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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5 | 칼럼·시평 [문화칼럼]
진리를 향한 몸부림
김의수 (2004-01-27 11:05:38)


 우리는 철학을 논한다. 명화로운 봄날, 여유있는 강의실 분위기 속에서 예지가 넘치는 청년들과 더불어 나는 진리를 추구한다. ‘진리’라는 것이 무슨 절대적이며 신비스러운 것이거나, 고정불변하고 꼭꼭 숨어있는 보석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지 않음은 이미 당연한 상식이다. 우리는 진리의 조건들을 따진다. 그것들을 추상화시키고 형식화시키며, 때로는 도식화시켜 보기도 한다. 진리의 문제는 하나의 간단한 문장의 문제에서 부터, 어떤 사건이 작품의 해석, 그리고 사회와 역사를 지나 우주의 문제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진리문제에 관련하여 어릴적 부터 배워 체질화시킨 한가지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객관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실을 펀견없이 본다는 것이다. 그때에 인간이 과연 얼마나 철저하게 객관적일 수가 있는지, 또 당사자 뿐만아니라 제삼자 까지도 인간은 누구나 역사적인 존재이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자체도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는데, 거기서 객관성을 가장 잘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점들을 배제하고,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 것인가등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고찰을 하게 된다. 우리는 객관적(중립적)태도와 관련한 우리의 ‘진리’논의를 한가지 구체적인 예를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 본다. 9년전 광주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과악함에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리에 접근할 수가 있는가? 국회 청문회에서 이해당사자 간의 주장이 전적으로 상반되는 것을 보았던 우리로서 과연 역사적 현실의 객관적인 진실파악이 가능한 것인지 회의가 생기기 시작한다. 사실, ‘이해당사자’라는 표현 부터 문제가 있다. 이게 무슨 직접적인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배상금의 액수를 협상하는 정도의 문제라면 그런 말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학살은 결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범죄사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의 문제이다. 그런데 어느편에도 서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 문제에 관한 한 국회차원의 진실규명 시도 자체가 제한적인 목표를 설정한 것이었다. 제대로 사실을 규명하고 판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12·12 쿠데타와 5·17확인쿠데타의 주역들을 구속해 놓고 싸빼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광주사태’의 주범을 ‘김대중 일량이라고 규정했고, 그래서 그들을 구속하여 사형언도 까지 내렸었다. 그것이 허위이며 조작된 것임이 드러났으면, 조작해 낸 진짜 범인들을 잡아다 놓고 사실 규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원한관계로 진리에의 접근이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으니, 혹 유가족들 중에서 원수를 갚기 위해 피고인들을 사살해 버리거나, 재판정으로 부터 피고인들을 탈취해다가 그들이 행했던 것과 똑같이 대검으로 난도질하여 보복하는 행위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다. 이 이야기는 또 지나치게 가설적이며 강의실에서 한가롭기 때문에 생겨나는 오류들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광주시민 중에 아무도 지금 그렇게 직접적인 보복을 마음먹는 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햇든,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현실온 지나치게 단순화된 채로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M16 총끝에 시퍼런 대검을 꽂고 살기어린 눈빛으로 시민들을 쫓고 있는 공수부대원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화면을 통해 실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현장지휘관들로부터 최고지휘관에 이르기 까지 한결같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 ”고 잡아땐다. 온 국민이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줄을 알면서도 저렇게 미친적하며 거짓말을 해대고 있는 처 구체적인 ‘진리의 파괴자들’을 무력한 자세로 내버려둔 채, ‘보다 정확한 진리추구의 이론’을 논하고 앉아 있는 우리 철학도들이 얼마나 우스운가? 우리의 철학적 논쟁은 여기에서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우리의 성실한 지적태도는 남김없이 난도질당하고, 차분히 앉아서 지혜를 집중시켜 얻어내려던 우리의 진리추구행위는 한 순간에 무의미한 ‘놀옴’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우리의 이론적 행위를 중단시켜 버리는 우리 사회의 실천적 문제들은 도대체 끝이 없다. 또 다른 주요한 예를 하나 보자. 수십년 동안 변함없이 걸핏하면 주장되어 오는 말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란 전제주의와 독재체제의 반대개념이다. 다시말하면 독재체제는 째「민주주의의 적이고 독재자는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으로 부터 벗어난 후 지금까지 독재를 벗어나 본 객이 없다. 12년간의 민간인 독재 이후에 30여년간이나군부독재체제가유지되었다. 그런데도 그동안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구호가외쳐졌다면, 그것은 필경 독재에 항거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극우 파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는 수호되어야 한다! ”고 외쳐대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세상인가? 우리가 민주주의자들을 독재자로 매도하는 오류를 범한 것인가? 이 한심스러운 현상을 우리는 무어라고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현실속에 살면서도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리려는 음모가 내재된 우리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현실에 직면하여 볼 때 우리는 진리문제의 추구가 한가로운 강의실에서의 여유있는 토론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농함을 확인하게 된다. 거꾸로 된 세상, 전도된 언어사용, 왜곡된 의사소통구 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지 못한다면, 모든 진리는 전도된 진리이며 결국 진리는 그 존재가능성 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청년 학생들이 돌을 던지며 화염병을드는 행위가혼히 권력자들이나반동적 지식인들이 매도했던 것처럼 ‘배옴을회피하는’일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라는 개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터’를 닦는 개척적 행위임을 확인하게 된다. 한국에 봄이 오면 처 ‘진리의 터 다지는 소리’가요란해 진다. 주로 청년학생들이 담당하던 진리를 향한 외첨과 몸부림이 조금씩 지식인(문화인)에게로 돼지더니 이미 오래전부터 농민과 노동자들에게로 확산되어 이제는 그 주도적 역할마저 넘어가려 하고 있다. 을봄에는 농민들이 여의도에 모여 우렁찬 함성을 질렀고, 지하철 노동자들과 특히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거대한 몸부림으로 진리를 추구했다. 결국 진리는 모두의 것이 아니다. 진리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들만의 것이다. 이론적으로 진리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은 실천의 장으로 옮겨 갈 수 밖에 없게 되고, 실천의 영역에서 진리를 추구하려면, 먼저 독재, 독점, 종속, 분단이라는 모순구조때문에 생긴 거꾸로된 세상, 전도된 질서와의 투쟁으로 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국 진리는 실천과 결부시켜서만 획득될 수 있으며, 객관적(중립적)태도나 무관심한 방식으로가 아니라 진리를 지향하는 세력의 편에 서서 (민중에의 당파성을 가지고)진리의 파괴자들을 대적함으로써 달성할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그런 주장이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 타당성을 획득할수 있느냐고 우리는 그자에게 되묻는다. 우리의 주장이 오늘 우리사회에는타당하다고 받아들이는가? 그렇다고한다면, 우선 ‘오늘의 우리’에게 충실하면 된다. 그러기에도 벅차다. 그런데 이왕이면 ‘내일의 남들’에게 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보다 폭넓은 주장을 추구하자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도피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진리를 향한 발걸옴을 옮겨가자! 진리를 향한 외첨을 드높이자! 진리를 향한 몸부렴에 동참하자! 이것이 바로 우리의 철학적 논의의 결론일 수 밖에 없다. 을바른 역사의식의 소유자들은 이 결론에서 만날 수 밖에 없다. 을바른 문화행위의 주체들은 진리의 주체로서의 민중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롤 떨리게 하는 일이 있다. 제발거기까지는가지 않고 진리추구의 행진이 이루어지기를우리는간절히 바란다. ‘진리를위해 생명이 희생되는 일’.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6개월항쟁을 태동시켰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그것을 마우리지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이석규열사와 조성만열사의 회생이 요구되었고, 을봄에도 전경들을 포함하여 l0여명의 회생자가 발생했다. 현재도 뇌사상태에 있는 이경현양과 처참한 변사체로 발견된 이철규군 사건에 대한 의혹과 분노가 히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를 질식케하는 이‘ 거룩한 죽음의 행렬을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섬으로써 중단시켜야 한다. 우리 모두 진리를 향한 크고 작은 몸부림들의 결집만이 죽음없는 승리 역사적 진리의 성취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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