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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7 | 칼럼·시평 [서평]
남민3
오화순(2004-01-27 11:55:37)


 일제의 수탈구조였던 식민지 지주제에 의해 착취당해온 농민들은 해방 후에도 여전히 궁핍화를 강요당하고 있다. 자본주의 전개에 따른 고도의 자본축적의 이면에는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일방적으로 농민의 희생을 강요하였고 그 결과 농민의 빈곤과 몰락을 가중시키고 있다. 농토에서 내몰리어 공장의 불빛이 보이는 서울로 서울로 향하는 더 이상 농민 일수 없는 노동자. 자살이라는 극한적인 죽음의 방법으로 항변하는 농민들, 저마다 어깨에 젊어진 빚덩어리에 휘청거리며 살기 위해서 지주의 땅에 소작을 부쳐먹는 농민들의 모습이 바로 이 땅의 현실이다. 이러한 이 땅의 모순에 관심을 지니면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남민 ·3』이 최근 출간되었다. 『남민 ·3』은 『남민 ·2』에 비하여 발전된 모습으로 이 지역의 생산자인 농민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남민 ·3』이 모두 농민문제만을 싣고 있는 것은 아니며 전북종합문화지로서 詩와 발굴자료인 〈천주가사〉, 〈혜원사상(下)〉, 그리고 최 종현씨의 논문「도시와 삶」을 더불어 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민 ·3』이 지니는 의의는 농업-농민문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 획득되어 질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농업문제는 농민운동 속에서 토지문제를 중심으로 이루고 있다. 농민운동은 싸움의 주체인 현지농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좌담형식으로 1986-1987년의 「고창 삼양사 소작답 양도운동」과 1985년의 「부안 소몰이 싸움」을 싣고 있다. 「삼양사소작답 양도운동」과 「소몰이 싸움」은 각각 전국적 농민운동차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소작답 양도의 토지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에 대한 질서를 부인하는 측면과 반공이데을로기에 의하여 농민운동내에서도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는데, 이 투쟁을 통하여 벽을 무너뜨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에 고무받은 토지투쟁이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전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삼양사소작담은 농지개혁시 분배대상에서 제외된 은폐소작지로서 농지개혁의 허구성과 불철저성을 폭로하고 이후 사회적으로 계속 확대된 소작제의 근본문제를 제기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은폐소작지 및 광범위한 소작제의 존속은 변혁운동에 있어 한국사회의 성격을 일제 식민지를 청산하지 못한 반(半)봉건성을 주작하게 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주면서, 운동과 사회과학계에서 반(半)봉건성에 대한 활발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소몰이 싸움은 미국 농축산물 수입개방과 정부의 개방농정에 대한 농민의 대규모적인 최초의 투쟁이다. 소값 파동으로 대표되는 개방농정에 대한저항은 농업-농민의 약점인 고립 분산성을 극복하고 전국적이면서도 지역적인 연대를 강화하여 계획적인 시위를 주도하는 계기를 이루었으며, 농민의 주체적 역량을 드러내 보였다. 80년 광주민중학쟁을 계기로 미국과 독재정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이제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생존권투쟁을 통해 제기되었으며, 이 싸움을 통하여 주변 농민대중들의 의식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직적 차원에서는 지급까지 가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운동조직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져 지역단위의 농민운동조직이 결성되는 운동의 진보적 과정을 보여 주었다. 특히 여기에서 부안소몰이 싸움의 전개과정을 수록한 것은 부안이 다른 지역(진안, 완주)의 큰 승리와는 다르게 대참패를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조직이 대중속에 깊이 뿌리내리는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게 되어, 이후 농업문제에 조직적으로 싸움을 잘 이끌어 나갔던 데 기인한 듯하다. 따라서 전국적 차원에서나 전북농민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두싸움을 크게 다루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하겠다. 그러냐 이 싸움이 갖는 의미를 좌담 형식으로 다룸으로써, 그것도 시의성(市議性)을 상실한 좌담의 형식을 통해 운동의 전개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농업문제의 모순구출에 대한 성격이나 해명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되어 이 두 싸움에 대한 실제적 의미를 축소시키게 되었다. 모순이 드러나는 현상들을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보여주는 반면, 현상들의 외적 연관에 대한 통일적 인식의 결여는 결국 농업문제본질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토지문제에 관한화담으로 이루어진「삼양사 소작답 양도운동」, 소순열 교수의 「전북토지분제의 역사적 전개」,삼양사 소작농민을 다루는 낸시(Nancy Abelmann)의 「농민의 지주에 대한 의식」등 세 편의 글은 r남민 ·3」의 기둥뿌리 역할을 견지해 주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전개과 정속에서 전북의 토지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한 소순열교수의 논문은 이 지역 연구의 실중성 부족이라는 필자자신의 한계지적에도 불구하고 점중하는 토지문제에 대한 연구와 이에 대한 토지문제 해결을 시도하고자 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였다. 전북의 토지문제는 한국의 토지문제의 이론들과 토지투쟁을 연결해 주는 다리로써 낸시(Nancy)의 논문은 삼양사소작답 양도투쟁을 벌였던 농민들이 자신들의 토지, 자신들이 벌인 투쟁,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구체적인‘농민’을 통하여 살펴보고 있다. 촉, 구체적 삶을 통하여 농민들이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그들에게 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싸움 과정에서 농민들의 다양한 의견분열에도 불구하고(물론 이것이 무상양도투쟁에서 후퇴를 가져와 삼양사측과의 굴욕적인 타협안을 가져오게 하는 한 원인이 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여전히 농민들은 토지를 소유하기를 바라며 이것은 소유를 위한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토지소유가 그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생산수단이며, 그들 위에 군림하는 삼양사와의 종속의 끝장이며, 생활의 향상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남민 ·3」은 농업문제에 대하여 집중한다는 점에서 주요의의를 획득할 수 있는 반면에 이에 대한 주요한 한계점이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토지문제로 접근한 것에 대한 지적이다.
이는 농업문제의 본질을(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토지문제로 파악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지니고 있다. 토지투쟁이 최근에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토지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농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농축산물수입, 개방농정, 농협 ·농조의 문제, 독점자본과의 부등가교환문제, 부채 저농산물가등 수 많은 문제가 농업부문에 산적해 왔다. 낸시(Nancy)가 지적했듯이, 소유를 위한 소유가 진정한 농업문제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농업문제는 노동문제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선명히 대립되는 두 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는 자립이 화절되어 종속적이고 왜곡되어 진행되는 만큼 이의 직접적 반영은 농업부문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농업문제는 보다 복잡하고 또한 중층적 모순의 형태로 나타나 농업모순을 인식하는데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있다 그러나 진정한 농업문제 해결은 바로 우리사회의 전체 모순구조의 해결 가운데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우리는 지닌다. 바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되어 두번째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앞서 놓업 문제가 전체모순구조와 연관되어 변혁운동에서 역량에 따라 배치되어야 하듯이, 전북지역의 성격 또한 한국사회전체모순구조와 관련지어 파악되어야 한다. 「남민 ·3」에서는 전북지역의 성격을 한국사회전체모순구조와 분리시켜, 독자적이고 자율적이며 전북지역 고유의 특성을 부여하는 문화주의적 관념적 성격을 일부 지니고 있지 않는 가에 대한 우려이다. 「남민」 ·3집까지 실린 내용을 보면, 한국 사회변혁운동의 주체로서 확인되는 노동운동이 이 지역에서도 점증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는 전북지역의 특성을 불만이 대다수라는 양적 통계에 사로 잡혀, 한국사회구성체와는 별개의 전북사회 구성체를 암암리에 꿈꾸어 온 듯한 냄새마저 풍기는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일반의 보편성에서의 지역의 성격이 배제되어진 채, 지역의 특수성만을 강조, 이에 대한고집은 자칫 민중에 대한 과학적 분석의 결여를 초래한다. 이것은 민중을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른 능동적 주체자로 파악하기보다는 심정적이고 관념적으로 인식하여, 민중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소시민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소시민적 성격은 현 변혁운동의 당면과제와 분리되어, 단지 지식인의 민중에 대한 융리적 부담감을 이런 문화 활동의 형식을 벌어 도의적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지식인의 자위적행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러한 성격은 이 책의 선도성(先導性)은 커녕 민중의 투쟁성과에 대한 추수적 작업마저 제대로 수행할 수 없어, 시의성(時義性)상실 ·목표의식의 상실로 망망대해를 민중이라는 돛을 달고표류하는 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전북지역에서 지역문제에 관심을 가진 유일한 책이라는 의미획득을 우리는 높이 명가하며 이제는 ‘유일한’이라는 의미보다는 과학적 인식에 기초한 과학적 운동이 보다 치밀하게 추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을 표방하면서 지식인을 주체로 하여 지식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운동은 지양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운동이 포괄하고 있는 여러 투쟁위상의 내적 연관성을 무시한채 문화 활동의 독자적 의미만을 고집하는 그릇된 경향은 불식되어야 한다. 현 한국사회의 변혁 운동속에서 지역의 운동성을 확인하면서, 이 지역주민의 구체적 삶에 대한 부단한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매진해야 할 목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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