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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 | 칼럼·시평 [문화시평]
농악작품으로 바라본 '도리화 귀경가세'
송기태(2016-08-16 10:19:04)





농악이 작품으로 회자된 적이 있던가? 거창하게 작품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농악의 연희형태나 내용은 작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농악은 창작물이 아니라 제의나 노동과 관련된 상관물로서 '전승되어 온 연희'라는 관점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산제나 마당밟이, 걸궁, 풍장 등의 상황적 맥락이 농악의 존재론적 위상을 좌우해왔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악을 더불어 즐기는 놀이의 범주로 인식한다. 농악이 작품이라기보다 전승연희나 세시적인 민속연행물로서 더욱 큰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리화 귀경가세'는 농악이 기대고 있던 상황적 맥락을 거세하고 작품의 길로 접어든 농악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말기 고창에서 소리꾼을 길러내던 신재효와 그의 제자 진채선의 이야기를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소리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소리를 하는 배우가 주·조연이지만, 작품제목을 '버라이어티 감성농악 – 도리화 귀경가세'로 하여 농악작품임을 강조한다. 농악의 요소를 작품 곳곳에 배치하면서 작품의 극적 갈등이 느슨해지는 측면이 있는데, 창극이나 마당극이 아닌 농악작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 편의 흥겨운 굿판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은 당산굿부터 시작하여 굿판을 열게 된 사연을 소개하고, 진채선이 신재효의 문하생으로 들어와서 소리공부를 하여 경복궁 낙성연에 참가한 후 두 사람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도리화가를 부르며 끝이 난다. 대본에는 전체 과정이 여덟 개 마당으로 나뉘는데, 공연의 흐름은 크게 신재효와 진채선의 만남, 경복궁 낙성연, 도리화가를 부르며 그리워하는 세 장면으로 진행된다. 고창에서 한양으로 극적 공간이 전환되는 경복궁 낙성연부터는 공연의 진행을 남사당패의 덜미(꼭두각시)가 맡는다.
공연은 신재효와 진채선을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주인공의 극적 연기가 강조되지 않고 농악의 연희와 진행자의 역할이 부각된다. 그래서 '도리화 귀경가세' 공연에는 고창농악의 당산굿, 문굿, 판굿, 마당밟이, 개인놀이가 모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행자도 농악대의 잡색을 겸하기도 한다. 처음 시작할 때 열림굿을 당산굿으로 하고, 춤굿에 맞춰 배우들이 입장하여 한판 신나게 판굿을 울린다. 진채선이 신재효의 문하로 들어갈 때는 영기를 세워놓은 문굿을 친다. 옛날 걸궁패가 마을로 들어갈 때 문굿으로 입사식을 치르듯이, 진채선이 '소리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고 소리꾼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문굿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경복궁 낙성연은 전국의 예인·명인이 집결하여 예능을 뽐내는 자리로 진채선의 소리와 고창농악의 개인놀이, 타 지역의 연희가 펼쳐진다. 이후 공연의 마지막에는 신재효와 진채선의 마음을 춤과 대동굿으로 표현해낸다.
'도리화 귀경가세'는 소리꾼들의 이야기다. 판소리에 기반을 둔 창극으로 작품을 만들면 극적 짜임새가 훨씬 더 강화될 것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극적 갈등이 긴박하게 진행되지 않아 서사적으로 밋밋한 느낌이 들고, '소리꾼 이야기인데 소리 한번 시원하게 듣는 대목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공연은 농악작품으로서, 극의 전형을 따르지 않고 굿의 전형을 추구한다. 일반적으로 극은 갈등을 부각시키고 그로 인해 긴장이 유지되며 결말이 도출된다. 이에 비해 굿은 풀이를 부각시켜서 맺힌 것을 풀어내고, 염원을 담아내는 해원을 추구한다. '도리화 귀경가세'는 신재효와 진채선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갈등으로 인식하지 않고, 맺힘의 풀림과 염원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주인공들의 극적 전개에 심각하게 몰입되지 않도록 농악을 배치하여 흥겨움을 유지한다. 또 시종일관 당산이 있음을 인지하게 하고 당산굿 등을 통해 염원과 해원의 정서를 부여한다.
서두에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농악은 아직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농악의 전형적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남사당이나 전문걸궁패들의 기예에 가까운 연희, 풍년농사를 갈구하며 농사 과정을 표현하는 농사풀이, 걸궁패와 마을간의 힘겨루기를 동반한 문굿, 군사훈련 과정을 농악으로 작품화하여 군사굿 등은 오래 전부터 구축해 온 농악의 작품이다. 다만, 전승성이 강해 작품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할 뿐이다. '도리화 귀경가세'는 고창농악의 문굿과 판굿의 완성도 높은 작품성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면이 짧아 복잡다단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문굿'·'판굿'이라고 하는 굿(농악)의 전형이 '도리화 귀경가세'의 작품세계와 서로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전형은 고창농악보존회의 창작공연 전반에서 감지되는데, 이번 '도리화 귀경가세'는 굿의 전형성을 기반으로 한 농악작품의 특성을 잘 살려낸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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