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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 | 특집 [가족 그리고 일]
70년 가업 잇는 아버지 송현귀, 아들 송진우
100년 국수를 꿈꾸는 3대의 정성
문동환(2016-02-15 09:35:06)

 

 

얕은 골목길에 자리한 송철국수는 단조로운 간판을 내걸고 볼품없는 여닫이문으로 손님을 맞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사무실이랄 것도 없는 작은 공간이 있고, 서너 걸음을 옮겨 더 들어가면 넓지 않은 공간에 실내 보관창고와 건조장, 생산라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21세기의 풍경이라고 하기에는 비현실적이다.
젊은 사장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작두날 같이 생긴 절삭기로 건면(乾麵)을 일정한 길이에 맞춰 잘라내고 있었다. 송철국수를 이끄는 사장은 올해 서른넷의 송진우씨. 진우씨는 얼추 70년 전통의 '송철옛날국수'를 3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송철국수는 진우씨의 할아버지가 1940년대에 일제 징용에서 돌아오신 이후 시작됐다. '송철'이라는 국수공장 명칭도 진우씨 할아버지 성함의 앞 두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1973년에 돌아가셨거든요. 그 때부터 아버지가 이어받아서 하시게 됐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진우씨가 본격적인 가업으로 잇게 된 것은 오륙년 전부터였다.  진우씨는 어엿하게 대학을 나왔지만 송철국수를 택했다. 딱히 '볼품'이 있어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큰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국수가 그의 선택지가 된 이유는 뭘까.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방향을 바꿔서 약대로 다시 진학해볼까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냥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된 거예요."기대도 편견일까. 3대째 가업을 잇고 있으니 뭔가 특별한 이유나 소명감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의 답은 '그냥 자연스럽게'였다.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부모님이 반대했죠. 특히 아버지가 강력하게 반대를 해서 배달 갈 때도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아버지 몰래 밖에다 국수상자 내놓으라고 하고 배달 가고 그랬죠. 그러다가 '천년전주기네스'에도 오르고 아버지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안집이 국수공장과 바로 붙어 있는 탓에 국수공장은 어렸을 때부터 진우씨의 놀이터였다. 건조장 바닥에 널려 있는 무거리(건면을 절삭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잔여물)를 밟으며 놀곤 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국수공장 일을 도왔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진우씨에게 송철국수는 가업을 승계하는 '대의'라기보다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익숙함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과 같은 것이었다.

 

송철국수의 주 고객은 국수집이다. 국수집마다 원하는 면발이 있어 맞춤형으로 굵기에 따라 소면, 중면을 각기 다르게 생산한다. 물론 맛은 한결같다. 단골손님들이 멀리서도 찾아오는 이유다. 대구, 제주, 심지어는 미국에서 한국에 들른 손님이 잊지 않고 찾을 정도다.
시작은 익숙한 것으로의 회귀였지만 실제 국수공장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감당해야 했고 운영자로서 고민해야 할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수지타산이 맞는 일이 아니었다. 열 사람 이상이 먹을 분량의 1.8kg짜리 건면이 단돈 4천원에 불과하고, 그나마 겨울은 비수기라 그 해에 번 돈을 모두 까먹을 수밖에 없는 게 국수공장이었다.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진우씨는 '정담'이라는 브랜드로 오색(五色)국수를 개발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오색국수는 익산고구마와 부안뽕잎 등 지역 향토농산물을 천연분말로 활용해서 국수에 색을 입혀 생산하는 건면이다. 인공색소를 쓰면 채도가 깊어서 보기에 좋고 생산단가도 부담이 없지만 바른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천연분말을 쓰면 색깔이 파스텔톤으로 나와서 채도가 좋지 않아요. 분말 값도 원재료인 밀가루 보다 비싸서 배보다 배꼽이 커요. 그래도 제 생각에는 이게 맞는 길이기도 하고, 나름 고급화 전략으로 브랜드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2년 반을 투자해서 개발한'정담'은 아직 충분히 구축된 브랜드는 아니지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한 개도 팔지 못할 정도로 고전했지만 이제는 친구 두 명이 가세해서 브랜드 마케팅 작업을 할 정도로 정성을 쏟고 있다. 선물유통시장에도 진출하고, 송철국수와 연결된 국수집도 개업할 생각이다. 이밖에도 공장 내부를 정리해서 옛방식의 건면생산을 둘러볼 수 있도록 견학과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 구상도 가지고 있다. 생산은 옛 방식을 고집하되, 전반적인 운영은 현대화된 마케팅과 홍보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송철국수의 3대 대표 진우씨의 생각이다. "그래도 재밌어요. 재미없으면 못하죠. 앞으로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송철국수만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도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오래된 고목을 베는 것은 나무 하나를 베는 것이 아니다. 나무가 함께 해온 세월을 모두 베어버리는 일이다. 가업을 잇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너나없이 번듯한 직장에 목을 매고, 돈 될 만한 창업에만 뛰어들며 돈만 좇는 시대. 전주 유일의 건면공장을 가업으로 잇는 진우씨의 땀과 열정이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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