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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 | 칼럼·시평 [문화시평]
전통이 탄탄해야 마당창극도 눈을 뜬다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
최동현(2017-07-24 14:01:26)



<마당창극, 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가 지난 5월 27일부터 공연에 들어갔다. 이 공연은 10월 14일까지 매주 토요일에 공연된다고 하니, 장장 5개월에 걸친 대장정이 펼쳐질 것이다. 이 공연은 전북문화관광재단이 '2017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으로 기획한 것으로 전주 등 도내 5개 시군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는 전라북도에서 이루어지는 전체 공연의 일부인 셈이다.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은 201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공연은 야간 관광 콘텐츠 발굴을 통해 체류형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 공연의 기획 의도를 따져보는 것은 이 공연이 처음부터 순수한 예술적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의도 속에는 이 공연이 순수한 예술적 성취에 의해 평가될 대상이 아니고, 관광객 유치라는 매우 실용적인 결과에 의해 평가될 대상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목적 자체가 그러하다면 평가 또한 관광객 유치의 성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순전히 관광객 유치라는 실용적 성과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도 옳지는 않다. 그렇다면 구태여 전통 예술에 기반을 둔 작품만을 공연할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광객 유치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누구나 다 좋아하는 대중음악을 공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결국 이 공연은 관광객 유치라는 실용적 목적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이러한 평을 쓸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우선 이 공연은 '마당창극'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 용어는 2012년 전북문화관광재단이 기획한 <해같은 마패를 달같이 들어메고>에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당창극'은 공식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용어는 아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없었던 새로운 장르의 공연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공연이 새로운 장르 창조에 성공했는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마당창극'은 '마당'과 '창극'의 복합어이다. 그러니까 마당창극은 마당극과 창극이 복합된 공연물이라는 것을 뜻한다. 마당극은 "한국 전통연희의 공동체적 성격을 계승하여 무대와 관객의 적극적이고 집단적 소통과 시공간의 놀이적이고 유연한 운용을 핵심적 특징으로 한국 현대에 성립된 연극 양식"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를 통해서 마당놀이가 전통 연희의 특징인 '소통'과 '놀이'를 중심으로 구축된 장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극'은 "연극화된 판소리"로 정의할 수 있다. 창극은 연극 양식을 따랐기 때문에 관객과의 소통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장르가 아니다. 놀이의 요소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창극은 극이되 판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양식이다. 그러므로 마당창극은 명칭에서부터 공연의 외형적 형식은 마당극을 따르고 내용은 판소리를 추구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2012년부터 6년째 이어지는 이 공연들이 처음부터 표방한 새로운 양식의 창조에 성공했는가? 내가 평가하기로는 부정적이다. 우선 마당창극은 '창극'으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 버렸다. 창극과의 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멀어져서 이제는 '연희'라고 할 수는 있으나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소리는 줄어들고 놀이의 요소는 늘어나 극 전체의 핵심 요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관광객 유치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판소리 혹은 창극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진정으로 마당창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자 한다면 보다 더 깊은 고민과 통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를 살펴보기로 하자.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는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가 황성 맹인 잔치에 참여하여 눈을 뜨는 데까지를 '재해석'했다고 한다. 뺑덕이네와 황털은 황성에서 열리는 맹인 잔치를 이용해서 '황성 블라인드 투어 관광단'을 모집하는데, 전국에서 몰려든 맹인들은 서로 관광단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 장기를 선보인다. 이 대목은 이미 국립창극단에서 공연한 <청>에서 성공적으로 재창조한 바 있다. 그런데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에서는 이 부분이 맹인 잔치 참여가 아니라 관광단 참여로 바뀌었다. 원작에 등장하는 황봉사는 황털로 재창조되었는데, 뺑덕이네와의 관계는 원작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부분의 재해석은 원작과는 너무 거리가 있어서 지나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인물은 카페 졸리의 주모 안젤리나이다. 안젤리나는 심봉사가 황성 가는 길에 만나 부부가 되는 안씨 맹인을 재창조한 인물인 듯하다. 심봉사는 황성 가는 길에 들른 카페에서 안젤리나를 희롱하는 맹인들로부터 안젤리나를 구해주고, 안젤리나는 뺑덕이네와 황털에게 전재산을 털린 심봉사를 도와 황성 잔치까지 동행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런데 안젤리나는 너무 현대적인 인물이라 부자연스런 느낌이 든다.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에는 두 번의 잔치가 나오는데, 앞 부분의 관광단에 뽑히기 위한 맹인들의 장기자랑, 뒷부분의 궁궐 잔치에서의 놀이이다.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의 이야기 구조는 이러한 놀이들을 배치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다양한 놀이와 장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야기의 구조를 그렇게 짰다는 것이다. 부분이 전체 서사 구조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을 위해 전체 서사 구조가 봉사하는 형식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부분과 부분이 필연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으로, 또는 독립적으로 이루어졌다. 앞부분에서 관광단을 모집해 놓고, 막상 뒷부분에서는 맹인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맹인 잔치에 참여한 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는 것도 이들이 구경꾼이 아니라 눈을 뜨는 주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는 '재미'라는 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람객들이 대부분 즐겁게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판소리 외에 뮤지컬 배우가 부르는 국악 가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접근이 쉬웠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라는 핑계로 고전을 지나치게 비틀어도 좋은 것인지는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심봉사가 황후가 된 심청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왕기석의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몰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전통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을 보고 싶은 게 나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통문화도시 전주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이 극의 활력이나 재미는 상당 부분이 해설과 황털 역을 겸하고 있는 임인환에 힘입은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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