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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 | 칼럼·시평 [문화칼럼]
한일 역사 갈등, 만남과 교류에서부터
이경훈 한일역사교사모임·화홍고등학교 역사교사 (2023-08-16 17:21:20)

한일 역사 갈등, 만남과 교류에서부터


이경훈 한일역사교사모임·화홍고등학교 역사교사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당시의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서 ‘신일철주금 등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각각 1억 원씩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모두 해결된 일이라고 하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급기야 2019년 7월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며 무역 보복을 단행하였다. 한국 시민들은 ‘No Japan’ 운동을 전개하며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알렸다. 이에 더해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에 대해 ‘해양 방류’를 결정하고 규제 당국 승인과 시설 공사 등의 준비를 마친 후 2년 뒤 방류를 실행한다고 하였다. 해양 방류 결정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도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일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2023년 3월 일본기업은 빠진 채 국내 기업 등 민간의 자발적 기여로 마련한 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병존적 채무 인수’(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하였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발표를 크게 환영하였으나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피해자를 지원하던 시민단체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정부 발표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9%가 정부의 해결방안에 반대한다고 하였고, 찬성 응답자는 35%에 그쳤다.


올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당시 정부는 방류가 임박한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에 대해서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오염수 방류를 찬성하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환경운동연합이 5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5%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며 정부의 방침에 반발하였다. 2022년 8월 결성한 ‘역사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공동행동’은 2023년 7월 ‘역사정의를 위한 시민모금’(이하 시민모금)을 제안하였다.


정부의 해결방안을 ‘대일 굴욕외교’로 규정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를 끝까지 지켜 역사정의를 실현하자는 취지였다. 시민모금이 발족한지 열흘 만에 2억 8천 5백만 원이 모금되었다.(2023.7.13. 기준) 많은 시민들이 정부 방침에 반대하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윤석열 정부 집권 이래 양국 정부 간의 관계는 개선된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민간 단위에서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간의 이동 제한도 양국 국민들의 인식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2022년 9월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의 비영리 싱크탱크인 겐론NPO가 한일 양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일 국민 상호인식 조사’에서는 한국 국민의 52.8%, 일본 국민의 40.3%가 상대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론 조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특기할만한 사항이 발견된다. 연령대별 조사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를 묻는 문항에서 한국의 10대는 53.5%, 일본의 10대도 52.2%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양상은 일본 정부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비슷했다. 일본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2022년 10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친근감은 45.9%였으나 10대와 20대에서 64.7%로 나타나 다른 연령대에 비해 한국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2021년 8월 코로나19로 국가 간 이동이 거의 마비된 상태에서 제19회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가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매년 한국, 중국, 일본을 돌아가면서 개최되던 캠프였지만 2020년 갑자기 확산된 코로나19로 취소되었다가 2021년 온라인으로 개최된 것이다. 한•중•일에서 모인 93명의 중고생들은 공동수업을 진행하고 특별 강연을 함께 들었다. 캠프가 끝난 후 학생들은 아래와 같이 소감을 남겼다.


“나는 편견이 있었다. 중국, 일본 친구들이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위한 말을 하지 않을까, 또 우리가 가까워지고 캠프를 좋게 마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리 조장 타이요상이 잘 이끌어주었다. 과거 (역사)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의 시민으로써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는데 그걸 듣고 내 생각이 틀렸구나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역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더 넘어 전 세계의 화합을 위한 연습같은 캠프라고 생각한다.”


2022년 10월 16일에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교육자들이 공동으로 개최한 한일역사교육실천 심포지움이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한 장의 티셔츠로 알아보는 역사인식’이라는 주제로 양국의 고등학생들이 공동수업을 진행하였다. 2018년 BTS 멤버 지민이 일본의 원폭과 한국의 해방 장면이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은 것이 알려지면서 일본 넷우익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일을 소재로 수업을 진행했다.


일본 학생은 ‘BTS=반일’이라는 SNS 메시지가 많이 등장했고, 이에 대해서 반일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헤이트’(혐한)일뿐이라고 발표하였다. 한국 학생은 ‘한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원폭 피해자들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서 인권 측면으로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문제라고 하였다. 공동수업을 하고 한일 양국의 학생들이 아래와 같은 소감을 남겼다.


“일본 친구들과 의견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민이 티셔츠에 대해 배웠을 때 처음엔 ‘입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수업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니 일본의 입장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을 통해 서로의 역사를 배우고 알아가며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한국학생)


“지금까지는 한일 문제에 대해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었는데, 서로 나쁜 과거의 기억에 대해 객관적인 생각을 갖고 관계를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마주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현재는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앞으로 잘 했으면 좋겠다.”(일본학생)


학생들은 상대방을 알아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형성되었는지를 깨닫고 상대의 생각과 태도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코로나19라는 물리적 장벽이 있었지만 만남과 대화를 통한 생각의 교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해소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올해 신문과 뉴스 기사를 보면 양국의 왕래는 거의 코로나 이전 상태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그렇지만 양국 간의 감정은 많이 호전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자주 만나고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코로나19라는 세계적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며 보여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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