오래된 시간을 붙잡고 있는 가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도시의 소중한 힘이 된다. '

 

 

 

 

 

아파트 단지가 점령해버린 도시.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멀게 느껴진다. 날씨는 쌀쌀하고 어스름은 짙어간다. 교도소 정문은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고개를 돌리니 모악산 자락이 너른 들녘을 품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쪽과 저쪽, 전혀 다른 세상의 경계선을 밟고 있는 것 같은 생경함은 어쩔 수 없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모악산이나 구이를 갈라치면 이 고개를 지나곤 했다.

 

 

문정리 고개의 기억, 일흔 이발사의 추억
전주와 운암을 오가는 버스가 아침저녁으로 한 대밖에 없던 시절, 문정리 고갯길은 오솔길이었다. 버스가 한 번 지나가면 뿌연 흙먼지가 가득했다. 눈이 많이 오면 아이들은 눈 쌓인 고갯길에 물을 뿌리고 빙판길을 만들어 버스가 오가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기도 했다. 해질 무렵이면 장년들은 고갯마루에 모여 윷을 놀았고 거나하게 술잔도 기울였다. 이제는 겨우 70호 정도가 남았고 젊은이라고는 환갑 넘긴 할아버지가 고작이지만 아이들 뛰노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모든 게 과거형이고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이야기들. 하지만 문정리 고개에는 그 시절을 오롯이 머금고 있는 곳들이 있다. 그 안에 있다 보면 왠지 '잘 늙은 절 한 채'가 생각날 정도로 살가운 정감을 느끼게 된다.

 

"국민핵교 졸업허고 지금까지 했응게 햇수로 55년, 56년은 되얐을 거요"

 

한 평생 이발만 해오신 평도이용원 송만년 할아버지. 지금 자리에서만 근 40년 가까이 이발을 하고 계신다. 올해 일흔의 노령이고 불편한 허리에 암투병까지 하고 계시지만 이른 아침 늦어도 7시면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마을에 사람들이 없고 교통편이 좋아져 손님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전주 장동이나 상운암에서까지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들이 있다. 문정리 토박이신 송할아버지는 7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이발 하나로 여섯 동생들과 삼남매 자식 모두를 어엿하게 시집장가 보내셨다. 이제는 쉬실 법도 하지만 자식들한테 손 벌릴 수 없고 평생 해온 일이라 손을 놓기가 쉽지 않다. 할아버지 성함대로 만년(萬年)은 하실 작정인가. 속으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빵' 하나가 지킨 문정리의 50년 시간
간만에 맡아보는 석유난로 냄새에 취해가기 시작할 무렵, 한 아이가 쭈뼛쭈뼛 문을 열고 이발소 안으로 들어온다. 송할아버지는 다리를 절룩거리시며 성큼성큼 걸어가 볼에 뽀뽀를 쪽쪽. 외손주는 군것질 할 게 있다며 들렀단다. 할아버지가 '사주마' 하고 이발소 밖을 나서자 뒤를 따랐다. 어스름 깔린 문정리 고갯길 위의 할아버지와 손자의 뒷모습은 멀어져가는 추억마냥 아련해 보였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바로 옆 문정슈퍼로 들어갔다. 외관과 가옥구조가 족히 사십 년은 되어 보이고도 남는 집이었다. 물목도 다양하지 않아 슈퍼라기보다는 조그만 점빵 수준이었다. 한켠에서는 동네 분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두 분이 과자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계셨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사이, 외손주는 음료수를 몇 개 골랐고 나는 대신 값을 치렀다. "아저씨가 사주는 게 아니고 할아버지가 사주시는 거야. 할아버지가 아저씨한테 좋은 말씀 해주셨거든" 송할아버지는 고맙다며 겸연쩍게 웃으시며 인사를 건네셨다.

 

"살림집이었는디 점빵으로 바꾼 게 한 오십 년은 됐다고 합디다"

 

한 때 잘나가던 사장님에서 이제는 점빵을 지키고 있는 60대 아저씨의 말이다. 50년... 무슨 점빵 하나가 반세기를 거치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인가. 그럼 평도이용원보다 더 역사가 유구한 셈인가. 하긴 송할아버지께서도 문정슈퍼가 평도이용원보다 오래 되었다고 하셨으니 허튼 증언은 아닌 듯했다. 아저씨는 앉으라는 시늉을 하시고는 동네 이야기를 해주셨다. 상관이 고향이지만 13~4년 전부터 이곳으로 와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다고 했다. 본토박이라는 옆 테이블의 두 분 할아버지도 얘기를 보태주셨다. 글월 문에 우물 정 해서 문정이고 마을에 우물이 샘솟는 곳이 있다는 얘기부터 옛날에는 마을이 꽤 컸다는 얘기, 교도소 때문에 마을이 쇠락했다는 등등의 얘기를 해주셨다. 점빵 주인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편안하고 평온했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릴 적 아랫목에서 할머니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것 같았다. 처음 차에서 내려 느꼈던 생경함은 온 데 간 데 없고, 나는 아련한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