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7.8 | 칼럼·시평 [문화시평]
멀티플렉스 독점시대, 영화 ‘옥자’가 던진 파동
이정우(2017-08-28 14:51:30)



지난 6월 29일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개봉 했다. 글로벌 기업 미란도의 비밀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된 유전자 변형 동물인 슈퍼돼지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서는 미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하지만 개봉 전부터 많은 논란에 휩싸이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 극장 점유율 과반수의 CGV가 '옥자'를 상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여타 멀티플렉스들도 '옥자' 상영을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보이콧을 선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기서 국내 멀티플렉스(Multiplex)는 CGV나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다시말하자면 두 개 이상의 스크린을 가지는 다중영화관으로써의 기능과 함께 다양한 오락문화공간으로써의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을 의미한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이자 할리우드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배우들이  총동원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 영화, 게다가 제 7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입성해 흥행이 보증됐던 이 영화가 왜 국내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들에게는 외면을 받았던 것일까.
먼저 옥자를 제작하고 투자를 맡았던 넷플릭스(NETFLIX)의 운영 방식과 영화 '옥자'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료 동영상 서비스 회사인 넷플릭스(NETFLIX)는 인터넷(NET)과 영화(FLICKS)의 합성어다. 1997년 인터넷을 통해 DVD를 우편으로 대여해주는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해 2009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터넷만 연결되면 다양한 기기를 통해 어디서나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형태로 거듭났다. 한 달에 최소 9,500원(베이식 요금제)만 내면 영화와 TV 프로그램과 같은 영상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올해 2분기 신규 가입자만 해도 520만 명이 늘어날 정도로 명실상부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서비스다. 이후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에서 지난 2012년부터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를 넷플릭스 오리지널(Netflix Original)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서 보급하기 시작했다.
논란의 중심은 영화 '옥자'가 이 넷플릭스에서 제작과 투자를 맡아 만들어졌다는 점에 있다.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과 동시에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려고 하자 국내 멀티플렉스들이 보이콧을 선언했다. 어찌 보면 동시개봉을 선언한 넷플릭스의 입장은 당연하다. '옥자'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기초인 넷플릭스 오리지널(Netflix Original) 영화이기 때문이다.
'옥자' 상영을 거부한 국내 멀티플렉스의 입장은 온라인과 극장이 동시 상영할 경우 영화 산업의 질서를 흩트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통상 극장에 상영된 영화는 홀딩 기간이 존재하는데 극장에서 영화 상영이 끝나면 2주~3주 정도의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야 스트리밍 서비스 등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홀드백(hold back) 기간이라고 한다. 국내 멀티플렉스들이 '옥자'상영을 거부한 것은 온라인과 영화관 동시상영이라는 최초의 시도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개의치 않고 넷플릭스는 극장과 IPTV, 컴퓨터, 태플릿, 스마트폰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동시 개봉하겠다고 발표한다.
이런 상황은 예고돼 있었다. 칸느영화제에서도 '옥자'를 두고 넷플릭스 영화가 과연 영화제 심사대상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이견과 논란이 있었다. 넷플릭스는 '옥자'의 극장 개봉을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만 진행했다. 프랑스는 극장 개봉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프랑스 극장협회가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만이 영화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나섰다. 반면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에 대한 이해라는 의견 사이에서 본격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때문에 '옥자'는 3대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국내 약 10%, 94개 극장에서만 상영 되었다. 하지만 상영 4주차에 돌입하고도 11%라는 높은 좌석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새 영화 개봉에도 박스오피스 8~9위를 지키고 있고, 5월~6월 흥행한 블록버스터 외화들 역시 '옥자'의 기록에 뒤쳐진다. 이런 현상은 접근성이 좋은 '집 앞 멀티플렉스'가 아니더라도 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기꺼이 찾아가는 관객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예다. 
이번 넷플릭스 사태(?)는 대한민국 극장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거대 멀티플렉스가 아닌 작은 극장들에게는 메마른 땅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작은 극장에서 하루 종일 '옥자'만 상영하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으며 그렇지 않아도 스크린 확보가 어려운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 등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옥자'가 스크린 독점을 피하려고 선택한 극장을 되려 독점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작은 극장의 경제적 상황을 해소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그동안 변방에서 잊혀져가던 동네극장을 알리거나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장기적으로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들이 새로운 통로를 통해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기도 하다.
거대 자본에 대항하는 내용을 담은 '옥자'는 현실에서도 거대 멀티플렉스와 작은 극장이라는 대립 구도를 만들며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기술적인 기반도 마련돼 있다. 멀티플렉스 상영 여부에 대해선 법적으로 강제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지만 그런 내용에 대해서 입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이런 흐름은 시대가 변하고 있고, 대중의 기호와 선호도 또한 점차 바뀌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극장과 안방에서 모두 즐길 수 있는 '옥자' 상영방식을 두고 시작된 작은 파동이 많은 논란과 화제를 낳고 있다. 점차 거대독점시스템 멀티플렉스들을 흔들고 논쟁의 중심이 되어 새로운 문화와 시대를 불러일으킬 나비효과를 낼 것인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