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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 칼럼·시평 [문화시평]
지역을 넘어 꽃으로 피운 현대무용의 금자탑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30주년기념 공연 <사포의 겨울 숲>
이상일(2016-11-17 14:10:58)




그 시그널이 이번 30주년 기념공연 <사포의 겨울 숲>의 환경과 공동체 상징으로, 우화로 꽃을 피운 셈이다.
그런데 이번만은 사정이 좀 다르다.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창단주체이자 예술감독이었던 김화숙교수의 정년퇴임을 축하하고 포스트·김화숙의 사포현대무용단 행로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김화숙현대무용단 창단 30주년 기념공연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작품 <사포의 겨울 숲>자체의 평가에는 나 같은 <주관적 객관화>, 내지 <객관적 주관화>의 인연이 적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김화숙 예술감독이 정년퇴임한 다음 호남 현대무용을 대변하던 사포현대무용단이 어떻게 존속될 것인지 궁금해 하던 관객들에게 이번 기념 공연은 <사포의 겨울 숲>으로 리콜되었다. 말하자면 사포의 겨울 숲은 눈 덮힌 산야의 추위와 바람 부는 지역 환경에서 나무들 끼리 몸을 부비며 겨울을 나는 사포현대무용단 공동체의 상징으로 다가와 겨울의 삭막한 환경 가운데서도 이를 버티며 무용예술을 지켜 나온 한국무용문화 공동체의 우화(寓話)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는 사포현대무용단으로 자리매김하며 겨울을 이겨낼 것을 스스로 선언하였다. 겨울 숲의 적막한 풍경 속에 들리는 소곤거림을 춤의 언어로 옮겨 읊을만한 사포예술가들은 이미지 네 개로 그들의 전 역량을 시적 이미지로 바꾸어 이어간다. - 1. 새벽 강가에서, 2. 흔들리다, 3. 나목(裸木), 너에게 가려고… 4. 그들은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롤로그--하얀 등짝을 보이는 여인의 긴 검은 치마폭을 끌며 미끄러지듯이 퇴진하는 서막(序幕)과 연결된 에필로그는 다시 피어나는 사포 공동체의 활기로 미래를 이어간다. 벌거벗은 나무의 숲은 어쩌면 강물 같기도 하고 한 많은 여인의 긴 치마폭 같기도 하면서 겨울을 이기고 서로 살갗을 부비며 봄을 기다린다--- 
사포무용단은 겨울 숲에서 느린 자연의 걸음 거리를 형상화하며 숲의 정령(精靈)들과 만나 솔로, 듀엣, 그리고 트리오로 이미지들을 엮으며 그들의 30년 역사를 보편화한다. 그들의 공동체-무용예술이라는 정신적 결합력이 사포현대무용단이라는 단체의 끈질긴 생명력을 온갖 사회적 압력과 고통과 힘든 연습기간을 이겨내게 했다. 그래서 <사포의 겨울 숲>은 맑고 투명한 기량을 뽑낸다. 거친 환경을 고발하면서도 사포현대무용단의 숲의 역사를 서정시로 읊는다. 앙상블은 하나로 뭉쳐 서툴고 처지는 부분이 없어서 사포현대무용단은 그 자체로 살아나갈 수 있는 저력을 보여 준다. 계적의 강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역사가 앙상한 나목(裸木)의 영상으로 바뀌고 흑백의 군무 의상 색갈로 드러나는 추위의 환난가운데서 떠오르는 사포무용단의 지난 나날은 결코 영광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처럼 예술감독과 역대 대표들 그리고 단원 한 사람 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역사와 어려움을 넘어 숲으로서의 공동체적 역사와 고난이 작품 '사포의 겨울 숲' 에 여려 있다. 지역에서는 서울무용단으로, 서울에서는 호남지역공연단으로 차별화되었고 각 지역문화재단으로 내려온 지원금 배분에 있어서도 그런 차별의식이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호남지역 현대무용 정착을 위한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30주년 기념 공연조차 아무런 혜택을 주지 못한 호남 무용문화의 편협성은 부끄러운 공동체의 일면이아닐 수 없다.
<사포의 겨울 숲>은 김화숙 안무에 한혜리 대본으로 굳어진 현대무용단 사포의 생리와 감각, 그리고 팀의 캐릭터를 작품으로 펼쳐 보이는 하나의 전범(典範)처럼 보인다. 이런 모델은 호남 현대무용의 한 시범이자 극복과 발전의 단계일 수 있다. 숲의 악한 의지가 겨울의 고난이라면 숲의 선한 의지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 정령들의 군무가 발레 <지젤>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예술감독이 떠나도 사포는 자립하는 용기로 호남에 사포현대무용단의 기치를 높이 들 만큼 성장해 있다. 그만큼 팀웍이 짜여져 있고 흐트러지는 호흡이 없다. 튀는 개인기를 보이지 않아서 30주년 기념공연에 들인 땀 값을 드러나게 한다. 박진경 대포의 사포현대무용단은 김화숙예술감독의 주정(酒精)을 그들의 체내로 옮겨 담아 기품 있는 포도주로 익혀낼 것 이다.

지독히 매력 없는 특정대표의 이름만을 딴 범용(凡庸)한 무용단들이 얼마나 즐비한 대한민국 무용계인가. 거기에 신비한 한 포인트 악센트를 둔 사포의 이름은 보석처럼 빛난다. 그 찬란한 빛을 쏟는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는 김화숙현대무용단과 사포현대무용단을 정서적으로 부드럽게 만들면서 동학(東學)의 원혼을 먼 북해도에서 모셔올 줄 아는 역사의식과 맺어져 있고 광주 민주화 3부작(1.그 해 5월, 2. 편애의 땅, 3. 그들의 결혼)같은 치열한 현대적 정치·사회의식으로 불타오르기도 한다. 꽃잎 같은 사포의 한 포인트가 우리 현대사회 구조의 드라이한 그늘에 따뜻한 살결의 온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저만치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작품들을 보면 창단 30년 세월의 금자탑에 가장 빛나는 기치(旗幟)가, 다시 말하거니와, 동학의 역사의식과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치사회의식이고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무엇보다도 부드러운 서정성 짙은 인간미의 예술작품 계열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예술 중앙집권 체제의 바람 속에서 지역문화의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한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30년 예술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나는 결국 무용예술 창작에 동참하지 못하는, 예술집단에 거리를 둔 일개 비평가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괴(自愧)하면서 지원과 후원과 성원에다 인간적 교류를 강화해 사포무용단이 한국무용계를 넘어 세계무용계에 금자탑을 쌓게 되는 날까지 그들에 대한 따뜻한 인간 띠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 시그널이 이번 30주년 기념공연 <사포의 겨울 숲>의 환경과 공동체 상징으로, 우화로 꽃을 피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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