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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 | 칼럼·시평 [문화칼럼]
지방자치제와 지역문화
이재규 전민련 정책실장(2004-01-29 11:35:45)

1952년 4월 전시하에서 이승만정권의 집권연장을 위한 들러리로 지방의회가 최초로 구성되고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해산된 이후 약 30여년동안 한국정치사에서 사라졌던 지방자치제가 오는 3월의 지방의회선거를 시작으로 부활하게 된다. 그동안 지배세력이 지방자치제의 실시를 그토록 기피, 지연시켜 온 것은 그 제도적 개량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앙집권적 독재권력의 일정한 분산, 약화를 가져오게 되어 지배세력의 기득권 연장에 상당한 부담과 장애를 준다는 점에 그 까닭이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그 최종결정과정이 여야의 대권전략을 위한 정치적 흥정과정에서 이루어진 측면이 강하긴 하지만, 이러한 흥정이나마 이루어졌던 것은 지난 87년의 국민 대투쟁의 성과가 강제해준 결과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원래 지방자치제는 선진자본주의 제국에서 자본주의의 발달과 부르조아민주주의(우리가 일반적으로 의회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치제도의 성립과 더불어 민중의 정치적 역량의 성장에 따른 ‘민주주의의 학교’로서 발전하였으며 특히 진보적 여러 나라들에서 그 정신과 형식이 더욱 발전되어 오고 있다. 이와 같은 진보성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제는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중앙권력의 성격이 지자제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하게 되므로 민주화의 실질적 주체이자 동력인 국민대중의 주동적 대응만이 지자제의 진보적 성격을 담보해주게 된다.
이는 해방 이후 제2공화국 치하에서 이승만 독재정권이 애초에는 압도적이었던 민족자주세력의 대중적 영향력을 미군과 일제 잔재세력의 힘을 빌어 물리적으로 제거해 나가면서 새로운 지배체제를 정착시켜 가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법개정을 통해 지방자치제를 오히려 권력유지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민주화와 민족자주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대중의 주동적 대응정도에 따라 지방자치제는 지배세력에 집중된 권력과 부를 어느 정도 분산시켜내는 계기로 될 수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광범한 지역민중들의 정치적 주인의식을 고양시켜냄으로써 현재 절대적으로 열세인 민족자주, 민주통일운동의 대중성과 조직력을 크게 강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번 지방의회 선거는 이런 일반적 의의 외에도 격동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정치의 전망(그것은 단순히 정치인들 몇몇의 부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우리 민족 전체의 운명과 긴밀하게 묶여 있는 것일텐데)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무엇보다도 우선 이번 지방의회 선거는 90-93년의 역동적인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실시된다는 점에서 향후 권력교체의 향방을 가늠하는 전초전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민자당 정권은 소선구제하의 이번 지방의회 선거에서 지역분할 구도를 고착화하여 지역의 중소자본가, 졸부, 유지 등을 기반으로 지역감정, 부정타락선거를 통해 승리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특히 민자당 결성의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이 지방의회 선거 결과를 토대로 민자당이 내각제개헌 재추진,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설 것임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다.
최근 노정권의 정치행태는 이와 같은 관측을 보다 확실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작년 12․27의 이른바 돌격내각구성, 전두환의 연희동 귀환 등에서 드러나듯 기만적 5공청산과 3당야합과정에서 이완, 분산된 범여권을 재결속하고 전열을 정비함으로써 영구집권을 위한 기반조성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민자당의 치밀한 정치전략은 페르시아만 전쟁의 효과적 활용과 국회의원 뇌물사건의 계산된(그 시점과 방법에 있어서 정치적 의도성이 분명히 보인다) 폭로, 여론조성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 군산복합체, 이익관철을 위해 시작된 페르시아만전쟁을 곧바로 국내정치, 경제의 위기로 연결시키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서 체제의 통합력 강화를 내세우는 수법은 어딘가 유신체제의 성립과정과 닮아 보이지 않은가. 민자당의원 한명을 덤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그 정치적 의도성을 희석화 하려 하고 있는 ‘뇌물외유사건’도 그렇다. 이 사건으로 국민대중은 또 한번 제도정치권 전체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놈이 그놈이다.” 이말이 나오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이 여당에게 유리하다. 예로부터 정치적 허무주의는 파쇼세력의 정권유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사회심리적 조건으로 되어 왔다. 여당이 밉긴 하지만 야당도 별 수 없으므로 차라리 안정이나 택하자는 논리는 역대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존재를 합리화시키는 가장 유력한 무리고 특히 정치적 후진대중에게 그 위력을 발휘해 왔다. 물론 여기에는 제도 야당의 한계와 취약성이 한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야권통합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아직 완결되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성급하지만) 제도야권의 각정치세력은 향후 정국 및 야권통합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각개약진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이번 지방의회선거는 이들 야권정치세력에 대한 국민 대중의 지지를 일정하게 드러내게 될 것이므로 민자당 못지 않게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결국 이번 지방의회선거는 예정된 정치일정상 대권의 향방을 놓고 일대격전이 벌어질 92. 3년을 앞두고 각 정치세력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 향후 정치투쟁의 조건을 확보하려는 예비전투-전초전의 양상을 띨 것임을 분명하다. 이번 지방의회의 정치적 성격이 이러할진데 원론적 의미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 지역의 균등한 발전의 계기로서의 의미부여는 상당히 어렵다고 하겠다.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로서 각종의 선거규정에서 민중의 자유로운 정치참여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유지들의 선거) 접어두고라도 무엇보다도 중앙권력에 대한 자율성이 거의 형식적인 것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대로 하자면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1년후에 (실시가 될런지는 지극히 불투명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다고 해도 그 권한과 역할이 미미해서 중앙권력의 전횡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 지역의 자율성 확보-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실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앙권력에서 임명한 부단체장이 실권을 행사하고 주민이 애써 뽑은 자치단체장, 의회의원은 실속없는 사안이나 만지작거릴수 있다면 그게 무슨 ‘자치제’라 할 수 있겠는가. 지역권력의 중요한 물리적 토대라 할 수 있는 지역경찰을 중앙권력이 자의적으로 동원할 수 있게 허용한 조건에서 어떻게 지역의 재원을 지역주민의 진정한 이해실현을 위해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겠는가. 현생 지방자치제도의 실상을 볼 때 전망을 이처럼 낙관적이지 못하다. 결국 이번의 지방의회 선거는 권력의 중앙집중과 민중통제에 큰 변동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는 힘들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 이야기를 지역문화로 돌려보자. 지방자치제 실현과 관련하여 우리가 던져볼 수 있는 질문들은 이런 것이 있을 것이다. 지자제가 실시되면 문화의 중앙집중현상과 이에 따른 지역문화의 취약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지역문화의 자주성을 높이고 중앙-주로 서구/매판문화의 보급기지라 할 수 있는-문화의 해악으로부터 효과적인 차단과 견제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현행 제도하에서의 지자제의 효과는 매우 적은 범위에 머물 것이다. 특히 문화영역에서의 그것의 ‘실감’은 거의 느껴지지 못할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재정의 자립과 중앙권력의 개입, 간섭으로부터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지 못한 조건에서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재원의 분배와 지역문화정책이 수립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또 하나의 질문이 전제된다. 우리가 상정하고 있는 ‘지역문화’의 참모습은 어떤 것이고, 그것은 어떤 이념적 지향과 내용, 형식을 갖춘 것을 의미하느냐는 근원적인 질문 말이다. 이것은 지역 문화의 활성화를 중앙에 ‘뒤지지 않을’ ‘다채로운’문화행사, 공연장, 연희단체의 산술적 증가로 보는 상식적 합의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지방의회에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자. 주로 기업체 사장, 졸부, 관변단체에 명함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 유지들, 정치적 야망에 불타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모여 지방의회를 이루고 자치단체장을 맡는다고 해서 기존 제도문화의 폐해를 극복할 자주적 지역문화역량에 대한 후원자로 결코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지역문화-민족문화의 지역적 발전은 반민족적, 반민중적 현실의 총체적 극복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으며 그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의 정치적 계기, 그것도 지배세력의 체제안정화음모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정치적 상황이 우리 현실을 단숨에 비약시키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계기와 공간속에서 지역대중을 얼마만큼 정치와 문화의 참된 주체로 조직해 나갈 수 있느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방의회 선거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이 모든 정치, 문화적 소외의 근원으로 되고 있는 지배체제의 지배망이 더욱 뿌리깊게 확산되는 것을 저지해내야 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중앙권력의 하수인으로 나설 것이 분명한 반민주인사의 당선을 저지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지역의 자주성 확보를 위해 헌신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지역대중과의 분명한 약속으로 내세우는 범민주진영의 후보를 지지, 지원하는 것이다. 이럴 때에만 지역대중의 감시와 통제(한편으로 지원, 지지) 아래서 지역의 인적, 물적 재원의 정당한 분배로부터 시작해서 지역사회의 민주적 제조직화를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외적 실천’과 함께 지역문화의 자주적, 창조적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 지배문화현실을 극복할 대안문화의 주체역량을 충실하게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우리 지역의 현실은 아직 민족, 민중 문화 운동역량의 취약함이 보다 주요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 개별 문화장르의 취약함도 문제이거니와 문화운동 주체간의 통일과 단결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지배문화의 해악을 극복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문화운동의 조직화, 혁신을 기본으로 하면서 제한적인 의의를 갖는 이번 지방의회 선거에서 광범한 지역대중의 민주적 실천을 이끌어 낼 때에 진정한 의미의 지역문화의 비약과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제는 결코 그 자체로서 민주화, 지방분권화, 지역의 정치, 문화적 발전의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를 보다 완결되고 내용있는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우리자신의 끊임없는 ‘개입’과 ‘민주적 실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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