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7.2 | 칼럼·시평 [문화시평]
'마음'과 '마을'을 잇는 마을공동체미디어
「전라북도 마을공동체미디어 활성화 지원 조례」 제정을 보며
손주화(2017-03-07 12:49:29)



산후조리 꿈도 못 꾸고/하루종일 물속에서 다슬기를 잡다보면/젖이 퉁퉁 불어/하루종일 배곯고 있을 아이 생각이 나네/ 중략 /글자모르는 걸 들킬새라 발만 동동/하염없이 버스 기다리다 막차를 타네/내 새끼들 배곯리지 말자/이 악물고 다슬기 잡아 파느라/정작 내 새끼들 뱃속에선/쯜쯜쯜 시냇물 소리가 나네/그 세월 견뎠더니/이제는/글자보고 버스 타고/글자보고 화장실 가녜. (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 발행. <할미그라피>. 2017)


최근 <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에서는 한글을 깨친 문해교실 할머니 스물한 분의 손글씨와 그에 얽힌 솔직담백한 인생을 담은 <할미그라피>를 출간했다. 작년 창간한 <마을신문 해리>도 마을신문 창간 전 <개념어 없이 잘 사는 법>을 출간하며 그 시절 잘만 살아 냈던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두 사례 모두 할머니 개인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한시절 그 마을을 살았던 사람들이 주인공인 마을 역사의 재구성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념을 개켜넣어 무거워지지 않고, 이런저런 수식으로 꾸며지지 않은 그들의 삶을 조망하고 일상의 주체로 세워놓는 작업들이 마을미디어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도심 지역에서는 대안매체로서의 마을미디어 활동도 활발하다. 작년 재창간한 <아중마을이야기>는 통반장들이 의욕적으로 기자활동을 하고 있다. 통반장을 통해 들어오는 생활 불편상의 민원이 많은데 이러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행정에 대안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들이 수렴되고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은 고무적이다.

티브로드 전주방송 <우리동네 TV>는 그동안 인쇄 매체 중심으로 전개되던 마을미디어 운동이 시민방송으로도 가능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시민제작집단인 <우동TV제작단>, <마을신문 전주네트워크>와 중간지원조직으로서의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유통 플랫폼으로서의 <티브로드 전주방송>의 협력체계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처럼 작년은 마을미디어 성장이 두드러지며 의미 있는 변화가 지속되었는데 지역주민의 민주적 의사소통 강화와 참여적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공동체 문화의 복원과 활성화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 마을공동체미디어의 의미를 둘 수 있다.

다양한 마을공동체미디어 모델이 등장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어야 할 현 시점에서 작년 말 제정된 「전라북도 마을공동체미디어 활성화 지원 조례」(이하 조례)는 의미가 크다. 2016년 12월 30일 전국에서 최초로 제정된 마을미디어 조례는 그 동안 부재했던 마을공동체미디어의 개념을 명문화하고, 도지사로 하여금 마을공동체미디어 육성 및 지원의 책무를 규정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례가 선언적 의미를 넘어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당초 원안에 포함됐던 중간지원조직이나 사무국 등 집행체계가 삭제됐고, 사업관련 예산추계가 생략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을공동체미디어위원회는 조례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장치다. 이번 조례가 무늬만 지원조례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라북도는 위원회의 조속한 구성과 운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을공동체미디어에 대한 지원도 공동체미디어의 다양성, 자율성, 지속성이라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행정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마을공동체미디어는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집단들이 공동체 내에서 스스로의 판단과 합의를 통해 매체의 편집과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독립미디어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지원조례 제3조(기본원칙) 2. 주민들은 자발적인 참여와 '정치적인 중립'을 견지하여야 한다는 조항은 오히려 지원기관의 자의적 개입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정치적 중립'이란 용어가 가진 다의성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에 대한 판단조차도 마을공동체미디어 스스로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마을공동체미디어를 두고 '마을'과 '마음'을 잇는다고 한다. 주민참여 및 과정 중심의 공동체활동에 가장 적절한 형태가 바로 공동체마을미디어다. 결국 공동체마을미디어의 활성화는 지역공동체의 복원 및 강화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인 동시에,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지역공동체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지원구조는 필수적이다. 지원조례의 실질적 운영과 조속한 시행에 전라북도가 적극 나서기를 촉구하는 이유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