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89.9 | 칼럼·시평 [문화저널]
입시경쟁속의 소외
최지윤(2004-01-27 12:23:56)


 지난 학기, 면소재지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교사생활은 그 기대나 각오와는 달리 갈등과 혼란의 순간들이었던 것 갔다. 교단에 서면서 가장 먼저 느낀 문제는 수업의 내용과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도내에 있는 면 단위 고등학교의 사정은 대개 비슷하겠지만 특히 군내에서도 실력이 저조한 편인 우리학교에서는 교과서에 맞춘 영어수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나는 진도와 대학입시라는 부담속에서도 교과서의 내용을 재구성해서 쉽게 가르쳐야 했으며, 아이들 모두가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수업은 무사히 마치고 뿌듯한 기분이 되는 날보다는 나의 무능함과 자질을 반문해보는 날이 더 많았다. 원인은 미숙함에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성실함과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교과서의 내용은 그렇다 치고, 단어의 수가 너무 많고 어려워 우리아이들은 이것을 소화해 낼 수가 없었다. 하나래도 더 가르칠 욕심으로 숙제를 많이 낸 적이 있었다. 어떤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여기가 도시학교인줄 아세요? 우린 끝나고 일해야해요.”나는 점점 아이들 모두를 끌어올리려는 것은 욕심이고, 가난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려는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수업은 소수를 위한 수업이 되었고, 무리하게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마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내 자신이 한심스럽고, 가끔 때려서라도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말을 들으면 더욱 착잡하기만 했다. 내 수업은 한번 걸러지고 남은 집단내에서 다시 소수를 거르는 과정은 아니었을까! 대부분이 가난하고 국민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경쟁에서 낙오된 아이들, 더구나 그 원인은 스스로의 불성실함보다는 가난이나 부모의 무관심등이 대부분인데 그들에게 학교교육은 무엇을 해 주었는지…실제로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가난과 소외가 얼마나 그들을 멍들게 하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학교를 왜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상급학년이 되면 답답하고 무의미하게만 느껴진다는 학교를 떠나 도시로 가는 학생들이 생긴다. 일단 졸업은 하자고 불잡는 선생님, 방황하고 화절하는 아이들, 그러나 교과진도와 입시, 그들의 수업시간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난속에서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아이들을 입시교육속으로 내모는 것은 기만이고 폭력일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학교와 같은 상황의 아이들에게 원래적인 의미의 교육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경력이랄것도 없는 짧은 기간에 느낀 바를 어설프게 적어보았다. 하루 빨리 각 지역사회에 알맞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경쟁과 입시로 아이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인간화교육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희망을 줄 수 있어야한다. 여기에 외국어교육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보리베기를 나갔었다. 땡볕아래서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모습은 누구나 믿음직스러웠다. 손을 베면 어느새 쑥을 이겨 동여매고 낫을 들던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교육위원회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삶의 보람을 느기는 교육’.....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